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가 사전투표자들이 대파를 들고 투표장에 입장하는 것을 불법으로 금하면서 생긴 논쟁이다. 대파를 금하자 쪽파를 들고 입장하는 사람, 대파 머리 띠를 하고 등장하는 사람들, 대파 치마를 입고 등장하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논쟁의 핵심은 원판이었던 양재동 하나로 마트 대파의 다양한 시뮬라크(복재의 복재품) 형태를 가지고 투표장에 입장하는 사람들을 대파를 들고 입장하는 사람들로 규정하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다. 이들 다양한 시뮬라크 형태까지 양재동 하나로 마트와 같은 대파로 규정하고 막는다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치적 탄압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수행해야 하는 선관위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대한민국은 왜 이런 시뮬라크의 대혼란에 빠졌을까?

윈 쪽 그림은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네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타이틀의 작품이다.

르네 마그네트는 사람들이 현실과 가장 가까운 대상을 묘사해 그려 놓고 현실의 가장 가까운 재현에 불과한 그림을 마치 복제가 아닌 현실이라고 믿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인지를 설파해왔다. 아무리 현실과 가깝게 그렸어도 그림이나 사진은 이 원본의 복제인 시뮬라크이기 때문에 파이프 자체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림을 관람하는사람들은 파이프처럼 보이는 대상을 파이프가 아니라고 타이틀을 정한 것에 혼돈을 느낀다. 르네 마그네트의 예술가로서의 공헌은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게 한 홍길동전의 초현실적 이야기가 현실에서 일상적으로 재현된다는 것을 알린 것이다. 사진 속 인물이 대통령이라고 믿고 있는 아이에게 누군가가 이 분은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가르쳐도 이상하지 않는 비현실과 현실이 혼재해서 돌아가는 세상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 원본의 카피에 불과한 시뮬라크를 더 좋은 가치를 가진 예술로 받아들이고 어떤 시뮬라크에 대해서 현실에 대한 극단적 왜곡으로 생각하고 저항하는 것일까?

양재 하나로 마트에서 팔려나간 대파 한 단을 통해 만들어진 사진이나 보도의 시뮬라크가 다른 곳에서 팔리는 대파 한 단이라는 시뮬라크와 너무 본질이 다른 개념으로 왜곡되어 주장되고 있을 경우에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이 시뮬라크의 감춰진 의도에 대해 질문을 가하기 시작한다. 이런 시뮬라크를 현실을 잘 반영하는 재현이라고 믿게 될 경우 가져올 왜곡이 심각할 경우 시뮬라크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다. 양재점에서 대통령 손에 들린 대파 시뮬라크가 제대로 된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시뮬라크와 같은 시뮬라크인지 검증에 나선다. 아니라면 새로운 시뮬라크가 만들어진 숨겨진 의도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한다.

시뮬라크가 시뮬라크로서의 존재를 부정 당할 때는 만들어진 시뮬라크가 본질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특정한 개인의 욕망을 충족하는 도구로 재창조되어 유통될 때다. 다시 말해 시뮬라크가 앵커로 삼는 대상의 본질에 대한 진정성을 왜곡해가며 세상에 노이즈를 일으킬 때다. 재현된 시뮬라크의 시장가치는 진정성에 의해서 결정된다. 시뮬라크의 대상이 되는 사물이나 사람이 가진 고유한 내적 본질을 시뮬라크가 선의에 따라서 제대로 표현하고 그 본질의 진정성을 왜곡하지 않는지가 진정성이라는 시뮬라크의 시장가다.

이런 시뮬라크의 본질에 대한 진정성을 왜곡하는 시도가 있으면 사람들은 그 시뮬라크가 지칭하는 원본의 본질의 정의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한다.

이게 나라냐?

이게 정치냐?

이게 교육이냐?

이게 의사냐?

이게 대파냐?

이게 파우치냐?

디지털 세상은 수도 없이 많은 시뮤라크가 실시간으로 밈으로 만들어져 대량 유통되는 세상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처럼 현실과 가상이 더는 구별되지 않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도 공동운명체인 구성원, 공동체, 인류의 행복과 번성과 생존을 부정하는 시뮬라크가 만들어지면 사람들은 본질적 의도를 반영하는 반시뮬라크를 만들어 반대 시위에 나선다. 상식적 수준에서 시뮬라크를 단단한 현실이라고 믿고 살고 있는 일반 사람들이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이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기획된 허공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느끼는 구역질에 대한 체험이 이들을 대파 반시뮬라크 만들기에 동참시키는 이유다.

대한민국에 이런 양파 시뮬라크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치에서 국민들이 느끼는 비현실적 기시감이 극에 달했다는 의미다. 자신 혼자 초록색 색 안경을 낀 리더가 권력을 동원해 색 안경 없이 세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다 초록색 시뮬라크라고 강요하는 비현실적 상황에 대한 곤혹감 때문이다.

집단사고의 색안경을 벗지 못한 리더가 현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나라에 대한 건강한 시뮬라크를 생산해서 유통하는데 실패하고 있음에 대한 저항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런 입틀막(카이스트 졸업생, 강성희 의원 논쟁), 눈틀막(디올백, 대파 논쟁), 귀틀막(바이든 날리면 논쟁), 몸틀막(과잉경호) 세상에서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본 시뮬라크의 진실을 밈으로라도 만들어 해학적으로 표현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런 식으로 따지고 보면 오늘의 나도 어제 살던 나의 시뮬라크다. 어제의 나도 그제 나의 시뮬라크다. 내일과 모래의 나는 오늘과 어제 나의 시뮬라크다. 시뮬라크의 시뮬라크가 같은 시뮬라크라는 정체성을 인정받으려면 시뮬라크를 관통하는 자신만의 존재목적에 대한 선한 의도의 황금줄에 일관되게 꿰어 고유한 진주목걸이를 만들고 있는 사람으로 인지될 때이다. 존재목적에 대한 진정성을 상실한 리더가 이런 진주 목걸이를 만들어내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 통과하기보다 힘들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번지는 시뮬라크의 논쟁은 진정성을 상실한 리더들이 만들어낸 사회적 대 혼란이다. 리더가 진정성을 상실했다면 아무리 직책과 권한이 막강하더라도 리더로서 영향력의 기반을 상실한 것이다. 이들은 구성원 마음 속에서도 해고된 식물리더다. 리더가 진정성을 잃었다면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잃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