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earning

꿩을 날지 못하는 닭으로 만드는 방법 비전을 제거하다

Jan 15, 2026 ·4분 ·jkyoon · 387

꿩을 날지 못하는 닭으로 만드는 방법
비전을 제거하다
사냥개를 통해 꿩을 추적하라고 시키면 처음에는 꿩은 100 미터쯤 날아간다. 따라가서 다시 쫓아가면 이번에는 50 미터 즈음 날아간다. 이런 식으로 쫓기를 계속하면 지친 꿩은 기상천외한 행동을 보인다. 덤불 속에 자기 머리만 감추고 날 잡아가라고 기다린다. 제 “눈 가리고 아웅(나 없다)” 소리치는 셈이다.
꿩의 이런 속성을 이해한 사람들이 거친 꿩을 농장에서 사육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꿩에게 안대를 씌워 놓는 것이다. 안대를 쓴 꿩은 자신이 충분히 날아가서 도망갈 수 있음에도 절대 도망가지 못한다. 처음에는 머리 전체를 가리는 안대를 씌웠으나 나중에는 앞만 가린 안대를 개발했다. 꿩의 머리 속에는 비상은 앞으로 가기 위함이라고 입력되어 있기 때문에 굳이 옆은 가리지 않아도 날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농장의 꿩에게 옆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이점도 있었다. 앞은 보지 못하지만 옆은 볼 수 있는 부분 안대는 날지는 않지만 다른 꿩과 충돌 없이 행동을 조정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야생마를 길들이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야생마에게 안대를 씌워 놓으면 달리고 싶어도 달리지 못한다. 야생마는 달릴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 아니라 비전을 상실했기 때문에 달리지 못한다.
안대는 사람에게도 똑 같이 작용한다. 비상하거나 달리는 시도를 못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 뇌 속에 입력된 암묵적 정신모형(Implicit mental model)이라는 지도가 안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살면서 정신모형이라는 지도를 변화한 세상에 맞춰 충분히 업데이트 시키지 못할 경우 정신모형은 어느 날 안대가 되어 우리를 유리감옥에 가둔다.
안대를 쓰고 유리감옥에 갇혀 사는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유리감옥을 뚫고 비상하거나 달려나가는 시도를 할 리 없다. 유리감옥은 대부분 사회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소수자를 길들이기 위해 씌워 놓은 안대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소수자가 아닌 개인들도 세상을 따라잡지 못하면 안대를 쓰고 스스로를 유리감옥에 가둔다. 유리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눈이 있지만 세상을 온전하게 보지 못하는 안대를 쓴 사람들이다.
개인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타고 났어도 어떤 이유나 사건에 의해서 비전을 상실하면 달리거나 비상을 포기한다. 비전 대신 안대를 쓰고 유리감옥 속에서 갇혀 사는 우리의 삶은 의도하던 안 하던 남들의 눈에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천덕꾸러기 삶으로 전락한다. 우리 주변 정치인들이 특히 눈가리고 아웅하는 행동을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것은 오랫동안 자신도 모르게 안대를 쓰고 살았기 때문이다. 자신도 안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비전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앞만 보고 달리는 터널 비전을 가지고 있다면 제대로 날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단시간 내 큰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을 비전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도 터널 비전에 갇힌 것이다. 인간도 비상하는 것은 위로 날아가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꿩에게 앞만 보지 못하게 만들어 온순하게 길들이는 것처럼 인간도 위로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유리천정을 씌워준다. 유리감옥은 꿩과 달리 영특한 인간이 우회하여 위로 달아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다시 만든 것이다.
비전은 안대를 벗어던지고 전후좌우 안과 밖, 과거, 미래에 존재하는 보지 못하던 것들을 보는 경험이다. 세상을 전후좌우로 볼 수 있는 제대로 된 온전한 비전을 가진 사람들만 자유롭게 자신의 능력을 펼쳐가며 비행을 할 수 있다.
비전이 있다면 평소 자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던 자신도 볼 수 있다. 자기 자신을 보지 못한다는 것은 비전을 잃은 사람들의 첫 증상이다. 비전을 가졌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시작으로 맨 눈으로 보던 것보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깊이 더 두루 두루 볼 수 있는 경험이다.
비전의 학문적 정의는 삶의 존재목적에 대한 제대로 된 믿음의 안경을 썼을 때 보지 못하는 세상과 자신을 보게 되는 신비로운 경험이다. 비전이란 존재목적에 대한 믿음의 안경으로 자신을 보기도 하고 자신의 과거와 미래가 현재를 통해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 경험이기도 하다.
존재목적에 대한 믿음의 안경을 획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설사 운좋게 유리감옥을 탈출해도 세상을 방황하다 지쳐서 다시 유리감옥으로 돌아온다. 새장에 오랫동안 갇혀 살던 새들을 풀어줘도 결국은 다시 돌아오는 이치다. 돌아오는 새에게는 새장 속의 편안했던 세속적 삶에 대한 기억을 넘어 삶의 존재목적에 대한 믿음이 있을 리 없다. 존재목적을 탑재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허용된 자유는 자유가 아니라 길 잃음이다. 이들도 간간히 가출을 시도하나 다시 자신을 가두었던 유리감옥으로 되돌아온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온전한 자유는 존재목적을 각성하고 존재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갇혀 지내던 새장을 탈출할 때 느끼는 자유에서 시작된다. 새장 밖으로 탈출해 갖은 고난을 이기고 쓰러졌음에도 새장으로 돌아가기 보다는 다시 비상할 때 느끼는 자유가 더 숭고한 자유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실제로 죽는 순간까지 존재목적을 실현해서 세상에 유산을 남기고 언제든지 세상을 하직할 수 있을 때 느끼는 자유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자유다.
우리가 유리감옥을 탈출해 달리고 날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쓰고 있는 안대 때문에 존재목적에 대한 믿음의 안경인 비전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나도 설마 안대를 쓴 꿩일까?
안대를 벗어 던지자~

← 칼럼 목록으로
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