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주인의식 살 수 있을까?
돈으로 주인의식을 살 수 있을까?
사장급 종업원의 신화
요즈음 음식점이나 커피전문점에서 서비스를 받다보면 서비스를 해주는 분으로부터 눈을 마주치는 경우를 경험하는 것이 점점 드물어졌다는 생각이다. 이들이 목소리에도 이런 톤의 뭍어있다. 당신은 손님이고 나는 돈을 받고 일하는 파트타임 고용인이니 이 객관적 거리를 침범하지 마시요. 감정노동 같은 것을 절대로 기대도 하지 마세요.
전략적 인사관리라는 기법을 운용하는 사람들은 돈으로 주인의식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전략적 인사관리란 회사의 전략에서 정한대로 일을 해주면 그것에 맞추어서 보상을 해준다는 것이다. 회사의 전략에 따라 과제을 정하는 것은 회사이고 이 명령대로 수행해주는 것은 종업원들이다. 회사의 역할은 머리이고 종업원의 역할은 몸이다. 회사에서 시키는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해보는 것은 금물이다. 회사는 일을 시키는 주인이고 종업원은 고용된 고용인이 된다. 주인은 고용인들에게 시키는대로 일을 하라고 주문을 해놓고 대신 주인의식도 가지라고 신신당부한다.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주문하는 숨겨진 이유는 종업원을 어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고용한 어린이가 대리인 역할을 잘 못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때문이다. 이런 주인의 주문은 피그말리온 효과가 되어 대부분의 순진한 종업원에게는 은연중 세뇌가 된다. 시키는대로 어린이 노릇해가면서 몸으로만 주인의식도 가져보려 노력한다. 하지만 어린이와 주인의식 간의 이중성 때문에 종업원 어린이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주인이 볼 때만 주인의식을 연기하는 연기자가 된다. 커피전문점에 가거나 음식점에 가면 눈을 마추치거나 따뜻하게 응대하는 분들을 만나기 어려운 이유이다.
한때 대리급 사장이니 사장급 대리 등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돌던 때가 있었다. 대리급 사장은 자신의 몸은 대리지만 머리는 사장님이 생각하는 것을 시뮬레이션 해서 자신의 대리일에 적용할 수 있는 보배같은 대리이다. 대리급 사장은 월급장이 사장의 쫀쫀함을 비꼬는 용어다. 진짜 대리급 사장이나 사장급 종업원은 불가능한 것일까?
불가능한 이유는 대리급 사장이나 사장급 종업원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영진들 때문이다.
진짜 주인의식은 자신이 자신 삶에 대한 대본의 텍스트를 스스로 쓰고 이 쓴 대본대로 살 수 있을 때이다. 회사나 음식점이 이런 회사라는 범위나 음식점이 정해놓은 범위에서 종업원들에게 자신의 일인칭 역할을 스스로 쓰게 만드는 것을 허락할 때만 사장급 대리도 생기고 주인급 종업원도 생긴다.
화성을 세운 정조도 화성을 완성한 후 여기에 참여한 디자이너들의 이름을 남기도록 했다. 스티브잡스는 아이폰 개발에 참여한 디자이너의 이름을 핸드폰 안에 프린트하도록 했다.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의 역사를 만들 때 삼성전자의 임원들을 프랑크푸르트에 불러서 신경영의 스토리를 같이 쓰도록 삼성전자의 빈 노트를 넘겨주었고 이런 역사 같이 쓰기가 현재의 삼성전자를 만드는 토대가 되었다. 이 모든 노력의 공통점은 리더가 구성원에게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스토리의 스크립을 쓸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구성원을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참여시키지 못한다면 주인의식은 남의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주인공으로 참여해 자신이 책임져야하는 프로젝트에만 주인의식을 느낀다. 주인의식은 권한과 직책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 권한과 직책에 대한 책임에서만 발원한다. 지금까지 주인의식 증진을 위해 사용되었던 자율성, 임파워먼트, 권한위임, 인게이지먼트 등은 다 종업원에게 자신이 스스로 대본의 Text를 쓸 수 있는 권한을 넘겨주는 일이었다. 요즈음 떠오르고 있는 Netflix 원리는 지금까지의 대본을 쓰는 방식을 한 단계 뛰어 넘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경영진이 대목의 역할을 하고 종업원들이 소목으로 대본을 써왔지만 넷플릭스에서 경영진은 자신들의 역할을 회사의 사명의 튼튼한 울타리를 만들고 이 울타리를 지키는 수문장 일로 최소화 시켰다. 대신 이 울타리 안에서 종업원들이 전문가로 주인공으로 마음껏 튀어놀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역할 대본을 쓰는 자유를 부여한 것이다. 종업원들은 회사가 규정한 사명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통해 회사의 문화적 대본까지 완성한다. 문화적 대본까지 자신들이 완성한다는 생각은 주인의식의 최고봉에 도달할 것이다. 이러자 넷플릭스 종업원들 모두가 주인인 사장급이 되어 일을 했다. 회사가 잘 되지 않을 수 없다.
월급을 많이 주거나 최고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는 것이 주인의식을 만든다는 천민자본주의적 생각을 버려야 한다. 물론 인간에게 돈도 중요하지만 돈만으로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살 수는 없다. 주인의식도 돈으로 살 수 없는 인간본질에 관한 것이다. 많은 금전적 보상은 만들어진 역사적 성과에 소유권을 주장하지 말라는 묵시적 경고일 뿐이다. 이렇게 묵시적으로 경고해놓고 돈을 많이 줬으니 주인의식을 가지라고 주장하는 이율배반만큼 역설적 이율배반도 없다. 돈을 아무리 많이 받는 핵심인재라 하더라도 이런 회사에서는 심리적으로는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한다. 최고의 주인의식은 회사의 문화나 역사적 족적을 만드는 일에 주인공으로 text를 기여했을 때만 생긴다. 주인의식을 원하다면 사명의 울타리를 튼튼하게 정해놓고 이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자신의 텍스트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경영진은 사명의 울타리를 지키는 수문장의 역할부터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사명은 구성원이 자신의 텍스트를 써나가는 플롯을 구성해주기 때문이다. 사명이 없다면 텍스트는 있어도 이야기의 줄거리를 구성하는 플롯이 없다.
임제선사의 설법을 정리한 ‘임제록(臨濟錄)’에는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立處皆眞)’ 란 문구가 있다. ‘어느 장소에서든 주인공일수 있다면, 그가 서는 곳 모두가 참된 곳이다’라는 뜻이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정해진 큰 사명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대본을 스스로 쓰게 만드는 것이 주인의식의 요체였다. 안타갑게도 큰 사명의 울타리가 없다면 자신에게 허락된 범위 내에서라도 자신의 대본을 쓰도록 허락해보자. 새로운 세상이 전개되는 것을 체험할 것이다.
굳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고르라면 생계를 위해 주인의식을 연기하는 고도의 연기자들과 이들의 연기에 지불되는 출연료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