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진정한 자아를 무시한 채 상상의 자아를 저장하고 보존하기위해 더 애쓴다.
ㅡ 파스칼ㅡ
설사 스스로나 남들의 눈에 자신이 진정성이 있는 사람으로 묘사될지라도 나의 나에 대한 묘사는 항상 허공을 떠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나 자신에게 혹은 다른 사람에게 끝없이 말하지만 어느 순간도 나를 완벽하게 그려내지는 못한다. 내일도 나를 그려내는 작업에 몰두하겠지만 내 좌절감의 무게는 결코 작아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내가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보다 빨리 변해 가고 그런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살수록 나는 더욱 속절없이 길을 잃어 버리고.
왜 이와같은 미스터리가 발생할까?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점점 진정성을 상실하는 삶에 빠져들게 되고 그럴수록 자신의 정체성은 점점 다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진정성있게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진정성은 되어감 becoming 을 통해서 완성된다.
진정성있는 나의 삶은 다음과 같은 네 단계의 되어감을 통해서 완성된다. 이 되어감을 이해한다면 자신 삶의 참모습을 보여 줄듯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자신의 정체성을 따라잡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첫 단계는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되어 세상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스토리를 만드는 단계이다. 이 스토리의 두 가지 요소가 진정성을 결정해준다. 자신이 스토리의 주인공인지와 이 스토리는 자신과 남들에게 윤리적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이다. 자신이 주인공이 아닌 스토리는 차별화가 불가능한 짝퉁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윤리적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면 모든 스토리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진정성을 위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90%가 이 첫 단계를 통과한다.
둘째 단계는 스토리에서 설파한 약속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측은하고 희생적으로 실천하는지의 문제이다. 사람들의 진정성을 판단할 때 이 사람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자신이 설파한 삶의 약속을 지키는지를 면밀히 지켜보고 판단한다. 둘째 단계의 핵심은 측은함과 희생이 담겨있는 행동과 실천이다. 2단계를 통과하는 사람은 진정성있는 삶을 약속한 사람들 중 10%의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그 만큼 진정성은 말보다 실천이 힘든 것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신의 스토리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다보면 자신의 스토리에 믿음의 뿌리가 생긴다. 스토리가 믿음의 뿌리를 획득하는 단계는 진정성있는 삶의 3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스토리에 믿음의 뿌리가 생기면 비로서 진정성을 연기하는 삶에서 벗어난다. 연기하지 않아도 자신의 스토리가 시키는대로 보고 말하고 행동하고 태도를 보인다. 자신의 스토리와 다른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연기가 된다. 이 단계에 도달하는 사람은 진정성 있는 삶을 위해서 살기로 결심한 사람의 5% 정도만 맛보는 삶이다.
진정성 있는 삶의 마지막 단계는 자신의 삶의 스토리를 플랫폼으로 삼아 세상을 더 행복하고 건강한 세상으로 바꾸어 세상에 문화적 족적을 남기는 단계이다. 자신의 스토리가 믿음의 뿌리를 획 득하면 세상을 새롭게 통찰할 수 있는 새로 운 눈을 획득한 것이다. 이 눈은 나와 세상의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는 안목과 통찰력을 제시해준다. 내가 세상을 다녀 갔기 때문에 세상을 더 아름답고 건강하고 행복한 세상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목격하고 이것을 현실화 시키는 단계이다. 진정성 있는 삶을 결심한 1%만의 사람들만이 이 단계의 삶을 만끽한다. 진성리더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만 자신에 대한 스토리를 가지고 자신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단계가 된다. 정체성이 완성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