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Talk의 용기를 잃다
사명과 긍휼의 울타리
소통의 패턴을 분석해보면 위기에 처한 조직의 성향이 드러난다. 위기에 처한 조직은 늘어나는 뒷담화에 밀려 면전에서 진실을 용기 있게 이야기하는 앞 담화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뒷담화는 뒤에서 상대를 비난하는 것을 의미하고 앞담화는 면전에서 상대를 위해 현실적이고 진실을 담은 충고를 해주는 Hard Talk이다. 하드톡은 푸코가 민주주의 원리로 선언한 파레시아를 의미한다.
조직은
정글을 여행하는 구성원에 비유해볼 수 있다. 낮에는 여정을 수행하고 밤이 되면 모여서 모닥불을 피우고 빙 둘러 앉아 낮에 있었던 잘못에 대해서 반성하고 더 나은 방법을 피드백 한다. 밤이 되면 서로는 상대의 등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어 상대의 등을 동물과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했다.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고 상처와 잘못을 치유하고 에너지를 얻어서 날이 밝으면 여정을 계속했다. 서로의 등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가져다 주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넘친다. 신뢰 때문에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지지가 필요한 곳에서 더 필요한 곳으로 물 흐르듯 흐른다. 소통에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 중 한 사람이 자신에 관한 욕심이 넘쳐서 다른 사람에 대해 장본인 모르게 뒷담화를 한다는 것은 상대의 등을 찌르는 행위다. 뒷담화의 대상이 된 장본인이 뒷담화를 간접적으로 전해 듣게 되고 처음의 전파자에 대해 뒷담화 한다면 뒷담화는 결국 조직 전체를 전염시킨다. 그간에 존재했던 조직의 울타리는 급속하게 무너져 내린다.
울타리가 무너져 신뢰가 위기에 처하면 구성원들은 각자도생을 위해 토굴파기(Undermining)를 시작한다. 회사 안에 토굴파기는 정치적으로 입김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토굴에 통로로 연결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통로가 사일로다. 사일로 조직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조직의 울타리가 무너졌다는 증거다.
이런 토굴파기가 성행하면 회사에 위험이 되는 일이 있어도 정치적 맥락을 고려해서 숨겨지고 가장 힘 있는 사람 중심으로 해석되게 된다. 결국 CEO는 조직에 문제가 있을 초반에 정보를 들었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도 해결이 불가능한 마지막 순간에 듣는 사람이 된다. 사실과 진실을 숨기기 위해 겉만 화려한 Fancy Talk을 일삼는 사람들이 조직을 장악한다.
회사에 뒷담화가 성행하면 상대가 가진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면전에서 이야기해주는 것을 꺼리게 되고 문제가 불거지지 않게 하기 위해 덕담이나 하다가 문제를 키운다. 상대가 가진 심각한 문제를 누구도 이야기하지 못하는 Hard Talk이 어려워진 조직의 특징이다.
수년 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카카오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용자가 회사가 시행하는 동료평가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 심각한 노이즈를 일으켰다 .
“지금 삶은 지옥 그 자체다. 내 죽음을 계기로 회사 안의 왕따 문제는 없어졌으면 좋겠다.”
카카오는 연말마다 자신을 평가할 동료를 지정해서 동료평가를 해왔다. 자신이 확보한 리스트에 필요하면 조직장이 추가로 평가자를 더 넣기도 한다. 문제가 된 동료평가 항목은 객관식으로 '이 동료와 다시 함께 일하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이다. 응답자는 ‘다시 함께 일하고 싶다’ ‘상관없다’ ‘다시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 ‘판단 불가’로 나눠져 있다. 피평가자는 이 비율을 확인할 수 있다. 회사의 전체 평균도 보여주지만 '다시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라는 평가를 받았을 때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어떻게 개선되었는지 모르지만 이 글이 올라왔을 당시 조직장은 이 평가를 참고해서 연봉결정이나 인사에 반영했다. ‘함께 일하고 싶지 않다’는 답변을 받은 비율은 아주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직에 사명과 가치의 울타리가 무너진 회사에서 동료평가는 구성원을 공개적으로 상해하는 공인된 무기가 된다. 울타리가 무너진 회사에서 동료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는 상대의 아픔에 대한 긍휼을 전제로한 진실한 Hard Talk이 되지 못한다 . 이런 회사에서 동료평가는 상대에게 상처만 남기고 상처받은 구성원이 피를 흘리고 죽어가지만 자신의 처지도 급해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사마리아인은 없다.
Netflix는 회사 살립초기 회사의 사명과 목적을 살려내 모든 구성원이 하드톡을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문화를 만들지 못하면 결국 정보가 왜곡되고 머무는 곳에만 머물다 썩게 되어 회사를 무너트린다고 가정하고 Hard Talk을 공식화하는 Culture Deck을 만들어 사용했다. 초기 Netflix의 사명과 목적이 작동되고 있을 때 소통에서 털끝만큼도 왜곡없이 그대로 전하는 Brutal Transparency 정책이 Netflix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회사의 사명의 울타리가 무너지는 조짐을 보이자 유능한 많은 직원들이 Brutal Transparency를 핑게로 타 회사로 이직했다.
조직에 사명의 울타리가 무너지고 긍휼감이 사라지면 특히 조직의 수장은 자신에 관한 나쁜 이야기를 듣는 마지막 사람으로 전락하고 조직은 무너진다. 조직의 리더가 가진 상처에 구성원 모두가 거적을 덮어놓고 아첨하는 Fancy Talk이 난무한다. 리더 스스로도 자신의 상처에 구더기가 생긴 것을 들춰볼 수 있는 용기가 사라지면 조직의 백발백중 무너진다.
최근에 발매된 베스트 셀러 김경묵의 <이도 다이어리>에 보면 세종이 부하들이 하드톡을 포기하는 상황이 초래되지 않기 위해 얼마나 측은하게 노력했는 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가 나온다. 다행히 세종은 신하들이 생각없이 내뱉는 하드톡의 아픔을 감내하려는 용기를 가진 왕이었다. 책을 보면 매일 비판을 위한 비판을 일삼는 김말생에게도 항상 먼저 다가가 <너의 의견은 어떠하냐?>고 먼저 묻고 비판을 듣고도 <네 말이 아름답다>라고 칭찬해주고 있다. 다이어리에 보면 세종 스스로도 이런 비판을 들으면 개인적으로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그럼에도 세종이 이런 Hard Talk을 감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보다 더 아픈 백성들이 생생지락하는 조선의 사명을 실현하기 위함이었다.
한 마디로 세종이 하드톡으로 소통의 나라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조선에 대한 사명과 백성에 대한 긍휼의 마음이 신하에게 따뜻한 울타리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종은 모든 신하들에게 요즈음 코칭 업계에서 가장 뜨겁게 전파하고 있는 One on One Talk인 윤대를 손수 실행했던 왕이었다. 소통이라는 측면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세종 조선의 발끝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드톡은 고사하고 심지어 공직에 오랫동안 몸 담았던 사람들조차 용기 있게 진실을 이야기하는 파레시아, 즉 증인선서를 거부하는 사태에까지 도달했다.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회사에서 360도 평가시스템을 작동시킨다. 카카오 사례가 증명하듯 회사의 사명과 구성원에 대한 긍휼감이 사라진 회사에서 이런 시스템을 가동한다는 것은 오히려 독이다.
사명과 긍휼의 울타리가 복원되고 이 따듯한 울타리 안에서 모든 구성원이 주인이 되어 용기 있게 난장하고 난장을 통해 도달한 합의에 대해서는 모두가 제심합력하여 사명을 실현하는 나라, 사회, 조직이 시급하게 다시 세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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