경계의
역설(paradox of boundary)이란 평소 통용되는 기준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자신의 행동의 경계를 정해서 사는 사람들에게 사회는 자기 조직화를 위한 더 많은 행동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원리다.
1977년 비평형 열역학에서 소산구조론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일리야 로마노비치 프리고진(Ilya Romanovich Prigogine: 1917년 1월 25일 - 2003년 3월 28일)는 모든 분자구조를 가지는 것은 스스로 규제할 수 있는 <경계>가 내재화되어 있을 때만 자기조직화를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한다고 밝히고 있다.
자기조직화를 통해 번성하는 조직이나 사회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혼돈이론에서 자주 언급하는 북경의 나비의 펄럭임이 태평양을 건너서 맨하탄의 빌딩을 무너트리는 현상이 아무 나비에게나 발생할 것으로 주장한다면 혼돈이론을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맨허턴 빌딩을 무너트릴 수 있는 나비는 경계의 초기값 안에 폭탄을 내포한 나비다. 자신만의 엄격한 경계를 만들고 이 경계 안에 자신의 심각한 의도를 품고 질서가 새롭게 조직될 때까지 날개짓을 멈추지 않은 나비가 맨허탄의 건물을 무너트린다. 경계 안에서 반복되는 날개짓이 경계를 넘어 울림(발현)과 긍정적 피드백을 만들어 법과 상식의 질서 안에 새로운 질서를 새겨 넣은 것이다. 나비의 명료하고 선한 의도가 초기값의 울타리 안에 장착되어 있었고 이것이 나비 날개짓의 무한 반복으로 마침내 새로운 질서를 조형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기업들에 대해 네거티브 규제를 하는지 파지티브 규제를 하는 지에 대한 경계 논쟁이 자주 벌어진다. 경계의 역설을 이해하지 못한 논쟁이다. 네거티브 규제는 필수적인 몇 가지를 빼고 나머지 모든 것을 허용하는 규제이다. 파지티브 규제는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나머지는 전부 못하게 하는 규제이다. 당연히 혁신이 일어나려면 규제가 파지티브 규제에서 네거티브 규제로 바뀌어야 한다.
네거티브 규제를 통해 혁신의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기업가들의 의식수준이 법과 상식을 넘어 내면적이고 자발적 행동 수준에서 스스로 규제하는 가치를 지키는 경계를 내재화 해서 스스로 고도의 성숙 수준을 보일 수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평소 남이 보고 있지 않을 때는 법도 지키지 않고 자신의 이득을 위해 상식적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이해충돌 행동을 일삼는 기업인이 모든 규제를 풀어 달라는 네거티브 규제를 주장한다면 자신이 고양이인데 생선을 달라고 주장하는 꼴이다.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네거티브 규제는 일단 참여자의 자율에 맡겨가며 모두를 풀어주고 문제가 되는 케이스가 생기면 사후적으로 다시 법을 업데이트하는 방식이다. 기본적으로 참여자의 자율에 믿고 맞길 수 있는 법과 상식을 넘는 시민의식이 성숙된 사회에서 시도가 가능한 것이다. 또한 네거티브 규제를 허용하는 시민국가에서는 혹시나 이런 허점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에게 징벌적 처벌 제도를 도입한다. 한국에서 지금까지 유전무죄로 대부분 석방된 재벌총수들에 대한 기억이 살아 있는 한 네거티브 규제를 허락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만약에 이들이 미국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아마도 종신형으로 지금도 감옥에 있을 것이다.
사회적 책임(CSR)의 피라미드를 제시한 Carroll에 따르면 인간 행동의 경계는 법이 허용한 경계, 상식이 통하는 윤리적 경계, 자발적으로 정한 가치의 경계가 있다.
법의 경계는 인간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가장 낮은 수준의 최소한의 경계다. 신뢰의 잔고가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침해를 주었다고 생각하는 모든 행동들을 법으로 다 정해 놓은 것이다. 윤리적 경계는 당연히 법을 저촉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 법에 없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침해를 줄 개연성이 있는 행동들을 하지 않는 것의 상식이 통용되는 경계이다. 가치의 경계는 윤리와 상식을 지키는 기준을 넘어서 다른 사람에게 가치가 있는 도움이 되는 행동을 자발적으로 하는 수준을 의미한다. 법의 경계와 윤리적 경계가 남에게 주는 피해를 염두에 두고 만든 파지티브 규제를 위한 경계라면 가치의 경계는 선한 영향력을 염두에 두고 세워진 네거티브 규제를 위한 경계다. 가치의 경계라는 더 높은 수준의 경계를 지킬 수 있는 기업들이 있을 때 네거티브 규제가 적용될 수 있다. 문제는 법과 윤리의 파지티브 경계를 넘나드는 기업들이 가치의 경계를 실현할 수 있는 네거티브 경계 기업들과 같이 활동하면 당연히 이들의 무임승차 행위 때문에 가치의 경계를 실현하는 기업들도 다 무너지게 되어있다.
문제는 기업가들의 수준이다. 기업가들이 탐욕스러워서 이들의 모든 것을 법으로 일일이 정해 놓고 감시해야 하는 수준이라면 이런 사회에 네거티브 규제를 허락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이 된다.
네거티브 규제와 파지티브 규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파지티브 규제의 상태에서 네거티브 규제를 시행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가 성숙되었는지에 의해 결정되는 성숙과 이행의 문제다.
사회가 문명화된 수준은 시민들의 행동이 법에 의해서 규제되는지, 상식과 윤리에 의해 규제되는지, 아니면 자발적 가치에 의해서 규제되는지에 달려 있다. 법의 경계를 넘나들고 이해충돌과 정치적 카르텔을 이용해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검사, 판사, 변호사들에게 더 엄격한 내재적 경계를 통해 선한 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맡긴다면 역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이들이 정의를 실현할 것으로 믿는 것은 경계 개념에 대한 혼동 때문에 생긴 문제다. 캐롤의 기준에 따르면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사회의 지도층이 된 사회는 가장 미개한 사회이다.
김구선생이 천명한 문화강국이란 바로 대부분 시민들의 행동이 법과 윤리를 넘어 자발적 가치의 경계를 세우고 이 경계 안에서 법과 상식을 넘어 행동이 조직되는 사회를 의미한다.
지금이라도 한국 사회에 네거티브 혁신의 토대가 마련이 되려면 사사건건 법의 규제로 자신의 밥그릇을 먼저 챙기는 공무원들도 탓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충돌이라는 상식적 윤리를 넘어 고객과 사회를 위해 창출해야 하는 가치로 스스로를 자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기업가들의 시민의식의 성숙도 탓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징벌적 처벌과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와 기업의 시민의식이 성숙되어 있는지는 의문이다.
경계의 역설이란 스스로 법과 상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탐욕으로 경계를 확장하려고 노력하면 사회는 더 엄격한 기준으로 행동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반면 스스로 내재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자율적 경계 능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이들에게 더 많은 행동 자유를 허용하는 원리다.
법이 있어야 사회가 조직된다면 성숙도가 가장 낮은 저신뢰 사회다. 법이 없어도 남에게 이해충돌로 해를 끼치지 않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더 성숙한 사회다. 김구 선생이 이야기하는 문화강국은 법과 상식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고 법과 상식을 넘어 자신을 자율적으로 규제하는 존재목적과 가치기준의 울타리를 세우고 스스로를 규제하고 더 나은 질서를 조직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다.
대한민국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욕을 먹는 이유는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법꾸라지로 기득권을 쌓았기 때문이다. 의사의 파업에 대해 사회가 냉담한 이유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사명보다는 이해충돌 속에서 자신의 기득권을 챙기는 카르텔 세력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가치와 목적의 경계 없이 남에게 들키지 않게 법과 상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기득권을 공고히 해왔던 사람들을 제대로 퇴출시킬 수 있는 선거이기를 열망한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는 법의 경계와 상식과 윤리의 경계를 넘어서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의 경계를 실현한 사람들에게만 차별적으로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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