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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일상이 일상이 아니었다

May 17, 2020 ·4분 ·admin · 2,946

우리가 알던 일상이 일상이 아니었다
소중한 일상에 대한 편린
진성리더십 아카데미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씨줄에 대한 날줄로 <사회적 유대의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줌으로 진행하는 소크라테스의 책읽기도 이런 사회적 유대의 복원사업의 일환이다. 소크라테스의 책읽기에는 다양한 도반들이 leader와 reader로 참여하고 있는데 내가 리드하는 세션인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도 10여분이 진성리더십 졸업도반이 참가하고 있다. 우리가 매주마다 반복하는 모임이 사회적 유대의 복원이라는 차이를 만들어내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한다.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도반의 <소크라테스의 책읽기> 첫 세션을 진행해가면서 든 생각이다. 우리는 비로서 건강을 잃고 나서야 일상에서 즐겼던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우리는 가족의 구성원을 잃고 나서야 그 가족 맴버가 얼마나 소중했던 사람인지를 깨닫는다. 우리는 직장을 잃고 나서야 내가 그간 일상적으로 다니던 직장이 얼마나 소중했던 직장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일상화의 철칙이다. 내 마음 속에 일상화된 모든 것들은 그 일상화된 상태를 박달당할 때까지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 마치 공기 속에 들어와 있을 때 일상으로 주어지는 산소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같이 읽어가면서 배운 첫번째 진리도 상식적 일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칸트 헤겔로 이어지는 철학은 모두 보편적 선이나 진실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암묵적으로 동질성을 정당화시켰다. 일상화는 동질성의 도구이다. 동질성을 느끼기 위해서는 동질한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울타리를 두르고 그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당연한 것으로 일상화 시켜야 한다. 들뢰즈는 이런 동질성에 대한 철학에 반기를 들고 차이의 철학을 주장한다. 우리가 매일 같이 느끼는 반복되는 일상도 따지고 보면 같은 일상이 아니라 차이를 만들어내는 기계라고 본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반복적으로 산다고 할 경우 동질성의 논리에 빠지면 내일 찾아올 오늘도 같고 모래 찾아올 오늘도 결국 같은 오늘이지만 들뢰즈는 반복되고 같아보이는 오늘이 똑 같은 오늘이 아니라고 규정한다. 오늘 아침에 목격한 태양이 내일이 오늘이 되어 찾아올 태양과 같아고 주장한다면 내 삶은 정체된 죽어있는 삶으로 시들어가고 있는 증거이다.
우리 몸도 이런 동질성 논리에 강하게 저항한다. 예를 들어 내 몸에 맞는 가장 편한 자세를 찾았다고 생각해보자. 이 자세 때문에 당분간 행복감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자세를 흩뜨리지 않고 몆 시간이나 버틸 수 있을까? 가장 편했던 자세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불편해지고 이 시점부터 이 자세를 유지하는 것은 감옥이 된다. 살아 있는 우리 몸은 선천적으로 어느 틀에 맞춰 갇혀 사는 일상적 삶을 거부한다. 나는 살기 위해 어느 시점이 되면 내 몸에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 몸은 해방된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본능적으로 다시 안락한 자세를 찾는다. 차이를 만들기 위한 반복이 몸의 본질이다. 물이 오랫동안 고여있으면 썩듯이 해방되지 못한 몸을 간직하고 산다면 병을 얻는다. 암을 얻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해야 하는 것이 자신이 살던 장소를 탈출하는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같다.
내가 공들여 만들어 놓은 최적화된 안락한 삶도 시간이 지나면 일상화되고 일상화되면 삶은 나에게 감옥이다. 정체된 삶은 안락에서 시작해서 감옥으로 끝을 보여준다. 감옥 속에서 서성이며 쳇바퀴도는 삶에서 탈출해서 여행이라도 떠나야 한다. 여행 속에서 헤메다보면 다시 안락한 집이 그리워진다. 내가 이런 반복을 통해 다시 찾낸 집은 이전의 집은 아니다. 내가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고 권력을 장악하고 있어도 삶의 일상화에 대한 철칙에는 예외가 없다.
우리가 매일 당연시 받아들이고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차이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결국 감옥소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감옥소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삶에 코로나 재앙이 덮쳤고 이제서야 내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던 일상인지를 깨닫는다. 일상이 소중했던 것을 일상에서 깨닫지 못한 이유는 이 일상의 반복에서 차이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상의 반복을 통해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을 통해서 생성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시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의 반복을 통해 새로운 차이이와 변화와 생성을 체험하는 사람들에게 반복되는 일상만큼 소중한 일상도 없다. 들뢰즈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잃고 살았을 수는 없다. 들뢰즈는 일상화의 철칙의 원리를 이해하고 이것을 부수는 사람들만이 사회적 리더가 될 수 있음을 설파한다.
나는 들뢰즈의 철학을 가장 잘 표현하는 한국의 시인으로 윤동주를 꼽고 싶다. 윤동주는 <새로운 길>이라는 시에서 일상이 차이를 만들어내는 생성의 원리로 이해하고 있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이 길에는 어느날 민들레가 나타나고, 까치가 날고, 바람이 지나고, 아가씨를 만나는 다른 길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손가연, 진규동, 외 7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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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