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의 독재를 넘어, 치유의 리더십으로

역량의 독재를 넘어, 치유의 리더십으로
부분최적화의 함정
미국 박사과정 시절, 차의 성능은 엔진이라고 주장하던 한 친구가 고물 자동차에 사고로 폐차된 차의 새 엔진을 헐값에 구해 장착했다. 며칠은 쌩쌩 달리는 듯 보였지만, 일주일이 지나자 엔진을 제외한 낡은 부품들이 강력한 힘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붕괴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결국 한 달 만에 차는 완전히 멈춰 섰고 폐차 처분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패러다임이었던 ‘강점 경영’과 ‘강점 코칭’의 한계가 바로 이와 같은 부분최적화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누구나 열심히 하면 성장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확장기에는 강력한 엔진(강점)을 무기 삼아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이 유효했다. 모두가 수축을 경험하는 지금 같은 수축사회 국면에서 강점에 대한 강조는 ‘부분최적화’의 함정이 된다. 전체가 작동해야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를 외면한 채 특정 강점만 세련되게 다듬는 행위는, 결국 낡은 차체에 새 엔진을 달고 질주하다 파멸하는 결말을 낳는다.
이런 한계에 봉착하자 강점경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강점이 단순히 역량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특징지우는 덕성도 포함해서 포괄적으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강점을 덕성으로 치환할 수만 있다면 금상첨화지만 전반적 역량의 수준이 떨어지는 리더가 훌륭한 덕성만 가지고 있을 때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과거 삼성이 글로벌 천재 인재들을 영입했을 때, 조직의 전반적인 역량 레벨링(Leveling)이 받쳐주지 못해 결국 인재들이 떠나고 직원들에게 ‘이류’라는 상처만 남겼던 사례가 있다. 전체적인 균형 없이 전문성만 강조될 때, 조직은 도리어 정치화되고 사유화되는 역량의 독재에 시달린다.
조직에서의 성과는 수평적 통합과 수직적 통합이 모두 달성된 경우다. ‘리비히의 물통(Liebig’s Barrel)’ 법칙처럼, 물통에 담기는 물의 양은 가장 높은 나무판이 아니라 수평적 통합이 달성된 가장 낮은 나무판에 의해 결정된다. 신자유주의 기조가 드라이버로 삼는 강점 경영은 약점을 드러나지 않게 하고 강점의 페르소나로 무장한 직원들을 키워 기업에 기형적인 HR 시스템을 만들었다.
전략도 마찬가지다. 전략은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강점을 기반으로 상대의 약점을 공격해 이기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상황이 어려워지자 조직의 구성원이 경쟁자에게 쓰던 전략을 개인의 생존을 위해 내부 구성원에게 적용해 조직을 초토화했다. 밖으로 팽창하던 때 쓰던 전략을 성장이 멈추자 안으로 돌려 동료를 공격하는 전략으로 전용하는 현상을 내권화 (Involution)라고 부른다. 수축사회는 이런 내권화 압력에 견디지 못한 직원을 루저로 모는 분위기를 키웠다. 수축사회 국면에서 울타리가 무너진 강점코칭과 강점경영은 구성원을 우울증 환자로 만들었다.
이런 주장은 강점이나 역량 자체가 필요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강점의 역할은 암울한 상황에서 마중물을 붓거나, 방향을 잃은 이들에게 자긍심을 회복시켜 주는 ‘지렛대 역할’에 한정되어 사용한다면 부분최적화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일상적이고 지속 가능한 경영의 핵심은 강점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자신의 약점과 상처를 용기 있게 인정하고 이를 통해 전체 최적화를 위한 학습의 에너지를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근원적인 변화를 이뤄내지 못하는 이유는 강점이 없어서가 아니라, 깊숙이 뿌리내린 약점 및 상처와 화해하지 못해 그것이 늘 뒷다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같은 수축사회는 모두가 환자인 시대다. 정상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고기능 우울증에 시달린다. 이런 국면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의 성공 방정식으로 회귀는 문제를 키울 뿐이다.
긍휼감이 없는 전문가나 리더에게 의존하던 시대는 끝났다. 지금 이 시대의 진정한 성공 관건은 경쟁에 치여 쓰러진 사람들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가장 낮은 나무판을 치유해 함께 일으켜 세울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상처를 인정하는 용기와 이를 품어 안는 긍휼감이야말로 우리 시대 리더가 보여야 할 진짜 영성이다.
정연복 상처
가슴속에 남몰래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루를 살면서도
생채기로 얼룩지는 것이
인간의 삶이거늘
아픈 상처를 감추지 말자
상처가 있어
비로소 사람인 것을
상처는 상처와 어울려
아물어 가는 것
상처를 용기있게 인정하고 마주하고 치유하는 사람이 아름답고 성숙한 사람이다. 리더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는 용기이다. 인정된 상처는 자연스럽게 치유되어 리더와 조직을 더 강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