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를 외치다
유레카를 외치다
참 행복의 비밀
많은 사람들이 삶의 행복은 돈, 승진, 권력, 성과 등 외재적 보상에서 오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따라서 시간의 대부분을 외재적 보상을 구하는데 사용한다. 외재적 보상을 추구하는 삶이란 돈이나 승진 성과를 내가 따라잡는 방식의 삶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감했겠지만 돈이 달리는 속도와 내가 달리는 속도는 항상 간발의 차이가 있어서 내가 돈을 따라잡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봤자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결국 돈이나 승진이나 성과를 열심히 달려서 따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답은 발상의 전환을 거쳐 돈이 나를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
돈이 나를 따라오게 하는 방법이 내재적 보상이다. 내재적 보상은 내가 돈을 쫓아 가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나를 찾아오게 나만의 미끼를 만드는 방법이다. 이 미끼가 돈을 따라오게 할 정도의 향내를 풍기게 해야 한다. 내가 낼 수 있는 나만의 최고의 향내는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의미 있게 여기는 일을 흥겹게 하다보면 저절도 생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내 스스로가 성장하게 되고 성장한 내가 만들어내는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은 많은 사람들에게 향기와 매력을 끌어서 이들이 결국 돈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우리 안에는 이런 일을 수행하는 두 명의 자아가 항상 갈등하고 있다. 한 자아는 나의 진정한 주인인 내면적 자아이다. 다른 자아는 이 주인이 시키는 것을 밖으로 돌아다녀가면서 완성하는 임무를 맡은 대리인 자아이다. 대리인 자아가 추구하는 바는 외재적 보상이다. 진정한 주인인 내재적 자아는 자신만의 사명을 찾아 자신만의 주체적 삶을 완성해달라고 주문한다. 주체적 자신을 완성할 때 얻어지는 보상이 내재적 보상이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스토리인 사명을 구현함으로써 더 인격적으로 더 성숙한 것을 얻는 것이 참자아가 추구하는 진짜 보상이다.
대리인 자아는 주로 밖으로만 돌다보니 어느 순간 소위 대리인 문제를 야기시켰다. 주인이 시키는 사명대로 행동하지 않고 밖으로 겉돌면서 자기 만족을 위해서 행동하기 시작했고 주인에게는 거짖으로 보고하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서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진짜 주인이라고 사기를 치기도 한다.
둘 간의 갈등이 심화될수록 행복은 점점 물건너간 일이 됐다. 가끔은 대리인 자아가 깨달음이 있어서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밖으로 나도는 맛에 길들여진 대리인은 다시 가출을 거듭한다.
삶에서 참 행복은 대리인 자아와 주인인 참 자아가 만나서 화해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주인인 자아가 대리인 자아에게 그래 바로 그게 너답게 사는거야라고 칭찬을 해줄 수 있을 정도로 둘의 사이가 좋아졌을 때 내재적 참 행복은 저절도 생긴다.
대리인 자아가 주인자아에게 자신의 밖에서의 삶을 그대로 고백하는 것이 자기성찰이다. 대리인 자아가 주인자아와 손을 잡고 같이 성숙하는 것이 자기규제이다. 대리인 자아가 밖으로 나돌면서 참자아를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서 참자가가 어린아이로 퇴행한 상태가 성인아이이다. 우리는 마음 속에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성인아이 하나를 키우고 산다.
지금까지 주인자아가 주인으로써 행세를 못한 이유는 아마도 주인임을 주장할만한 자신에 대한 증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주인도 남들의 삶을 복제한 삶이 아닌 자신이 주인인 삶의 스토리가 없는 상황에서 대리인 자아게게 감나와라 밤나와라 해도 대리인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가 삶의 참다운 행복을 찾아서 유레카를 외칠 수 있는 순간은 주체적 자아가 외적자아에게 그게 바로 너답게 사는거야라고 선언할 수 있을 때이다. 너답게 사는 것은 true to oneself로 진정성 있는 삶을 찾은 것을 말한다. 진실의 삶의 또 다른 의미인 진정성 있는 삶이란 외적 자아가 내적 자아의 명령에 따라 사명을 구현하는 삶에 나선 상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