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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에서 풍광으로
삶이 풍경에서 풍광으로 전환되다
비전이 있다는 것의 “찐” 의미
장님과 환자가 병실을 같이 쓰고 있었다. 장님은 병실 밖에서 일어나는 세상에 대해서 항상 궁금해 했다. 장님이 아침에 일어나면 첫 번째로 하는 일이 병실을 같이 쓰는 환자에게 밖의 세상에 대해서 설명해 달라고 청하는 일이었다. 환자는 친절하게 맹인의 요청에 대답해준다.
오늘 밖은 어떤 풍경인가요?
지금은 봄이어서 꽃들이 만개해 있어요.
다음 날도 장님은 밖의 세상에 대해서 물어본다.
오늘은 봄 바람이 산들 산들 불고 있어서 사람들이 아이들과 산책을 즐기고 있어요.
이렇게 지내던 어느 날 친절한 환자가 퇴원을 하고 새로운 환자가 들어왔다. 이 환자는 약삭빠른 장사꾼이었다. 장님은 새로운 환자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 새로운 환자에게도 세상일에 대해서 알려 달라고 정중히 부탁한다.
첫 날은 이 환자도 밖의 상황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매일 매일 똑 같은 것을 질문해오는 맹인에게 짜증이 난다. 궁리 끝에 하루는 거짓 말을 한다.
무슨 일인지 병원에서 창문을 다 막아 놔서 더 이상 밖을 볼 수가 없어요. 앞으로는 물어보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장님은 장사꾼의 말을 그대로 믿고 더 이상 세상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았다. 그런 일이 생긴 후 얼마 안 있다가 이 장님은 상태가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이송되어 가고 다시 얼마 안 있다가는 결국 세상을 하직한다.
사람들은 세상을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을 보는 것은 마음의 눈이다. 이 마음의 눈을 잃어버리는 순간 장님은 정말 장님이 되었고 암흑 속을 헤매다 결국은 세상을 하직할 수 밖에 없었다.
삶에서 비전을 상실한다면 인간은 모두 죽은 목숨이다. 눈이 정상이어도 비전이 없다면 자신이 키우는 과일나무는 서서히 고사당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속도가 느려서 본인이 감지하지 못할 뿐이다.
자신이 장님이었다가 어느 날 신의 은총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가장 먼저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아마도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눈을 뜨고 있어도 자신을 보지 못하고 산다면 이미 비전을 상실한 것이다. 우리의 눈이 2.0이라고 해도 마음의 비전을 잃어버려 자신이 누구인 지를 보지 못한다면 비전을 상실한 장님과 다름이 없다. 결국 자신이 비전을 가진 사람인 지를 가장 쉽게 확인하는 방법은 자신이 자신을 제대로 보고 있는 지의 문제이다.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경영자들이 비전을 미래를 향한 큰 목표에 멋진 못을 입혀 놓은 것이라는 잘못된 개념으로 정의해서 사용해왔다. 원래 비전의 의미는 자신의 삶의 목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못보던 자신과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획득한 것이다. 목적에 대한 믿음으로 보게 된 세상이 비전의 “찐” 의미다.
목적에 대한 믿음이 실현된 것은 미래의 일이다. 따라서 목적에 대한 믿음으로 세상을 발견했다는 것은 현재에서 미래의 큰 목표를 투영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갈 정해진 미래에서 뒤돌아보니 자신이 지금 가고 있는 길이 현재에서 과거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비전이란 미래, 현재, 과거가 서로 이어진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것의 숨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 마음의 눈이 목적에 대한 믿음으로 비전을 획득했다면 이 마음의 눈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보여준다. 반대로 마음만 있고 마음 속에 목적의 눈을 개안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직 눈뜬 장님에 불과하다. 마음의 눈이 자신의 존재이유에 대한 각성을 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큰 목표를 가지고 있어도 비전을 획득한 것은 아니다.
비전은 기업이나 개인에게는 영사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마음 속에 담겨 있는 목적이 실현된 세상은 영사기가 되어 삶에 아름다움의 영화를 틀어주고 삶을 아름답게 신크로나이즈 시킨다. 이 영사기의 역할은 삶을 그냥 스쳐가는 경치인 <풍경>이 <풍광>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풍경와 달리 풍광이란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과거, 현재, 미래의 주변 환경이 의미로 가득찬 맥락 상태가 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목적에 대한 믿음의 눈인 비전이 경치 속에 갇혀 죽어가던 의미를 살려내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내 마음 속에는 어떤 세상이 담겨 있을까?
내 마음의 눈은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어떤 영화를 장면으로 상연하고 있을까?
To see is to believe.
To believe is to 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