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의 고원을 세우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사)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 진성리더십 도반들도 국민대학교 리더십 코칭 석사 과정에 참여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격려도 할 겸 컨퍼런스에 참관했다.

국민대학교가 13년 전 시작한 리더십과 코칭과정이 이렇게 깊이 있게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네트워크의 외연을 확장한 것에 놀라웠다. 리코(리더십과 코칭)가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겠지만 넘어지지 않은 나무로 성장했다는 생각에 대견스러웠다.

컨퍼런스의 주제는 요즈음 기업에서 뜨거운 주제로 떠오르고 있는 <심리적 안정감(Psychological Safety)>이었다.

키노트는 연세대학교 상담심리학자인 권수영 교수가 맡았다. 심리적 안전 지대가 제공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격노와 불안에 대해 설명하고 이것을 자제시키는 구심력인 자아에 대한 성찰과 사랑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내용을 듣다 보니 레비나스의 절대적 타자와 아렌트의 절대적 환대의 개념이 연상되었다. 요즈음은 철학 인문학, 사회과학이 각자의 학문적 기능에 갇히는 것을 넘어 종횡무진 협업의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비나스의 절대적 타자는 상대를 물상화(Reification)된 수단이자 포획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극복할 때 떠오르는 개념이다. 누군가에 의해 상대가 물상화된 도구로 규정될 때 이 도구에 대한 기대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기능적으로 제대로 봉사하는 것이다. 망치가 존재를 드러내는 경우는 도구인 망치가 주체의 손을 찍었거나 다른 사람을 살해하는 도구로 전용될 때다. 제대로 못을 박고 있는 망치라면 망치를 운용하는 사람들은 망치의 존재를 못 느껴야 한다. 문제는 상대를 자신의 욕구를 위해 봉사하는 수단으로 규정하면 상대는 주체의 기대대로 존재를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데 인간이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존재를 드러내는 사건은 상대가 도구가 되어주기를 기대했던 주체의 입장에 쐐기를 박고 망치가 되어 주체의 손등을 찍은 참사를 일으킨다. 환대는 고사하고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포획하기 위한 전쟁이다. 상대를 물상화된 대상으로 보는 인간관계에서는 서로가 상대를 망치로 찍는 난투극이 벌어지면 서로는 문제를 상대에게 전가시켜가며 분노를 폭발한다. 대한민국 호가 환대를 잃어버리고 표류하는 배가 된 이유는 모두가 상대를 도구로 물상화 시킨 것에 뿌리가 있다. 심지어 가정과 학교에서도 힘이 없는 아이들은 부모와 선생을 보며 "제발 망치로 저를 살해하지 말고 살려주세요"라고 애처롭게 애원하지만 아이가 자신의 도구인 선생과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의 애원은 제압해야 할 반란이다.

절대적 환대는 상대를 자신의 도구로 포획하려는 기획을 포기하고 상대를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존재로서 대할 때 생성된다. 아픔에 오롯시 집중해 상대의 이름과 조건을 묻지 않고 환대하는 행위가 절대적 환대다. 이런 환대의 에너지가 자아와 타아에 대한 긍휼감(Compassion)이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긍휼을 체험하는 사람들만 아렌트의 절대적 환대의 주체가 된다.

첫째 주제 세션을 듣다 보니 IMF와 함께 도입된 신자유주의가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물상화 시켰고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사회와 회사가 망치로 서로를 공격하는 전쟁터로 전락했다는 처참한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넘치는 나라가 되었다. 대한민국이 많이 아프다.

둘째 세션은 분과 세션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위한 리더십 전략(이창준 대표)과 심리적 안정감을 위한 코칭전략(윤여순 코치)이었다. (사)한국조직경영개발학회의 회장이기도한 이창준 박사의 세션은 골수팬들의 종교단체 느낌이 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본인이 참가한 세션이 윤여순 코치 세션이어서 참관은 못했지만 이창준 박사 세션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단순하지만 명료하고 파워풀하다는 의견을 전했다. 진성리더십에 대한 찬사로 들렸다. 본인이 참가했던 윤여순 코치 세션을 듣고 있자니 코치로서 전문 자격증을 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자격증을 넘어 좋은 코치가 되는 것은 각고의 노력과 희생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자격증만 있는 코치를 넘어 진성코치가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고난도의 험난한 길임을 각성할 수 있었다. 윤여순 코치의 내담자들을 향한 긍휼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세션은 심리적 안정감을 어떻게 조직에 실천할 것인가의 세션으로 국민대학교의 김나정 교수와 삼성의 이도한 사내교수, 이동훈 LG 상무, 정다정 매타 홍보총괄이 참여했고 김웅배 교수가 모더레이터로 참여했다.

김나정 교수가 심리적 안정감이 학문적으로 에드몬슨을 넘어 어디에서 시작되었고 지금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심리적 안정감이 달성될 때 조직은 어떤 효익을 누릴 수 있는지를 리뷰했다. 리뷰를 듣고 있자니 전체적인 맥락을 잘 꿰뚫어가며 조직에 사용될 개연성을 명료하게 설명했다. 김나정 교수의 조근조근하지만 심도 있는 리뷰를 듣고 있자니 앞으로 이 분야에서 크게 성공할 스타 교수의 탄생을 읽을 수 있었다. 메타를 대표해 실무진 토론자로 나선 정다정 홍보총괄은 메타에서 다양성, 형평, 포용의 문제가 심리적 안정감을 전제로 해결될 수 있음을 이야기 했는데 메타의 DEI에 대한 진정성 있는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메타에 대해 좋지 않던 선입견이 많이 중화되었다.

조직을 포함해서 사회에서의 심리적 안정감에 대한 최초의 통찰은 루소에 의해서다. 루소는 사회계약이 실현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울타리 개념을 도입했다. 루소는 인간의 조상들이 동물의 왕국이 아니라 지금의 인류가 가능하게 한 문화의 원형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를 울타리로 설명했다.

인류가 동물과 구별되기 시작한 심리적 안정감을 가진 공동체를 만들어낸 기원은 적자생존을 위해 동물과 경쟁을 해가며 사냥을 위해 협동하던 낮이 아니라 밤에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인류의 조상들은 어느 날부터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빙 둘러 앉아서 서로의 등을 지켜주는 울타리를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인류가 동물과 구별되는 문화를 만들어낸 비밀은 어깨와 어깨와 등과 등을 연결해 만들어낸 울타리였다.

인류는 밤이 되면 모닥불을 피우고 서로의 어깨와 등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그 안에서 심리적 안정감을 가지자 낮에 수렵채취 과정에서 다친 사람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치료가 끝나자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살았던 서로의 노고도 치하했다. 공동체의 시작이다. 공동체는 울타리가 만든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울타리를 중심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심리적 안정감이 생기자 모여 앉았던 사람들은 공동의 운명을 상징하는 모닥불을 어떻게 지키고 키워 더 나은 내일을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더 나은 내일이 실제 가능하다는 사실이 받아 들여지자 부족 구성원들은 협동(Cooperation)이 아닌 협업(Collaboration) 개념을 도출했다. 구글에서 생성한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도 팀에서 협동을 넘어 협업으로 심리적 안정감을 만들어낸 사례다.

울타리는 심리적 안정감의 그릇이고 심리적 안정감은 이 그릇에 담긴 에너지 정서이다. 학자들이나 실무자들이 내용에 집중하다 정작 가장 중요한 울타리에 대한 설계를 놓치고 있다. 울타리 없이 이야기되는 심리적 안정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끝난다.

사명의 울타리와 협업은 장소와 시간을 떠나 구성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체험하게 했고 각자도생을 넘어서는 집단의 힘을 체험하게 했다. 인류는 어깨와 등에서 시작한 작은 울타리 개념을 사명의 울타리 개념으로 진화시켜 지금의 인류를 만들어냈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사명의 울타리를 만들고 이를 위해 협업하지 못한다면 조직은 여전히 동물의 왕국이다. 이런 조직에서는 구성원에게 강점을 세워 적의 약점을 공격하도록 이기는 전략을 가르쳐 주면 이런 구성원은 낮에는 나가서 싸우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밤이 되면 얼굴을 바꿨다. 구성원이 더는 자신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아니기 때문에 밤에 방심하고 있으면 이들은 낮에 적에 대항해 연마했던 전략과 무기를 서로에게 들이댄다. 더 나아가 힘이 있는 구성원들이 협동이라는 명목으로 정치해가며 조직에 카르텔 토굴을 파고 조직을 동물의 왕국으로 만든다.

제대로 된 울타리가 없는 조직은 한번도 홈그라운드 경기의 이점을 누리지 못한다. 동료들이 서로가 이기는 것을 마음 속으로 응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홈 관객이 되어 우리 팀을 응원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경기가 적진에서 응원 관객이 없는 고립무원의 원정경기다. 똑 같은 기량의 팀이라면 누가 이기고 누가 질 것인지는 정해진 문제다.

IMF에서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HR은 대한민국의 대부분의 기업이 돈을 벌어야 기업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사명의 울타리를 허물었다. 울타리가 없어도 경기가 좋을 때는 남의 노획물에 손을 대지 않지만 L자 경기가 지속되어 사냥감이 씨가 말라가는 상황에서는 다른 이야기다.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며 남의 노획물에 손을 대지 않으면 자신이 먼저 소멸한다. 신자유주의 전략적 HR은 조직을 절대적 제로섬 게임장으로 만들었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에서 이기는 전략을 앞세워 조직을 Hobbes가 주창하는 <모두에 대한 모두의 투쟁장>만들었다. 신자유주의의 울타리 허물기는 기업을 다시 동물의 왕국으로 전락시켰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가, 정치, 기업, 학교, 병원과 의사를 망라하고 모두 동물의 왕국의 원리인 신 진화론에 의해 점령 당했다.

제대로 된 사명의 울타리가 없는 조직과 사회는 각자도생 하는 동물의 왕국이다. 회사의 기술적 수준과 차별적 역량이 뛰어나도 지속가능한 회사는 아니다. 회사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각자도생의 원리를 숭배하는 동물원일 뿐이다.

이번 컨퍼런스를 기반으로 기업과 코칭에서 심리적 안정지대의 효과성에 집중하는 연구와 실천을 넘어서 심리적 안정감을 담아낼 수 있는 울타리의 중요성을 각성하고 무너진 울타리를 다시 세우기 위해 일어서는 코치와 조직이 많이 생길 수 있기를 소망했다. 울타리가 다시 복원되어 많은 이들이 #급진_거북이 로 더 나은 변화를 완성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급진적 거북이가 집단적으로 담을 타오르는 담쟁이가 되어 담을 넘어트리는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