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적 삶
삶의 여정이 복원된 노마드적 삶:
시대를 이끄는 삶의 지혜
중국 북송의 유학자 사마광(1019-1086)이 어렸을 때 그의 친구들과 함께 화원에서 놀고 있었다. 화원 안에는 작은 동산이 있었으며 동산 아래에 커다란 물항아리가 있었다. 그 물항아리 안에는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친구들과 동산에서 놀고 있을 때 어떤 아이가 큰 물항아리 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다른 친구들 모두 당황하였으며 어떤 아이는 울었고 어떤 아이는 소리쳤으며 어른을 찾으러 뛰어갔다. 사마광은 당황해 하지 않고 돌 하나를 들어 항아리를 때려 부셨다. 항아리를 깨 친구를 구했다.
사마광의 지혜는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소중하게 적용된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임의로 만들어놓은 정신모형이라는 세상을 보는 지도에 속에 갇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모형은 네비게이션과 같아서 업데이트가 잘 되어 있을 때는 세상을 잘 알려 주는 안경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는데 정신모형을 업데이트하지 않고 산다면 유용했던 안경은 편견을 만들어내는 색안경으로 변한다. 색안경을 끼고 편견으로 가득찬 과거의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만 색안경을 끼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정신모형을 업데이트 하지 못한 사람들은 각자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고 자신이 본 세상이 맞다고 자신의 과거의 성공경험과 권세를 동원해서 상대를 제압하는 싸움에 돌입한다. 지금 대한민국이 경험하고 있는 <무슨 빠>와 <무슨 부대>가 만들어 놓은 혼란처럼 세상은 다른 색안경을 낀 사람들이 나서서 싸우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장으로 변한다. 나에 맞추어 채색된 색안경은 나와 같은 색안경을 쓴 사람끼리는 편안함을 주지만 이 색안경에서 벗어버리고 과감하게 나안이 되기까지 세상은 제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다. 이 편안한 색안경은 결국 우리를 가두는 항아리이다. 결국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 우리가 나서서 깨부셔야 할 항아리이다.
자신이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먼저 글에서 포스팅한 주제인 판단중지(Bracketing)이다. 판단중지는 자신이 본 세상이 자신의 색안경으로 본 아마도 진짜 세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이다. 깨달음을 기반으로 서로의 색안경을 바꿔써보는 지혜다. 오즈의 마법사에 에메랄드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즈가 끼어야 했던 초록색 안경을 끼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도시에 살고 있는 동안 잊어버린 것이다.
가끔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SUV를 운전하는 사람 옆에 앉아 있으면 차창넘어로 자신이 매일 출퇴근 하던 똑 같은 길이 그 길이 아님을 발견한다. 색안경을 벗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처럼 삶에서 인의적으로 자세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밖에서 안으로 좌에서 우로 바꿔 끼고 세상을 보는 경험이 바로 여행의 경험이다.
아인쉬타인은 자신이 통찰력을 갖게 된 이유를 다음처럼 설명한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문제가 발생한 같은 수준에서는 근원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벗어나 보던지 이 문제보다 더 깊은 수준에서 보던지 다른 각도와 다른 수준의 안경을 끼고 문제의 원인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고도의 통찰력을 구사하는 경영자들 중에는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문제해결을 포기하고 훌훌 여행을 떠난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많다. 여행 중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이들이 여행에서 돌아오면 문제의 해법을 가지고 돌아오게 되었다는 신기한 경험을 고백한다. 여행이 바로 자신의 정신모형의 색안경을 벗어버리고 맨 눈으로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관조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여행이 자신이 빠져 허우적 거리게 만든 항아리를 깨도록 도와준 것이다. 색안경을 과감하게 벗어린 판단중지(Bracketing)가 문제의 진실에 도달하게 도와준 것이다.
여행을 즐기는 사람치고 편견에 갇혀 사는 사람은 없다. 내가 지금까지 목격한 가장 편견에 가득찬 사람들은 놀랍게도 한번도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 여행을 떠나 본 경험이 없는 미국의 코카시안(백인)이었다. 이들은 트럼프가 제공한 색안경만을 진짜 안경으로 믿고 산다. 지금의 국제정세가 어수선해진 이유는 바로 트럼프가 자신의 색안경을 이들에게도 쒸우는 일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여행자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북한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편견의 왕국이다. 편견의 대마왕격인 두 지도자가 자신의 안경을 벗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협상은 앞으로도 기대할 바가 없다.
모세가 애굽을 탈출해서 곧바로 가나안 땅에 입성했다면 유대인들이 지금 누리는 통찰력을 획득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막에서의 방황과 여행의 노마드 삶이 세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인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안목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이 노마드의 여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예수를 통한 기독교도 탄생했고 디지털 강국으로 거듭난 이스라엘도 있을 수 있었다. 삶의 본질은 여정임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역사상 단일민족이라는 이념의 항아리에 갇혀서 한번도 자발적으로 집을 제대로 떠나본 적이 없는 민족이다.
초연결 디지털 시대는 변화가 상수인 삶이어서 제대로 된 정신모형도 금방 색안경으로 변한다. 문제가 해결이 안 될 때는 억지로 해결하려기 힘쓰지 말고 안경을 바꿔끼는 노마드 삶에서 답을 찾아 보자. 원래 삶은 자체로 여정이지만 디지털 시대 이 여정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필수이다. 여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쇄락은 필연적 운명이다.
훌훌 털어버리고 가끔은 여행을 떠나자. 특히 한국에서 자신의 색안경을 벗지 못하고 있는 <무슨 빠>나 <무슨 부대>를 대변하는 사람들과 가장 강력한 색안경을 가진 검찰 및 사법세력, 언론인들, 정치가들에게 먼저 여행을 권한다. 자신들의 항아리를 깨고 여행을 떠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