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긍휼감
아주 평범한 여의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비밀:
환자는 고장난 기계일까?
영화 언노운 걸 이야기이다.
의사 ‘제니’는 한밤 중 누군가 병원 문을 두드리지만 진료가 끝나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다음 날 병원 문을 두드렸던 신원미상의 소녀가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죄책감에 사로잡힌 ‘제니’는 소녀를 가족에게 찾아주기 위해 소녀 무덤을 마련해주고 소녀의 행적을 직접 찾아 나선다.
제니가 여자아이의 행적을 찾아나선 이유는 자신이 문을 열어주었다면 여자아이가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았을수도 있다는 여자아이에 대한 긍휼감 때문이다. 진료가 끝난 시간에 문을 안 열어준 것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지만 자신이 안에 있었음에도 그 당시 자신의 개인적 심기가 불편해서 문을 열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다..
긍휼감(compassion)은 내가 요즈음에 가장 강조하는 진성리더의 관계적 투명성의 가장 핵심 덕목이다. 이 영화를 보기로 작정한 것도 진성리더십 아카데미를 이끌고 있는 이창준박사의 권유에 의해서이고 난 이번 대통령 선거도 긍휼감이 가장 넘치는 후보를 뽑을 예정이다. 다른 모든 능력은 협치를 통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긍휼감은 협치가 불가능한 능력이다. 하지만 리더라면 반드가 갖추어야 할 능력이다.
긍휼감(compassion)은 공감(empathy)이나 동정(sympathy)과는 차원이 다른 최고의 도덕적 감정이다. 공감은 상대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다. 재미있는 코메디를 보면 웃고 또 채널이 바뀌어 슬픈 드라마가 나오는 울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세상에 비타민이 되어주지만 이 능력이 있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는 일은 없다. 동정은 상대 고통에 대해 손을잡고 위로해 줄 수 있는 능력이다. 하지만 섣부른 동정심은 상대에게 상처만를 남긴다. 긍휼감은 상대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내재화해서 같이 손을 잡고 파트너십을 통해 그 고통의 밖으로 빠져나오게 행동할 수 있는 행동의 능력이다. 단순히 죄책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 이 죄에 대해 사함을 받을 수 있는 자기변화행동을 하는 것이 긍휼감이다. 세상의 변화는 오직 긍휼감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시작된다.
이야기로 돌아가서 제니는 긍휼감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위험에 처하고 경찰로부터는 찾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소녀의 고통이 자신의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제니의 긍휼감에 감화된 범인들은 스스로가 범인임을 자백한다. 몸에 밴 긍휼감을 통해 제니는 인턴으로 근무하는 청년을 변화시키고 자신이 치료하는 환자들을 변화시킨다.
한국의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다보면 의사들은 진료시간에 쫒기여 환자와 눈 한 번 맞추는 시간도 아낀다. 의사와 병원에게 환자는 고통의 대상이 아니라 고장난 기계일 뿐이다. 환자의 고통을 다루는 의사가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긍휼감이 없다는 것은 의사로서의 영혼이 없는 것이다. 환자가 고장난 기계라면 의사는 당연히 그냥 기계를 고치는 기사일 뿐이다. 제니가 의사 가운을 입지 않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상대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느낄 수 있는 사람들만이 상대에 집중하고 그럼을 통해서 자신의 살아 있는 의도를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다. 우리는 친구가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할 때도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긍휼감의 부재가 가져온 부작용이다. 상대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내재화 할 수 있는 사람만이 상대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혜안을 획득한다. 상황을 덮고있는 거적을 걷어내고 그 속에서 진실을 찾아 낼 수 있는 사람은 긍휼감을 가진 사람들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병원을 찾아온 노인을 부축해가며 병원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