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 세종학술도서 선정
책 소개 보도자료:
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
이화여자대학교 경영대학의 윤정구 교수가 주관하는 <성다양성 및 양성협업> 연구팀에서 여성리더육성 방향에 대한 수년간 연구 결과를 <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 초연결 디지털 시대 성다양성의 내러티브>로 출간했다. 윤정구 교수는 이화여대와 매경이 공동으로 기획해온 <양성협업 우수기업>을 평가하고 선정하는 연구팀의 연구책임자이자 여가부의 중앙성별평가위원이다.
이 저서는 초연결 디지털 시대가 도래했음을 직시하고 지금까지 진화생물학에서 주장하는 남성과 젠더 정치학에서 주장하는 여성을 벗어나 여성과 남성이 더 높고 평평한 곳에 기울지 않은 협업의 운동장을 설계하는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책에서 제안하는 21세기 리더십의 문제도 남성을 전제로 한 리더십에서 벗어나 남성과 여성이 자신 회사가 실현시키려는 목적과 사명을 받아들이고 이것을 구현하기 위해 자신의 전문성으로 협업하고 이를 통해 성취한 성장체험을 공유하여 파트너십을 견고하게 하는 공유된 리더십(Shared Leadership)을 제안한다.
책은 성 다양성은 글로벌 기업에서는 이미 새로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다양성 문제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해석한다. 디지털 시대가 요구하는 성 다양성은 남성이나 여성 모두가 기존의 성 고정관념을 벗어나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본다. 또한 다양성의 가장 뜨거운 이슈인 성 다양성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못하면 세대, 학벌, 지연, 혈연에서 생긴 정치적 연줄관계가 다양성을 잠식해가며 미래를 위한 변화와 번성의 가능성을 좌절시킨다고 설명한다. 성 다양성을 실현해 여성인재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일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가 초연결 디지털 시대에 글로벌 선진국가의 문턱을 넘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다는 사실을 다양한 글로벌 사례와 데이터로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책에서 다양성의 핵심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범주적 차이를 극복하여 차이를 소멸시키고 범주적 차이가 소멸된 새로운 운동장에서 각자가 더 나은 존재적 차이를 실현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책은 실제로 기업에서 유리천장을 깨고 전략적 파트너의 지위를 획득한 여성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한국 기업에서 유리천장을 깬 경험이 있는 여성 임원들이나 고위 관리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들이 겪은 곤경과 어려움부터 글로벌기업에서 CEO 지위를 획득한 여성들의 조언까지 들어본다. 전략적 파트너를 열망하는 여성들이 공동으로 겪고 있는 가면 증후군 문제를 극복하는 전략과 돌봄의 사회화에 대한 제도적 문제도 진단하고 있다. 나아가 여성이 기업에서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전략적 파트너로 초대된다는 것에 대한 현실적 의미를 검토한다.
전략적 파트너가 되기를 염원하는 여성들 뿐 아니라 이들의 파트너인 남성들, 일 가정 양립을 위한 다양한 제도와 정책에 관여하는 정책입안자들과 CEO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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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
협업의 운동장 만들기
Executive Summary I
본 저서에서 전략적 파트너는 여성과 남성 간의 파트너십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성과 여성이 그냥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냥 좋은 관계의 파트너십이지 전략적 파트너십은 아니다. 전략적 파트너십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조직이 정한 공동의 존재우위에 대한 약속인 목적과 사명을 실현시키기는 일에 파트너로 기여하는지의 문제이다. 남성도 이 존재우위에 대한 약속을 실현하는데 기여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전략적 파트너는 아니다.
선진기업이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제대로 된 전략적 파트너를 육성하여 회사의 지배구조를 결정하는 임원자리를 가득 채우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회사가 초우량기업인지 그냥 평범한 회사인지는 이 파트너십에 포함되는 맴버십을 회사가 설정한 목적과 사명을 달성할 수 있는 인재에서 찾는지 아니면 남성, 혈연, 학연, 지연 등의 사회적 범주의 기준으로 선정하는지의 차이이다. 본 저서는 여성들도 유리천장을 넘어서 회사의 파트너십으로 기여할 수 있음과 이를 위해 남성과 여성의 협업의 운동장을 설계하는 법을 제시한다.
세상은 임의로 여성과 남성,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 전문적 직업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권세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 좋은 대학 나온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가방끈이 긴 사람과 짧은 사람, 외모가 준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젊은 사람 등등으로 범주를 나누고 질서를 부여한다. 이처럼 세상이 임의로 나눠 놓은 이원론적 범주를 받아들이고 범주의 한쪽에 할당되는 것마저 저항 없이 받아들이면 차별과 편견은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 시작한다. 우리가 나서서 소멸시켜야 할 차이는 편견과 차별의 원천이 되는 범주에 의해서 만들어진 차이이다.
사회정체성이론(Social Identity Theory)을 만들어 낸 핸리 타이제펠(Henry Tajfel)과 존 터너(John Turner)는 역사에 남을 실험을 통해 아무 의미도 없이 임의로 할당된 범주가 차별과 편견의 시초라는 것을 증명했다.
이들은 실험 대상 학생들이 실험실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제비뽑기를 시켰다. 제비뽑기로 빨간 스티커나 파란 스티커를 뽑게 하고 이들이 제비뽑기 결과에 따라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했다. 희한하게도, 그렇게 시킨 것도 아닌데 빨간 스티커를 받은 학생들은 빨간 스티커끼리 파란 스티커를 받은 학생들은 파란 스티커끼리 모여 앉았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같은 색깔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과제를 시키고 여기서 얻어진 보상을 임의로 상대 집단의 구성원과 자기 집단의 구성원에게 배분하는 일을 시켰다. 학생들은 공정하게 배분해야 할 규칙을 어겨 가며 자기 집단에 속한 사람에게는 유리하게, 상대 집단에 속한 사람에게는 불리하게 보상을 배분했다. 이 실험은 같은 색깔의 스티커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차별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증명한 역사적 실험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 단순한 실험보다 더 미묘하고 복잡하게 돌아간다.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에 신이 대신 뽑은 제비로 빨간 스티커 그룹에 속하기도 하고 파란스티커 그룹에 속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부유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다. 어떤 사람은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는 행운을 거머쥐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넘치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무 재능없이 평범하게 태어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여성으로, 어떤 사람은 남성으로 태어난다. 이 모두가 자신이 뽑은 스티커의 색깔이 아니라 신이 자신을 대신해서 뽑아 준 스티커의 색깔이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 부유한 부모 밑에서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남성으로 태어났다면, 그 사람은 신이 대신 뽑아 준 유전자 복권에 여러 차례 당첨된 억세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임의로 신이 뽑아 할당한 범주임에도, 사람들은 일단 어느 범주에 할당되면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범주에 성벽을 세워 가면서 상대가 자신의 범주에 못 들어오게 막는다. 이 범주를 기반으로 더 세련된 범주들을 임의로 나눠 놓고 높은 범주에 속한 사람은 자신과 같은 범주에 속한 사람들과 연대를 구성해서 자신의 행운을 지키기 위해 상대의 범주를 집단적으로 열등시하고 차별한다. 낮은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높은 범주에 속한 사람들에 대항하여 생존권을 얻어 내기 위해 끊임없이 상대를 폄하하고 마음속으로 증오한다. 이 범주가 누구 한 사람이 나서서 바꿀 수 없는 사회적 현실이 되면 사회학자들은 이것을 ‘계층’ 혹은 ‘계급’이라고 못 박아 놓는다. 사회가 임의로 만들어 낸 범주적 차이는 때로는 철길에서 반대 방향으로 내닫는 혹은 충돌하기 위해 같은 방향으로 치닫는 기차의 상태를 연출한다.
다양성 관리의 첫 번째 임무는 사회적 범주로 나눠진 차이가 서로에 대한 파국으로 종결될 것임을 인식하고, 이 둘을 직각으로 다시 엮어 새롭고 평평한 협업의 운동장을 만드는 작업이다. 협업의 운동장은 범주에 의해서 만들어진 차이를 새로운 씨줄과 날줄로 직조해 만든 새로운 태피스트리(Tapestry)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태피스트리는 기존의 사회적 범주에 의해서 갈라진 세상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하는, 더 평평하고 더 기울어지지 않은 협업의 운동장이다. 다양성 관리의 사명은 이원론범주에 의해서 만들어진 차이를 더 높은 곳에 더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어 소멸시키는 일이다.
본 저서는 파트너로 사명과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더 높은 곳에 만들어진 더 평평한 협업의 운동장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진화생물학이 주장하는 대문자 남성과 젠더 정치학자들의 패권싸움에서 이긴 사람인 대문자 여성의 감옥에서 여성과 남성이 같이 탈주하는 시도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적 탈주가 능력이 있지만 아직도 조직의 변방에서 소외된 다양한 소수의 다윗들을 결집시켜 조직이 설정한 미래에 대한 약속인 목적을 실현시켜 후세에게 유산을 남겨줄 수 있는 협업의 파트너십 개연성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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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
성평등의 역설
Executive Summary II
본 저서에는 성평등의 역설에 대해서 다룬다. 성평등의 역설은 성평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면 될수록 역설적으로 남성과 여성간의 성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직업적 격차는 심해진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성평등이 완벽하게 보장된 나라일수록 여성과 남성 간 직업적 격차는 심화된다는 통계가 제시되고 있다.
데이비드 기어리(David Geary)와 기스버트 스토엣(Gijsbert Stoet) 교수 팀은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등에 나타난 67개국 청소년(15~16세) 472,242명의 과학, 수학, 독해 학업 자료를 분석하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르웨이나 핀란드 등 성평등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들의 이공계 졸업생 중 여성 비율은 20%로 가장 낮았다. 반면 아랍에미리트나 알제리 등 성평등지수가 최하위인 국가의 경우, 이공계 졸업생 중 여성 비율은40%로 세계 최고였으며 이는 인도네시아, 루마니아, 터키 등에서도 비슷했다.
이 연구는 STEM(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의 줄임말) 분야에서 왜 여성 비율이 낮은지도 분석했다. 남녀가 차별을 격고 있는 아프리카 여학생들은 STEM 분야의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고, 사회적 안전망과 보호제도가 탄탄해 성평등지수가 비교적 높은 북유럽 국가 여성들은 오히려 STEM 분야의 직업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었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진정한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여성들은 STEM 쪽을 선택하지 않았으며 이는 STEM 분야의 남녀 비율 격차가 발견된 것이 사회적 성차별의 결과라고만 볼 수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해석했다. 성평등으로 자유롭게 자신의 직업을 선택하라고 하면 여성들은 더 전통적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선생님, 사회복지 등의 직업을 더 선택한다는 것이다. 결국 직업에서 남성과 여성의 고정관념은 성평등이 보장되면 더 자유롭게 발현되어 생물학적으로 여성에 적합한 돌봄 직업에 여성들이 몰린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2018년 아민 포크(Armin Falk)와 요하네스 허밀(Johannes Hermle)이 76개국 8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경제가 성장하고 성평등지수가 높을수록 오히려 성적 고정관념이 심화되고 남녀선호도 격차가 커지는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남녀 모두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상태에서 자유로운 선택을 하도록 놔두면 여성은 소위 전통적인 여성성(이타성, 신뢰성,보답과 감사함 등)을, 남성은 남성성(위험감수성, 보복성 등)을 지지하는 직업에 선호를 보인다는 것이다.
<여성은 전략적 파트너인가>에서는 젠더 정치학자들이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처럼 성평등의 제도화만으로는 성차별과 성 고정관념을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제시한다. 젠더 정치학자들의 성평등에 대한 잘못된 정치적 가정이 여성을 남성으로부터 해방시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키워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성평등의 역설의 주장처럼 그냥 여성과 남성간의 평등을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남성과 여성 간 차별이 없도록 만들어 놓고 가정친화적 제도도 많이 만들어주고 더 이상 개입하지 않으면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제도적 편리성이 주는 제도의 덫에 갇힐 확률이 높아진다. 아무리 가정친화적 제도라 하더라도 이런 제도적 편리함에 갇히게 되면 전통적 여성의 역할이나 직업을 벗어나지 않고 여기에 머무를 개연성이 높아진다. 제도의 덫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 해방된 여성들이 남성과 여성의 범주적 차이를 탈주해서 사회와 미래의 번성을 위해 얼마나 차별적 전문성으로 기여할 수 있는지 문제이다. 해방된 여성들이 제도적 편리함을 넘어서서 사회의 미래를 위해 차별적으로 기여하는 여성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여성들이 염원하는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것은 물 건너간 일이 되고 결국 진화론자들이 데이터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남녀평등만 이뤄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젠더 정치학자들에 대해 남녀평등은 여성의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해방의 필요조건이나 초기값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핵심은 남녀 간 범주적 차이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서 전통적 여성 역할에서 해방된 능력 있는 여성들이 사회의 미래를 위해 차별적 전문성으로 기여할 수 있는 전문인으로 성정할 수 있는 지의 문제다. 사회적 편견에서 제도적으로 탈주한 여성들이 다시 이전의 성고정관념으로 다시 갇히게 된다면 진화생물학자들의 주장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가 주장하는 여성의 완전한 해방은 여성이 남녀평등에 머물지 않고 사회의 번성에 차별적으로 기여하는 전문적 인간으로서의 인정받을 때라고 주장한다. 여성해방을 넘어 사회의 진화와 번성에 기여할 수 있는 전문가로서의 인정받은 여성의 숫자가 충분히 많을 때 여성의 해방은 자연스럽게 실현된다고 본다. 이 숫자는 여성이나 남성 독자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고 대문자 남성과 대문자 여성을 탈주한 사람들이 더 높은 곳에 평평한 협업의 운동장을 만들어내서 사회와 조직에 차별적 기여를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들도 전통적으로 돌봄과 관련한 직업에 머무는 것을 넘어서서 STEM과 기업경영, 벤처, 디지털 등의 분야로 더 많이 진출하여 여성인재의 파이프라인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 인류에 기여하는 파트너로 인정받은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성평등이 제도적으로 구현된 나라일수록 여성들 인재의 파이프라인을 가동시켜 이런 직종에 진출해 사회의 변화와 미래를 창출하는 일에 파트너가 될 수 있을 때 여성이 진정한 파트너로 받아들여진다. 성평등은 이런 마라톤의 첫 번째 반환점에 불과할 뿐이다. 첫 번째 반환점을 돌아온 여성들이 포기하지 않고 힘을 내 마지막 결승점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을 때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여성되기는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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