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경영 시대의 성공원리
남들의 성공을 돕는 일에 크게 성공하다:
목적경제의 시대의 성공원리
지금은 바야흐로 3차 산업혁명을 이끌었던 정보화 시대의 권력이 급격히 무너지는 조짐을 여기저기서 목격한다.
중요한 정보와 지식을 누가 만들고 누가 배분하고 누가 독점적으로 소비하는지인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해 권력이 결정되는 정보화 경제는 초연결사회가 도래함에 의해 급속하게 붕괴되었다. 초연결사회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연결되고 연결된 것들 사이에는 카메라가 달려서 정보가 수집되고 이 수집된 정보는 필요에 따라 모두에게 공유된다. 정보사회에서 권력의 기반으로 작동하던 정보의 비대칭성이 무너진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무너질 때 가장 타격을 받는 영역이 신문방송, 대학, 종교이다.
전통적인 미디어 왕국들이 가장 먼저 철퇴를 맞고 있다. 요즈음은 정보의 원천이고 장본인들이 다 신문기자이고 PD가 되는 것이 가능한 정보의 민주화 시대이다. 정보원의 자리에 머물렀던 이들은 SNS라는 자신만의 채널을 통해 전통적 미디에 채널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규레이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더 이상 신문기자나 방송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넘겨줄 이유가 없어졌다. 누구나가 신문기자이고 방송기자이고 PD인 정보의 민주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전통적 의미의 신문이나 방송은 변신을 하지 못하고 과거에 누렸던 기득권을 연장하려는 시도를 한다면 쇠락을 더욱 부추기는 운명에 처해질 것이다.
정보화 사회의 붕괴와 더불어 사망선고를 받아놓은 또 다른 영역은 대학이다. 대학은 지금까지 고급지식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분배하는 채널의 권한을 쥐고 학생들을 교실에 볼모로 잡아서 졸업장을 팔아가며 생존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의 대학강의실에서는 사실 구글에서 가르치는 정보와 지식 수순을 넘어서는 강의를 제공하기가 힘들어졌다. 다만 지금까지 밥을 떠 먹여주는 방식으로 성장한 학생들이 자신의 습관이 버리지 못해 구글에서 더 쉽게 배울 수 있는 지식을 이들에게 떠 먹여주는 것으로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대학이 지금 상태라면 붕괴의 수준을 밟게 되는 것은 너무 자명하다
교회나 종교계도 문제다. 요즈음은 직접 출석해서 설교를 듣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 인터넷을 통해 주요교회 목회자의 설교를 들을 수 있고 이들을 비교해서 어느 목회자의 설교가 뛰어난지 직접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설교를 놓고 극단적으로 경쟁하는 국면은 기도응답의 문제로까지 번진다. 기도응답을 세속적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신을 따를 이유가 없다. 신에게 기도응답을 요청하면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구글에게 물어보면 다 자세하게 응답해준다. 종교가 초연결시대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여 변화에 실패한다면 결국 종교는 쇠퇴할 것이다.
초연결 디지털 시대를 반영하는 경제의 끌개는 무엇일까?
목적경제가 그 대안으로 급속하게 떠오르고 있다. 초연결시대는 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큰 성공을 위해서는 누군가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것이 분절된 시대에는 연결되지 못한 구조적 구멍을 이어주는 정보를 가진 브로커들이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득세할 수 있었다면 이런 사람들이 득세할 수 있는 기반이 사라졌다. 대신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이 흐르는 방향을 잡아내는 사람들이 리더로 등장한다. 사람이나 기업은 다 목표를 추구하는 삶을 살고 있고 이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이 목표의 목표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서 자신의 존재이유를 소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리더로 등장한다. 초연결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구글, 넷플릭스, 아마존, MS, 애플 등은 다 이런 회사들이다.
목표의 종착역 즉 목표를 추구하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목적이다. 이 목적을 현재로 가져와서 자신의 비즈니스와 삶에 씨앗으로 뿌려 과일나무를 만들어내고 여기서 얻어진 과일을 통해 이런 미래가 도래할 것임을 소구할 수 있는 사람들만 결국 생존을 넘어 번성을 누린다. 이와 같은 목적경제는 초연결사회의 상호의존성을 기반으로 생긴 자연스런 흐름이다.
목적경제에서 규정하는 성공은 이런 상호의존성을 반영하여 남들의 성공을 돕는 일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는지에 의해서 규정된다. 남들과 경쟁해서 상대를 누르고 일등이 되거나 이등이 되는 것을 성공으로 규정해온 신자유주의 성공과는 결이 다른 성공의 개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