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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어떻게 민주화 되는가? 부활의 보통 명사화

Jan 15, 2026 ·6분 ·jkyoon · 355

교회는 어떻게 민주화 되는가?
부활의 보통 명사화
흔히 어떤 기독교 종파의 창시자가 자신을 재림 예수인 것처럼 주장한다면 사람들은 이 창시자를 사이비라고 칭할 것이다. 이런 사이비 종교가 탄생하는 이유는 신자들도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2 천 년 죽은 예수가 같은 몸으로 재림해서 자신들을 구원해줄 것을 믿는다면 이들과 사이비 종교의 창시자의 욕구가 맞아 떨어져 사이비 종교가 붐을 일으킨다. 기독교에서 모든 사이비는 고유명사 사칭행위를 통해 번성한다.
사도 바울은 이런 고유명사 부활이 아닌 보통명사 부활을 가르쳐 기독교의 기초를 세웠다. 예수의 부활은 몸의 부활이 아닌 예수가 남긴 가르침을 밀알로 삼아 우리 몸을 통해 부활한 보통명사 부활이다. 사도바울의 가르친 부활은 기다리는 수동적 부활이 아닌 매일 스스로 죽고 매일 스스로 태어나는 주체적 능동적 부활이다. 바울은 우리 몸을 통해 주체적으로 부활시킨 수많은 예수를 많이 목격할 수 있는 예수가 보통명사화 된 세상을 꿈꿨다. 모든 기독교인이 자신의 몸, 정신, 영을 통해 주체적으로 예수를 부활시킬 수 있다면 고유명사 부활을 흉내 내는 사이비 교주가 설 자리가 없다. 마치 불교에서 누구나 성불을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부처를 보통명사화 하는 것과 같다.
성불한 부처가 많이 탄생했다고 원조 부처의 지위가 손상되지는 않는다. 반대다. 많은 보통명사 부처가 탄생할수록 이런 보통명사 작업을 시작한 원조 부처의 신성한 지위는 더 공고해진다. 불교의 성불에 비유할 수 있는 기독교의 부활도 마찬가지다. 예수가 고유명사 예수의 몸으로 다시 부활하는 것이 아닌 우리 몸을 통해 보편적 정신으로 부활하는 것이 예수가 소망했던 부활의 본질이다. 부활의 보통명사화를 통해 수도 없이 많은 예수 닮은 예수가 탄생할수록 2 천 년 전 전 탄생한 예수의 숭고한 고유명사 지위는 더 고양될 뿐 아니라 예수가 살아 생전 간절히 소망했던 사랑이 넘치고 공의로운 세상도 더 가까운 현실이 된다.
보통명사로서 예수의 부활이 실현되지 않는 이유는 전통교회가 예수의 부활을 구성주의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실증주의자 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실증주의는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객관적 경험만이 실재한다는 믿는 경향이다. 실증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은 세상의 답은 정해져 있고 우리가 아직 제대로 된 답을 눈으로 확인 못했을 뿐이지 언젠가는 눈 앞에 기적처럼 나타난다고 믿는다. 이 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명해주는 것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험적 데이터다. 실증주의 세상에서 데이터 자체가 중요하지 데이터에 붙은 해석은 아무리 뛰어나도 그냥 사족일 뿐이다. 실증주의를 믿는 사람들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술에 의해서만 미래가 진보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기술은 유일하게 증명이 가능한 경험적 대상이다.
고유명사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실증주의자들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독교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실증주의가 아닌 구성주의를 앞세워 예수의 부활을 보통명사화해 교회를 실증주의 감옥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이다. 실증주의를 신봉하는 교회에서 벗어나 모두에게 예수를 자신 몸과 정신과 영에 부활시켜 자신의 삶 속에서 살려내라는 살려내라는 정언명령을 내린 교회가 민주화된 교회의 모습이다. 불교가 부처를 민주화 시킨 원리를 기독교가 배워야 교회도 온전하게 민주화된다.
구성주의자들은 세상에 처음부터 정해진 경험적으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진리는 없다고 가정한다. 진리는 누군가의 머리 속에서 이야기를 통해 먼저 상상적으로 구성되어진다고 본다. 어떤 사람이 상상을 통해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규레이션해서 이 이야기를 구현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고 이들을 협업으로 동원해 이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것이 현실로 태어날 때 비로소 진리가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구성주의자들에게 진리는 상상에서 시작해 재현된 세상이 처음 이야기의 약속대로 공공선에 기여하는지의 정도로 판단한다.
요한복음은 하나님이 태초에 세상을 창조한 방식이 구성주의적 방식이었다고 못 박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의 탄생과 부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되고 이 믿음이 밀알로 종묘되서 생명으로 탄생한 구성주의적 산물이다. 말씀이 믿음으로 종묘될 때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을 품고 다른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진정한 밀알이 된다.
이런 구성주의적 창조를 외면하고 예수의 부활을 몸의 부활이라는 실증주의적 방식으로 고증하려는 노력은 기독교의 정신(말씀-믿음-밀알-생성변화-공의의 세상)을 근본부터 부인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한다. 크리스천 사이언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구성주의적 믿음과 실증주의적 과학의 경계를 혼동하는 사람들이다.
구성주의 세상에서 <진실>은 객관적 진실을 넘어서 처음 내면의 의도를 담은 원래의 이야기와 이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상황에 변화해도 얼마나 같을 수 있는지에 의해서 결정된다. 구성주의 세상에서는 공공선을 담고 있는 목적에 대한 진정성이 우리가 답으로 전개할 진실의 원본이다. 목적이 밀알로 우리 몸으로 들어와서 자신의 영혼, 정신, 마음, 몸의 부활해 보통명사의 카피로 재현된다.
구성주의 세상에서는 공공선을 약속하는 목적이 현실에서 모습을 드러낸 상태가 보통명사이자 시뮤라크이고 이 시뮬라크가 바로 우리가 찾던 답이 재현된 모습이다. 이 시뮬라크가 다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카피되고 새로운 고유성을 가진 답으로 제시되면 또 다른 차원에서 시뮬라크가 탄생해 말씀 속에서만 존재하던 진실이 현실이 된다. 예수의 부활도 마찬가지다. 예수의 가르침이 우리의 몸에 밀알이 되어 비슷한 모습의 보통명사 시뮬라크로 부활하고 이 부활과 부활이 씨줄과 날줄로 직조되어 전개된 공진화가 기독교의 기초와 번성을 만들었다.
구성주의 세상에서 진실은 2천 년 전 예수가 2025년 지금 이 시점에서 같은 몸으로 부활한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 처음 원본에 새겨진 공의로운 세상에 대한 이야기와 시뮬라크로 구현된 세상의 이야기가 같은 이야기인지 즉 이야기의 <진실>에 관한 문제이다. 가짜를 만들어내는 사이비 교주들은 추종자들의 실증주의 믿음을 역으로 이용하여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든 사람들이다.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내면의 의도를 숨기고 활동하지만 자신을 마치 신도들이 눈으로 경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활한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내면의 의도는 자기 욕심을 챙기고 자신의 밥그릇을 챙기는 것이다. 이런 숨긴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도움을 받기 위해서 이 의도를 포장하고 멋지게 진짜처럼 만들어야 한다. 가짜나 짝퉁의 답을 유포하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원본 자체가 없이 가짜 원본을 진짜인 것처럼 연기하고 포장해 짝퉁을 전파시킨 사람들이다. 이들이 만들 현실은 원본 없는 카피의 카피일 뿐이다. 이들은 구성주의 세상에서 진실이 실현된 답인 진짜 시뮬라크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가짜 짝퉁을 만들어 세상을 오염시키는 사람들이다. 모든 사이비 교주는 원본 없는 가짜 시뮬라크를 원본인 것처럼 속여 실증주의에 경도된 신도에게 유통시킨 사람들이다.
구성주의 세상에서의 진실은 태초의 말씀이 담긴 존재목적이라는 원본에서 기원한다. 본인이 예수를 부활시킨 진실을 담은 시뮬라크인지는 자신의 삶의 의도가 얼마나 세상을 공의롭게 하는 하나님 창조 사역의 파트너가 되겠다는 서약과 정렬되어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구성주의 세상에서는 자신의 내면적 의도와 외면적 의도가 원본과 같다 하더라도 이 스토리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도록 시뮬라크로 카피되지 못한다면 진실이 되지는 못한다. 진실을 왜곡한 의도를 가진 사기꾼의 카피는 자발적 카피를 낳지 못한다. 이들 사기꾼의 복제행위는 값 싼 물건을 팔기 의해 비싼 광고 모델을 동원해 물건을 비싸게 파는 광고 카피와 다르지 않다. 이들 이야기는 그냥 겉 모습만 화려한 현란한 구라일 뿐이다.
부처에 대한 불교의 해석처럼 예수의 부활은 보통명사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맞다. 보통명사로 해석된 부활의 밀알을 머금고 수도 없이 많은 시뮬라크 예수가 탄생하고 이들이 이 시뮬라크의 연대와 직조와 협업을 통해 하나님과의 서약대로 사랑이 넘치고 공의가 넘치는 세상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이 기독교가 꿈꾸는 세상의 부활이고 하나님의 진실이 살아서 실현된 증거일 것이다. 이런 보통명사화 된 교인들로 가득 찬 교회가 지금의 권위주의를 넘어 길 잃은 어린양을 중심으로 온전하게 민주화 된 교회를 상징한다.
21세기 기독교의 임무는 예수를 고유명사의 감옥에서 해방시켜 보통명사 부활의 대명사로 다시 세우는 일이다. 평신도들이 잎장 선 주도적 자기부활을 통해 예수의 시뮬라크를 만들어내는 노력이 기독교와 예수를 제도의 무덤에서 구해낼 수 있다. 이런 시도가 교회의 민주화 운동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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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