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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남들의 인정에 목을 맬까?

Aug 15, 2019 ·4분 ·jkyoon · 2,724

우리는 왜 남들의 인정에 목숨을 걸까?
자신을 사랑하지 못함에 대하여

국민일보 김창욱 기자의 글을 보면 남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성인들의 보편적 문제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인정은 청소년기 아이들에게는 생사가 걸린 문제이다. 청소년기 아이들은 친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심지어 목숨을 건다. 또한 이들은 인정받음을 쟁취하기 위해 왕따라는 또래 정치에 몰입하기도 한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겪었던 이런 정치적 트라우마는 성인이 되어도 극복되지 못하고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명품 등을 통한 과시적 소비나 성형중독, 모범생 콤플랙스, 참함의 코스프레 등등은 아직도 몸은 어른이지만 아직도 청소년기의 인정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이다.

심지어 조직심리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요즈음 중요한 것이 칭찬이 아니라 부하를 인정해주는 한 마디라고 강조한다. 칭찬은 어린이에게나 작동되지 세상물정 뻔히 아는 어른들에게 작동되는 원리는 아니라고 본다. 칭찬보다 상대를 인정해주는 인정만이 어른들에게 강화의 메카니즘으로 작동된다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남들로부터 인정에 목을 메며 살아갈까?

사회심리학자들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메카니즘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위라는 것은 이미 높은 자리를 획득한 사람들이 주로 배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잘보이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지름길이다. 이들은 지금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현재의 다양한 지위요소 (학벌, 외모, 성별, 지연, 가족배경 등등)를 기반으로 일을 잘할 것인지 못할 것인지의 기대를 형성한다. 이 기대를 성과기대(performance expectation)이라고 칭한다. 성과기대는 피그말리온 효과와 비슷한 효과를 가져온다. 성과기대가 높게 형성되면 상사는 자신의 기대를 확증하기 위해 높은 기대점수를 가진 구성원에게 기회도 더 주고 중요한 일도 더 많이 할당하고 승진도 시켜가며 자신의 생각이 옭았음을 증명한다. 결국 상사가 가설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과기대에 따라 회사내 사회적 지위가 분배된다. 인정이란 이 성과기대를 확증하는 가장 중요한 메카니즘이다. 특히 직장인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상사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면 목숨이라도 바친다.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전쟁에 일단 몰입하게 되면 인정투쟁에서 벗어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신문기사의 타이틀이 주장하듯이 나는 더이상 너에게 증명할 것이 없다고 선언하는 용기를 갖는 것은 말대로 쉬운 일은 아니다. 인정투쟁 속에 숨겨 있는 메카니즘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쉽게 할 수 있는 주장이다.

이런 인정투쟁에 몰입하고 있는 사람들을 분석해보면 의외로 재능이나 가진 것이 많은 모범생들이 많다. 이들의 기득권 세력이 설정한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을 자신의 자신의 존재이유로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기득권 세력이 써준 대본을 그대로 연기하면서 사는 연기자들이다. 이들 모범생들은 아무리 잘되어도 사회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하수인일 뿐이지 사회적 변화나 가치를 창출하는 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재능이 없어서 뛰어난 모범생이 못되는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착한 사람 코스프레에 몰입하기도 한다. 착함의 코스프레는 기득권 세력에게 적어도 반기를 들 사람들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보냄을 통해 최소한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는 전략이다.

기대와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연인관계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사람들은 상대를 사랑하는 한 사랑하는 상대를 주인공으로 세운다. 상대를 주인공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도구로 생각한다는 것은 사랑이 식었다는 증거다. 이 사랑의 원리는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사람들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한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시작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기득권 세력이나 상사가 써준 대본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쓴 대본으로 자신을 주인공이 되어 만들기 시작한다. 이들이 인정받고 싶어하는 대상은 자신이 지향하는 미래를 같이 만들어나가는 동업자들이다. 이들은 또한 자신의 장점만 사랑하는 사랑의 편애를 과감하게 탈피한다. 이들은 자신의 아픔까지 사랑하여 이것을 성숙시켜 온전한 자신을 사랑한다. 장점만 사랑하는 사랑의 편애는 자신에게 햇빛만 내리쬐게 만듬에 의해서 자신을 사막화시키는 주범이라는 것을 안다. 자신을 주인공으로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온전하게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장점과 가면만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의 맥락을 염두에두고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세우고 이 정체성을 기반으로 자신의 아픔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자신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지 않는데 누가 자신을 인정할 수 있을까? 이런 인정은 허구적이다. 모범생 마인드와 착함의 코스프레를 지금이라도 벗어버리고 자신의 아픔조차도 사랑하는 사람을 선언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온전한 정체성을 세우고 이 정체성을 사랑함을 통해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만이 기득권 세력이 자신이 세운 질서의 하수인으로 나를 세우도록 몰아세우는 인정투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사에 등장하는 박민구씨의 문제는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지 못함에서 생긴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박민구씨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부하, 자식, 제자들의 맨토로 이들의 성장을 기대한다면 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충고는 “진심으로 네 자신을 네 자신으로 사랑하라”라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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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