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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믿음과 삼인칭 믿음
일인칭 믿음과 삼인칭 믿음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중 가장 혼동하고 있는 부분이 일인칭 믿음과 삼인칭 믿음의 부분이다.
열두 해 동안 하혈이 멈추지 않았던 여인을 고쳐주시며 예수는 말씀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태 9,22). 예리코에서 눈 먼 이에게 빛을 되찾아주셨을 때도(마가 10,52), 갈릴래아 인근에서 나병 환자를 낫게 한 뒤에도 (루카 17,19).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선포한다.
예수는 예수자신의 권능에 대한 믿음, 즉 삼인칭 믿음이 여인과 맹인과 나병환자를 고친것이 아니라 “너 자신”에 대한 믿음 즉 일인칭 믿음이 너희를 고쳤다고 선포한다. 하지만 많은 교회는 아직도 “내 안에 하나님의 권능이 임재해 있다는 것”에 대한 “나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들이 선포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는 삼인칭 믿음으로 이들을 고쳤다고 설교한다.
일인칭 믿음을 통해서만 자신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다. 예수가 구약의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해석을 강요하는 바리세인들의 삼인칭 믿음을 해체하여 일인칭 믿음으로 바꾸었듯이 노장사상은 공자의 유가적 삼인칭 믿음에 대한 가르침을 일인칭 믿음에 대한 가르침으로 탈맥락화 했다. 장자는 아무리 좋은 공자님 말씀이라해도 삼인칭 믿음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냥 공자님 말씀으로 끝날 것이라고 예언했다.
노장 사상을 사회적으로 실천한 당나라의 임제선사의 가르침에도 이런 문귀가 나온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이르는 곳에서 주인이되어 살면 거기서 하는 모든 일이 진실로 서게 된다.” 남의 써준 삼인칭의 삶에서 벗어나 일인칭 주인공의 삶을 복원해서 이를 구현하는 삶을 살 때 삶 자체가 진실로 드러난다는 가르침이다.
진정성 있는 진실한 삶이란 스스로가 작가가 되어 자신의 삶의 존재이유인 목적에 대한 대본을 삼인칭 대본에서 일인칭의 삶을 구현하는 자기대본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일인칭 대본대로 사는 삶이 구현되지 못한다면 자연과학적 진리는 깨달을 수 있어도 인간으로서 실존하는 삶의 진실은 깨닫지 못한다.
현대심리학을 다 폐기처분하고 한 가지만 택하라고 나에게 요구한다면 내가 선택할 개념은 자기효능감(self efficacy)이다. 일인칭 대본의 중요성을 통해 우리가 심리학을 배우는 실질적 이유를 일깨워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기효능감은 자신이 차별적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에게 할당한 목적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심리학 연구에서는 이 자기효능감이 과거의 성과를 제치고 미래의 종업원 성과를 가장 잘 예측하는 변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능력과 재능이 아무리 탁월해도 자기효능감이 없는 사람들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 실제로 글로벌 초우량기업에서는 과거에 이뤄놓은 성과를 기반으로 승진을 시키기보다는 자기효능감의 수준을 측정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승진시키는 HR 프랙티스를 쓴다. 과거의 일과 미래의 일이 같다면 과거의 업적을 가지고 승진시키는 것이 맞지만 미래의 일이 과거의 일과 다른 상황에서 과거 성공한 업적을 기반으로 승진시킨다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다. 이런 불안을 불식하고 미래의 성과나 현재의 성과를 가장 잘 예측해주는 변수가 자기자신의 권능에 대한 믿음 즉 자기효능감이다.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차별적 존재이유가 목적이다. 이 목적을 동사화 한 것이 사명이다. 이 목적과 사명에 대한 믿음이 자기효능감이고 이 자기효능감은 목적과 사명에 대한 발견과 발견한 것을 실현하기 위한 역할을 일인칭화하고 이 일인칭으로 내재화하는 전 과정을 주도한 자신을 믿는 것이다.
단 자기효능감이 작동되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세상의 모든 큰 일은 혼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동원할 수 있는 선한 믿음이다. 자신에 대한 믿음에 선한 목적과 사명이 담겨있어야 한다.
예수도 장자도 현대심리학도 이 선한 믿음을 일인칭화 하여 자신을 먼저 바꾸고 자신의 변화를 통해 세상을 바꿀 것을 주문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