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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뉴 노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Jun 15, 2018 ·4분 ·jkyoon · 3,457

대한민국 뉴노멀 벗어날 수 있을까?
혁신, 포용, 협업의 리더십

뉴노멀 (New Normal)이란 말은 신자유주의의 경쟁적 성장 이후의 경재 패러다임을 이야기한다. 성장과 초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2008년 금융위기와 함께 무너지고 저성장, 저금리, 저물가, 저소득, 저수익율 등으로 대표되는 경제기조가 새로운 표준으로 정착되고 있다. 특별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뉴노멀의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이 뉴노멀을 극복하고 제 2의 도약을 해서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이 다른 신생국에 비해 이 뉴노멀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게 하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양극화와 고령화 문제이다. 성장의 열매를 같이 나눠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달콤한 성장주의는 유혹은 양극화라는 기형아를 출산하고 뉴노멀이 도래하자 서로에게 잘못을 떠 넘기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는 산업화와 지식사회를 이끌었던 인력들이 고령화를 넘어서 초고령사회로 급속하게 이입하고 있다. 뉴노멀 국면 자체도 벗어나기도 힘든 상황에 노령화와 양극화라는 거대한 배낭을 지고 수렁을 벗어나야 하는 형국이다.

대한민국의 뉴노멀인 저성장, 양극화, 노령화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을 통해 저성장 문제가 극복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은데 위험한 생각이다. 혁신이 빠진 소득주도는 경제의 활력만을 왜곡시킬 뿐이다. 소득주도라고 이름은 붙였지만 혁신과 활력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은 소득주도는 가짜 황금수도꼭지일 뿐이다. 혁신을 통해서 증대된 소득이 아니라면 모두 신기루일 뿐이다. 지금까지 혁신의 정도는 제조업의 요소생산성에 의해서 가늠이 되었는데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된다면 이 요소생산성은 제조업과 디지털 간 컨버전스가 일어나는 플랫폼이 주도할 것이다. 제조업 중심으로 요소생산성을 혁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벗어나서 디지털과 제조업의 컨버전스를 일으키는 플랫폼이 요소생산성을 주도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정부는 소득주도로 통계 숫자를 정치적으로 늘리는 정치노름에서 벗어나 이런 플랫폼에서 미래를 보고 이 미래를 현실에서 실험할 수 있는 혁신의 실험장을 건설하는 일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는 다양성에 대한 시각이다. 우리나라는 밀레니얼 세대와 기성세대, 양극화로 벌어진 부자와 가난한 자 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고착된 시각을 가지고 상대를 폄하하거나 적대세력으로 간주하는 비정상의 갈등 상태가 고착되고 있다. 사회갈등은 모든 영역에 편재되어 있다. 대한항공과 같은 회사에서도 혈연과 비혈연적 종업원 간의 보이지 않은 간격은 더 심화되어 갑질의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들 모든 것의 문제는 힘없은 소수를 이해하고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으로 취급해가며 힘이 없는 세력을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도구로 생각하려는 경향을 부축이고 있다. 다양성에 대한 포용적 시각 없이 뉴노멀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성향들이 지속된다면 국가의 큰 대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협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다양성을 존중하고 소수를 인간으로 받아들이려는 포용 리더십(inclusive leadership)이 없다면 힘있는 배경의 사람들은 힘이 없는 배경을 가진 인재를 자신의 도구로 취급하여 둘간의 간격을 고착화시키려는 성향을 가속화할 것이다. 지금은 어린아이의 힘이라도 빌려야 할 때 이런 소모적 갈등은 뉴노멀을 더 고착화시킬 뿐이다.

마지막으로 요구되는 것이 협업능력을 신장시키는 것이다. 초연결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목적지향적 스토리를 기반으로 협업함에 의해서 미래가 만들어진다.고령화의 문제도 더 큰 목적적 스토리를 중심으로 협업의 문제로 해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된 인력은 삶의 지혜를 가지고 있고 젊은 세대들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 이들이 서로 차이를 인정해가며 뉴노멀을 벗어나기 위해 협업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고령화는 세대갈등만 부축이게 될 것이다. 협업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설 수 있는 목적에 동의해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초월할 수 있는 힘 때문일 것이다.

혁신, 포용, 협업의 성공을 가늠하는 것은 목적에 대한 뚜렸한 믿음이다. 혁신은 실패경험의 축적을 통해서 만들어지는데 목적으로 지향되어 있지 못한 실패는 학습능력으로 축적되지 못한다. 목적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혈연, 지연, 학연의 경계를 넘어서 다양성을 포용할 방법이 없다. 협업은 협동과는 달리 공동의 목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바야흐로 목적경영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혁신, 다양성, 목적 지향적 협업 등을 실제로 시도해서 성공시킬 역량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집단이 기업들이다. 정부는 기업들이 이런 실험들을 성공시킬 수 있게 뒤에서 밀어주고 운동장을 마련해주는 역할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버려야 할 것은 과거처럼 자신이 정책을 주도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세상은 정부가 주도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를 많이 벗어나 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는 첫 걸음은 정부관료들이 이런 구시대적 패러다임을 벗어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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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