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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우물쭈물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위트와 해학의 줄탁동시
<우물쭈물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영국의 극작가인 버나드 쇼(1856-1950)의 묘비명이다. 버나드 쇼는 노벨문학상과 아카데미 각본상을 동시에 받은 유일한 극작가이다. 그는 해학과 위트와 유머를 아는 진정성 넘치는 극작가로 생전에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되었다.
버나드 쇼는 말로만 해학을 남긴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해학이 넘치는 실험도 감행했다. 실험은 그 당시 탐욕에 빠져 사회를 타락시키던 사회지도층을 대상으로 감행되었다. 다음 실험이 대표적이다.
하루는 영국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게 자신의 이름으로 전보를 보냈다.
“다 들통났다. 빨리 도망쳐라.”
이 전보를 사실로 받아들인 장본인들이 맨붕에 빠져 버나드 쇼에게 접촉을 시도했다. 당연히 이들 중 아무도 접촉에 성공하지 못했다.
자신의 미모만을 뽐내는 여배우가 “자신의 몸과 쇼의 머리를 결합하면 엄청난 아이가 탄생하지 않을까요”라고 유혹하자, “당신의 머리와 내 몸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면 사람들이 괴물이라고 욕하지 않을까요” “미모도 가끔 보거나 다른 미모를 봐야 좋은 것이지 같은 미모를 매일 보고 같이 살라고까지 한다면 지독하게 지루하고 고통스럽운 일입니다” 라고 대꾸하기도 했다.
틈만나면 귀감이 되는 말도 많이 남겼다. 수도 없이 많지만 12개를 선정해보았다.
1. 교양의 척도는 싸울 때 어떻게 싸우는지를 보면 된다.
2. 정상에 오를 수는 있지만 그곳에 오래동안 머무를 수는 없다.
3.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재산은 자신에 대한 믿음뿐이다.
4. 나는 젊었을 때 10번 시도하면 9번 실패했다. 그래서 최소 10번은 시도한다.
5. 많이 알고 여행을 많이 한 남성일수록 시골 여자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6. 할 일을 찾아서 하지 않으면 그일은 죽을 때까지 나를 찾아내 괴롭힌다.
7. 부모는 중요한 직업이다. 아이들을 위해 부모 적성검사를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8.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열린다.
9. 꿈꾸지 않으면 절망도 없다.
10. 낙관주의와 비관주의는 반이 채워진 술병을 보고 아직 반이나 남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과 반밖에 안 남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의 태도 차이다.
11. 생각이 많아지면 용기는 사라진다.
12. 모든 행로는 무덤에서 종결된다.
버나드 쇼가 제시하고 싶어했던 삶의 핵심은 자신의 중심 철학이 반영된 목적에 관한 언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신이 인정하고 신념으로 믿는 목적에 맞춰 스스로가 사용되는 일이 가장 행복한 일이다. 세상이 당신을 왜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지에 불만을 토의하는 시간을 아껴 자신의 중시하는 삶의 목적을 위해 산다면 행복에 대한 모든 불만은 봄 눈녹듯이 사라질 것이다. 말을 넘어 목적에 대한 신념을 경험하는 것이 바로 기적이다. 목적에 대한 신념은 거짓말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버나드 쇼는 명성과 부와 명예에 기대 우물쭈물 살지 않은 대표적 인물이다. 결국 <우물쭈물하다가 이럴줄 알았다>는 자신에게 한 말이 아니라 목적 없이 세상을 배회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남긴 경종이었던 것이다.
묘비의 원문은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라고 묘사되었다. 번역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맥락을 찾아서 재미없게 다시 번역하면 “목적을 찾지 못하고 그냥 대충 살다보면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 뭔가 삶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정도로 번역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우물쭈물하다가 이럴줄 알았다>는 목적없이 돈과 권력과 명예만을 쫒아가며 우물쭈물 삶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촌철살인의 번역이다.
목적에 대해서 각성한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몸과 정신 어느 곳에 균열이 생겼는지를 누구보다 통찰력 있게 보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이 비전이 바로 버나드 쇼가 진성 극작가로서의 위트가 넘치는 삶에 매진하게 한 이유였다.
버나드 쇼의 위트와 유머와 해학은 목적을 위해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이다 같은 줄탁동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