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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위기냐 종말이냐
기독교 위기냐?
종말이냐?
한 학술 잡지에 출판된 시카고 대학의 Coyne교수의 글(science, Religion, and Soceity, Evolution 66″ 2654-2663 (2012))을 읽다가 생각이 깊어졌다.
이 논문에서는 종교적 믿음과 사회의 건강성에 대한 상관관계 표를 보여주는데 이 표는 종교적 믿음이 깊고 진화론을 믿지 않는 나라일수록 사회가 건강하게 작동하지 않고 양극화의 분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기에서 종교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 개신교를 의미한다.
코인교수가 인용한 자료는 종교적 믿음이 강한 나라와 과학적 믿음이 강한 나라 간 국가의 건강성에 대한 비교이다. 건강성은 국가의 경제력과는 상관없는 지수이다. 그 국가의 국민들이 자신의 나라가 분열과 양극화가 심하다고 볼수록 건강성은 떨어진다.
진화론자인 코인교수는 분명 종교 특히 현재의 미국에서 기독교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채택되어 사회의 진화를 방해하고 사회를 양극화 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물론 코인 교수의 주장은 이 분이 시카고 대학의 진화론을 선도하는 학자라는 점과 상관관계가 높다고 기독교가 사회를 양극화 시키고 사회의 건강성을 방해하는 <원인>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상관관계 표는 사회가 양극화에 빠져 있는 이유를 기독교를 희생양으로 삼아서 귀인시키려는 정치적 의도를 위장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진화론자의 눈에 보이는 종교와 과학에 대한 가치 판단과는 별개로 상관관계는 엄현한 사실이고 이런 상관관계가 어떻게 생산되었는지를 연구해본다면 기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런 사회의 기능과 부적 상관관계로 표현된 기독교가 가진 근원적 문제는 신앙을 지키는 것으로만 보고 시대에 맞추어 공진화시키는 것에 실패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앙은 만들기도 힘들고 만든 것을 검증받기도 힘들기 때문에 일단 만들어지면 지켜나가는 것이 중시되는 경향이 있다.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이런 신앙관을 대표한다. 구약의 성경관이다.
하지만 믿음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믿음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믿음의 목적이다. 또한 이 믿음을 통해 세상이 변화되었다면 이 변화된 세상에 맞게 믿음을 다시 공진화시켜 다시 새롭게 태어난 믿음을 통해 지속적 울림을 창출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믿음이 변화한 세상에 울림을 창출하지 못하면 죽은 믿음이다. 이런 견해는 바로 예수가 설파한 신약의 성경관이다.
예수는 믿음은 지키기 위해서도 존재하겠지만 이것을 전파해서 세상을 바꾸는 도구로 생각했다. 믿음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세상을 더 낫게 바꾸는 도구이기 때문에 세상이 바뀌면 이 바뀐 세상에 따라 믿음을 시대와 맞게 부활시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믿음을 씨앗으로 삼아 더 풍성하게 길러내는 농부에 대한 비유들은 대부분 예수가 믿음을 통해 만들어지는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만든 비유이다. 예수는 믿음은 씨앗으로 뿌려져 썩을 때 더 풍성해지고 건강해지고 깨끗해지는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규정했다.
대한민국에서도 개신교가 보수진형과 결탁한 분열의 원천으로 해석되고 신도수가 급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금은 변화가 상수가 된 시대이다. 개신교는 시대에 맞춰 예수의 믿음을 씨앗으로 뿌려 부활시키는데 실패했고 시대에 맞춰 변화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방호하기 위해 썩지 못하게 방부제 처리해가며 믿음의 지킴을 주창하는 보수와 손을 잡은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대에 맞추어 기독교를 부활시켰던 칼빈 탄생 500주년이던 2009에도 소리만 무성했지 대한민국 개신교를 시대에 맞춰 부활시키는 작업에 성공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신교가 가장 부흥을 경험했던 시기는 구한말(1885-) 개신교가 처음 들어와 계몽과 교육을 통해 사회의 변혁과 변화의 원동력으로 기여했을 때이다.
개신교가 살아남을 수 있는지는 지금 초연결 초지능, 플랫폼 시대에 맞게 예수를 다시 부활시킬 수 있는지에 걸려있다. 이런 부활에 성공하지 못하면 코인과 같은 과학을 앞세운 진화론자들이 세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희생양으로 개신교를 지목하고 사람들은 이 주장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것이다. 이런 상태가 많은 사람들에게 당연시된다면 이런 상태는 바로 개신교의 죽음을 예고하는 상태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