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과 대확행
소확행과 대확행의 경계
대확행을 복원하라
소확행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인 반면 대확행은 크고 확실한 행복이다. 케익에 비유하면 대확행은 케익의 몸통이라면 소확행은 몸통에 크림 등으로 멋지게 장식한 것이다. 대확행이 금이라면 소확행은 금 위에 장식된 꽃이다. 문제는 대확생이 기본적인 회전그네로 돌아가고 있지 않는 상태에서 소확행만 있을 경우는 행복은 파랑새 쫓는 것과 비슷한 형국이 된다. 결국 파랑새를 쫓다가 소진해서 무너지는 삶을 살게 된다. 행복은 파랑새를 따라간다고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행복은 무슨 이유에서든 항상 자신을 따라 굴러들어 온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철학에서 행복은 자신의 존재이유인 삶의 목적을 각성하고 자신이 열심히 노력함에 의해 이 목적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성숙체험에서 나오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철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수월성(Excellence)이라고 명명했다. 철학적으로 수월성은 무엇이 달성된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조금씩 가까워져가는 과정에 지속적으로 놓여 있음을 체험하는 것이다. 수월성은 성숙체험의 과정이 이어져 있음이다. 행복연구에서 이런 큰 확실한 행복상태를 Eudemonia 즉 근원적 행복이라고 명명한다. 유데모니아가 근원적 행복의 기원이고 대확생을 만든다.
소확행은 맛있는 것 먹고 일 안 하고 편히 쉬고 힐링할 때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다. 소확행은 말을 소확행이지만 체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강렬한 조미료 음식을 체험한 경험을 가져다준다. 대확행인 유데모니아가 달성된 상태에 이후에 소확생에 대한 체험은 정말 금상첨화다. 열심히 산을 올라 정상을 정복하는 황홀한 체험을 했다면 이것은 대확행이다. 대확행이후 산 아래 마을에서 동료들과 같이 동동주를 마시는 것은 소확행의 행복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소확생을 추구한다고 산에는 오르지 않고 산 밑의 계곡에 앉아서 하루 종일 동동주를 마신다면 처음에야 행복하겠지만 결국 남는 것은 만취한 자신 뿐이다. 매일 매일 이런 삶을 산다면 얼마 안 가서 자신은 폐인으로 전락한다. 유데모니아 대확행이 전제되지 않은 소확생은 사람을 폐인으로 만드는 첩경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술을 맛있게 마시기 위해 힘들여 운동을 하거나 산을 오른다. 최근 뇌과학에 대한 연구들은 유데모니아는 세로토닌을 분비하고 소확행은 도파민을 분비한다는 것까지 밝혀냈다. 세라토닌 은은하지만 좋은 감정이 지속되게 만드는 신경물질인 반면 도파민은 강한 조미료같은 감정을 발산한다.
우리나라가 한참 성장기를 구가할 때 사람들은 직장에서 많은 성취를 이뤘다. 성취를 통해서 자신이 성장해가는 것을 느끼는 체험이 유대모니아이고 바로 크고 확실한 행복 상태인 대확행이였다. 또한 동료들과 열심히 땀흘려 일한 후에 저녁에 하는 소주 한 잔은 충분히 금상첨화의 소확행을 선사했다. 늦게 집에 들어가도 아침에는 칼같이 일어날 수 있었던 힘은 대확행이 소확행으로 이어져 상승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지금 직장이 이런 성장체험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악마처럼 하루 종일 혹사시키고 이것을 넘어서 저녁 회식에 의무적으로 참여하라고 한다면 회식은 소확행이 아니라 중노동이다. 아니 중노동을 넘어 강제노역에 동원된 것이다.
요즈음 직장에서 이야기하는 워라밸의 문제는 대확행을 상실한 상태에서 소확행만 찾아나서게 되는 상태를 부축인다. 직장에서 일은 더 이상 목적과 연관되어 있지도 않고 단지 돈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전락했다. 직장에서의 일이 더 이상 성장이나 성숙체험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결국 대확생의 기반을 상실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빨리 회사에서 퇴근해서 소확행이라도 챙기는 것이다.
종업원들에게 일을 통해 목적을 실현시키는 성숙을 체험하게 하는 상태를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대확행의 조건에 대한 복원이 없다면 사람들이 체험하는 유데모니아 즉 근원적 행복상태는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조직이 마련해주지 못하니 종업원들이 소확행이라도 꼼꼼히 챙기려는 성향을 가지게 되었다. 요즈음 직장인에게 소확행은 직장에서 생긴 아픔을 잊게 하는 진통제일 뿐이다.
소확행을 완벽하게 달성했을 떄를 상상해보자. 맛있는 것 배부르게 먹고 그늘 아래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대로 딱 죽었으면 좋겠다”이다. 완벽한 소확행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불러들이는 주술이다.
종업원들이 소확행만 추구하고 있다면 결국 이 회사는 이미 죽어가는 회사이다. 직장인 개개인도 회사에서 일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며 성숙하는 유데모니아 상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퇴근하고 개인의 삶에서 유데모니아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완벽한 행복은 WLB에서라기보다는 Work Life Integration에서 온다. Work Life integration이 복원되도록 일터를 사명지향적 역할조직인 전문가들의 놀이터로 재설계해야 한다. 사명지향형 역할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하고 있는 대부분의 일을 위한 일인 가짜 일들을 제거하는 혁신을 전제로 한다. 많은 가짜일들에 피같은 시간을 쏟아야하는 지금의 상황이 직장에서 의미있는 일을 산출하고 완성하는 것을 힘들게 하는 비만의 주범이다. 회사가 사명을 잃어버리는 순간 가짜 일을 구조조정하는 기준을 상실해 가짜 일들이 급증하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소확행과 대확행은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움직이는 생물이다. 대확행에서 채우지 못한 행복을 소확행을 통해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소확행으로 채워야 하는 행복을 대확행으로만 채울 때 일중독자로 전락하거나 암환자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