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블록체인 혁명 왜 지지부진할까? #신뢰사회
대한민국 블록체인 혁명
왜 지지부진할까?
블록체인은 인공지능(AI)과 함께 디지털 혁명을 이끄는 양대축이다. 하지만 요즈음 대한민국의 분위기를 보면 인공지능 축의 디지털 혁명만 존재하고 블록체인의 축이 이끄는 디지털 혁명이 사라져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디지털 혁명은 디지털 공간에서 이뤄지는 모든 거래를 신뢰롭게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인프라가 없다면 실제로 획기적인 진전이 만들어질 수 없다.
블록체인이 디지털 거래의 인프라가 아니라 암호화폐 개발 쪽으로 기형적으로 기울어서 투기로 몰리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게 된 더 근본적 사회 문화적 이유를 이해하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 블록체인이 새로운 신뢰사회를 만드는 기술적 기반이지만 기형적으로 코인연구에 집중된 부작용으로 블록체인 연구마저 신뢰의 기반을 상실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블록체인 기술은 권력의 탈 중앙화을 통해 권력을 원래의 소유자들에게 돌려주는 거래의 민주화 운동이다. 예를 들어 거래원장을 관리해주는 단순한 역할로 금융거래를 중앙집중화 시켜서 엄청난 이득을 챙기고 있는 은행이 사라진다고 가정해보라. 은행을 통하지 않은 은행보다 더 신뢰로운 직접거래가 가능해져서 은행이 지금까지 취한 막강한 이익을 거래자들에게 돌려준다면 경제민주화의 초석석이 된다. 얼마나 은행의 횡포가 심하면 페이스북은 자신들의 블록체인 연구를 통해 은행권 거래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직접거래가 가능한 화폐 개발을 가장 중요한 미션으로 설정하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정치적 민주화는 더 현실적 이슈이다. 더 신뢰가 있는 정치적 직접거래를 통해 제 삼의 중재자인 국회, 정치가, 관료들을 해고할 수 있게 된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게 된다. 이런 직접 민주주의가 실현되면 지금 우리나라 국회에서 보이는 꼴볼견을 더 이상 보지 않고 살아도 되는 민주적 세상이 실현된다. 문화영역도 마찬가지다. 고급문화에 대한 거래비용을 디지털화하고 혁신적으로 줄여서 일반인들도 고급문화를 소비할 수 있게된다. 문화적 격차가 사라지고 진정한 문화 민주화가 가능해진다. 블록체인은 정치영역 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실질적 민주화를 진행시키는 혁명이다.
블록체인에 대한 연구가 다시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사회학자들이 나서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전에 이 기술이 실현되게 하는 신뢰의 메카니즘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블록체인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신뢰의 기반을 이해할 수 있어야 제대로된 블록체인 연구가 가능해진다.
신뢰란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생기는 위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제거하거나 분산하는지의 문제이다. 서로를 믿지 못했기 때문에 제 삼자에게 엄청난 비용을 치루고 자신들 거래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작업을 맡겼다. 블록체인은 바로 이 중앙화된 거래장부의 관리를 분산시켜 거래자들에게 넘겨주는 기술이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원용한 코인개발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놓친 것이 신뢰의 뿌리에 관한 인본적 자본의 문제와 신뢰의 지붕과 같은 문화적 자본의 역할이다.
그림은 본인이 평소 연구에 이용하거나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신뢰의 공진화모형은 블록체인의 실현이 가능해지는 신뢰의 기반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신뢰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주로 집중하는 것이 중간에 그려져 있는 사회적 자본을 기반으로 한 신뢰이다. 사회적 자본이란 서로 믿고 신뢰하는 관계가 있기 때문에 남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빌려 쓸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브르디외, 콜먼, 퍼트넘, 후꾸야마 등이 주창한 개념이다.
사회적 자본 중 가장 초보적 사회적 자본의 형태는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의 관계에 기초한 것이다. 관계가 좋으면 상대의 것을 마음대로 내것처럼 빌려쓸 수 있다. 중국에서는 관시라고 불리는 신뢰의 형태이다. 이런 관계적 자본에 근거한 신뢰는 서로 관계를 맺는 사람과 맺지 못하는 사람간의 정보의 비대칭성을 심화시켜 사회전체적으로는 신뢰를 해치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혈연, 지연, 학연을 통한 내집단간의 신뢰가 외집단에 대한 불신을 불러오고 결국 사회전체의 신뢰의 기반을 무너트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제도적 신뢰이다. 화폐나 정부, 법집행기관 등 개인적 관계들을 외재화해서 제도를 만들었고 여기서 기본적으로 공통으로 기대하는 바를 지키지 못하면 불이익이나 벌을 받도록 만든 신뢰가 제도적 신뢰다. 이런 제도적 신뢰를 신뢰라고 부르기보다는 Assurance라고 부른다. 이런 제도적 신뢰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힘이 너무 강해서 이것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신뢰를 최대한 강화시켰다. 제도에 대한 공신력이 없다면 일본인들은 일본인들을 절대로 신뢰하지 않는다. 인간대 인간의 신뢰가 가장 약한 곳이 일본이다. 제도적 신뢰도 제도를 운용하는 기관과 이것에 적용을 받는 대상사이의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결한 것은 아니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가 국회의원이나 검찰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경우 제도속에 숨겨진 정보의 비대칭성을 이용해서 검찰이나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득을 더 챙기는 사람들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을 기반으로 한 신뢰의 끝은 분산신뢰다. 제도적 신뢰가 Top Down 신뢰형태라면 분산신뢰는 Bottom Up 형태나 혹은 수평적 신뢰다. 신뢰에 대한 가장 진전된 연구를 제시한 보츠먼이 자신의 책 <신뢰의 이동>에서 분석한 것도 바로 제도적 신뢰사회에서 블록체인을 통한 분산신뢰 사회로 넘어가는 초연결디지털 사회 국면에 대한 것이다. 초연결사회는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것이 연결되어 있고 연결되어 있는 것들에는 다 CCTV가 달려 있어서 다른 대상들을 녹음하고 있는 형태다. 이 녹음된 것이 어느 시점에서는 공익을 위한 문제를 풀기 위해 서로 공유되고 공개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혁명이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에서는 모든 거래가 디지털로 기록되고 공유되고 공개된다. 이런 사회적 자본의 형태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준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대상의 거래 원장을 공유하고 있고 이 감시한 내용을 공유할 수 있어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거의 사라지는 국면이다. 투명사회의 기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블록체인 연구자들이 놓치고 있는 국면은 아무리 이런 사회적 자본의 형태로 신뢰가 발전되어도 개인들의 인본적 자본의 측면이 기반으로 깔려 있지 않는다면 모든 신뢰행위는 연기에 불과한 허약한 기반이라는 점이다. 이런 사회적 자본에 참여하는 개인들이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와 남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다를 경우 인본적 수준에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발생한다. 이런 비대칭성을 만드는 이유는 개인의 꿍꿍이나 이득을 더 챙기기 위함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관되게 신뢰로운 행위를 보일 수 있을런지 모르지만 이런 신뢰행위는 다 자신의 욕심을 더 챙기려는 연기이다. 남이 보지 않은 순간에 자신의 숨은 속셈을 더 챙기는 행위를 할 개연성을 제거하지 못한다. 결국 인본적 자본은 자신이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같은 상태인 진실함을 견지하는 삶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지의 문제이다. 이런 진실 혹은 진정성이 있는 삶에 천착하는 사람들은 신뢰를 연기하지 않는다. 결국 신뢰는 진실이 기반이 된 인본적 삶을 살면 연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진실된 상태를 유지하면 사회적 자본의 기반이 없어도 신뢰가 가능한 사회가 된다. 자신에 대한 진실하지 않은 삶이 모든 정보비대칭성의 원천이다. 한 마디로 자신을 신뢰하지 않은데 다른 사람들을 신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블록체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결정적으로 놓치고 있는 한 가지는 목적/가치를 함축하는 문화적 자본이라는 신뢰기반이다. 목적은 미래에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같이 협업할 수 있는 울타리를 제공해준다. 이런 목적과 사명의 울타리가 없는 상태에서 분산신뢰에 의해서 완벽한 신뢰상태가 구축이 된다하더라더 이런 사회는 동물농장이나 경찰국가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분산신뢰가 더 큰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동원되지 못하면 분산신뢰자체가 목적이 되어 결국 경찰국가가 만들어진다. 사회가 진화하는 방향과 공진화하는 목적이 상실된 분산신뢰는 가장 위험한 신뢰이다. 아니면 더 교모한 제삼자가 나타나서 이들 거래에 개입할 수 있다. 어떤 모르는 특정한 회사가 나타나서 기술적으로 특출난 암호화폐를 만든다고 이 암호화폐가 가치를 가지고 거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암호화폐가 거래되는 신뢰의 기반이 의심되는 한 이 암포화폐는 가치를 가질 수 없다. 많은 암호화폐가 실패한 이유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이 암호화폐의 신뢰기반이 없기 때문에 이 연구들이 공개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해 실패한 것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신뢰수준에 대한 연구를 개괄해보면 인본적 신뢰의 수준은 일본보다 높으나 미국보다는 낮은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한국사람들도 미국인만큼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더 신뢰하지 못한다. 일본은 인본적 신뢰라는 뿌리가 없다. 혈연, 지연, 학연에서 서로 연줄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월등하게 높다. 내집단이 아닌 집단에 대한 불신도 일본이나 미국보다 훨씬 높다. 대한민국이 혈연, 지연, 학연에 의존하는 정도를 보면 다양성 사회를 위해선 치명적 수준이다. 제도적 신뢰인 Assurance는 일본이 가장 높고 미국이 다음이고 대한민국이 가장 떨어진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부패 때문에 국민들이 제도를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국가 중 한 국가이다. 심지어 한국은 종교기관과 교육기관 조차도 신뢰하지 못한다. 문화적 자본을 기반으로 한 신뢰는 트럼프가 집권하기까지는 미국이 가장 높았으나 트럼프 집권 후 급격히 떨어졌다. 일본은 목적가치를 기반으로 한 신뢰는 방향성이 왜곡되어 목적가치로 보기 힘들다. 한국은 목적가치에 대한 기반은 풍부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동원해서 신뢰의 자원으로 만든 경험은 별로 없다. 박정희 정권때 경제발전을 위해 동원한 국가보국 정신이나 IMF 당시 금모으기 때나 광화문 촛불시위 때 잠깐 보였다가 사라졌다.
서로를 완벽하게 믿지 못하는 사회라면 지옥과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이 이런 불신지옥을 극복하고 존경받는 시민사회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검찰 및 사법, 국회, 교육, 종교기관에 대한 제도적 신뢰뿐 아니라 자신에 대한 믿음을 복원하는 인본자본에 의한 신뢰와 미래를 위한 목적가치로 울타리를 바로 세워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급선무다.
블록체인을 통한 분산신뢰로 민주화가 가능하게 하려면 이런 인본자본의 신뢰와 목적가치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런 기반이 없는 사회에서 블록체인에 대한 연구는 일확천금을 누리는 암호화폐에 집중될 수 밖에 없고 이런 기형적인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은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을 죽이게 된다. 아주 위험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