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pe Diem

왜 환대가 사라졌을까? 감압장치 없음

Jan 8, 2022 ·4분 ·jkyoon · 3,057
왜 환대가 사라졌을까?
감압장치 없음
얼마 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 많은 국민이 감동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했던 이유는 병원(hospital)의 사명이자 존재이유였던 환대(hospitality)가 병원에서조차 사라졌음에 대한 풍자 때문이었다. 병원(hospital)은 원래 긍휼(compassion)과 환대(hospitality)을 위해 만들어진 성소임에도 이 환대의 사명을 잃어버린 곳도 병원이다. 드라마가 울림을 주었던 것은 병원이 환대를 잃어버린 장소라는 사회적 이슈를 부각해 여기에 출연한 의사와 간호사들이 연기로나마 환대를 복원시킨 것이 주효했다. 이 드라마는 우리사회에서 환대의 실종을 이슈화 시킨 것이다.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소크라테스 클럽(교장 손가연)에서 자크 데리다의 <환대에 대하여>를 읽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환대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우려한 진성리더십 아카데미 졸업도반 중 사회복지 및 보건 분야에 계신분들이 모였다. 이번 데리다 읽기의 목적은 환대에 대한 개념을 현재 우리에 맞게 다시 해석해 사회복지 보건영역에 지속가능한 환대를 복원할 수 있는 감압장치를 설계해보는 것이다.
아픈 사람들의 고통이 전염되어 종사자 분들을 번아웃시키는 문제가 감압장치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심해잠수부는 심해에서 작업을 마치고 육지의 수면 위로 돌아올 때 감압장치를 통해 기압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쳐야한다. 사회복지보건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환자와 어려움에 처한 분들의 고통을 해결하고 일상으로 돌아올 때는 감압의 과정을 거쳐야함에도 제대로 된 장치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도반들은 사회복지보건인에 대한 감압장치를 제공해주지 않고 이들을 사명이라는 이름으로 심해잠수부일을 계속하게 하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생각했다. 이 문제는 지금 코로나로 번아웃된 의료진들이 직면한 현안이기도 하다.
환대의 기반은 자신에 대한 긍휼감이다. 긍휼은 자신의 잘난 점 매력적인 점만을 골라서 사랑하는 사랑의 편식을 넘어 자신의 아픔조차도 온전하게 사랑하는 편애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온전하게 사랑하기 시작할 때 자신을 삶의 주인공으로 일으켜 세운다.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멋진 자신만을 편파적으로 사랑하고 숨겨져 울고 있은 또 다른 자신인 성인아이를 일으켜 세우지 못함에서 발생한다.
자신을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지 못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환대의 대상으로 초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주인의 역할을 온전하게 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손님을 제대로 손님으로 환대할 수 있다. 환대여정의 시작은 자신의 아픔을 온전하게 사랑하여 자신을 삶의 주인으로 환대하고 주인으로 일으켜 세움에서 시작하지만 환대의 결론은 초대한 손님을 이들 삶의 주인으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지의 문제다. 환대 미션의 완성은 자신에 대한 긍휼로 자신을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고 이 힘으로 경계를 확장해 자신의 집의 문을 열고 아픈 사람들을 손님으로 초대하고 환대하는 것을 넘어선다. 초대받는 사람들을 긍휼의 사랑으로 자신 삶의 주인으로 일으켜 세우는 일이 목적이다. 예수도 앉은뱅이와 나병환자를 환대해서 일으켜 세울 때 네 자신에 대한 믿음 즉 자신 삶에 대한 주인됨이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기적을 일으킨 주인공이 환자 자신임을 상기시킨 것이다.
한 참여도반은 사회복지보건의 본질은 아픈 사람들에게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지팡이를 마련해주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사회복지보건 영역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아픈 사람들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내재화해서 이들 행동으로 풀어주는 긍휼과 환대 문제를 담당한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경계에 대해 인지하는 것의 중요성도 이야기했다. 상대의 정체와 신분을 묻지 않고 무조건적 손님으로 받아들이는 절대환대는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환대는 법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최소한의 조건적 환대의 경계를 확장해서 절대적 환대와 조건적 환대의 다리를 만드는 일다. 절대적 환대는 환대의 지향점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환대 능력 밖의 일이다. 절대적 환대행위를 완수하지 못함에 죄의식을 느낀다는 것은 사회복지보건 분야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번아웃으로 이끄는 통로다. 절대적 환대가 아닌 진실한 환대가 이들의 책무성이 되어야 한다. 절대적 환대가 아닌 진실한 환대가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감압장치가 필수적이다.
첫 미팅에서 감압장치가 작동되기 위해서는 도반들이 긍휼을 통한 자신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 회복되어야 함에 동의했다. 자신의 아픔조차도 온전하게 사랑하여 자신을 주체로 일으켜 세우지 못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제대로 환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자신에 대한 온전한 사랑과 환대로 자신을 주체로 일으켜 세울 때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을 벗고 환자와 아픈 사람들이 쓰고 있는 가면을 대신 써줄 수 있는 근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사회복지보건 분야에 종사하시는 도반들이 직장을 떠나는 이유는 환자와 아픈 사람들에 대한 사명의 부재보다는 같이 일하는 파트너 분들에 서로를 환대하지 못함 때문이라고 고백한 도반도 있었다. 환대의 잔고가 자신, 환자나 수혜자를 넘어 동료들간에도 점검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동료간 환대의 지지가 없는 종사자의 내담자에 대한 환대는 필연적으로 유사환대로 귀결될 것이다.
데리다에 따르면 환대의 문제는 경계의 문제에서 시작한다. 상대를 경계의 안에 포함하는지 밖에 두는지에 따라 상대가 환대받아야 할 손님인지 주인인지가 결정된다.
경계에 대한 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나 조직이 가진 경계는 동물적 수준으로 쪼그라든 생존의 울타리다. 이런 쪼그라든 울타리를 가진 사람들은 울타리 안에서 미래를 위해 실험할 수 있는 충분한 심리적 안정공간이 없다. 이들에게는 자신과 가족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경쟁자이고 적이다. 이들의 힘이 자신보다 셀 경우 도망전략을 택해야 하고 약할 경우 제압해서 자신 아래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존전략의 쪼그라든 울타리로 자신을 가둔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족을 넘어선 환대는 비현실적 이야기로 들린다.
← 칼럼 목록으로
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