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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얼굴은 이름에 앞선다 회사후소(繪事後素)
맨 얼굴은 이름에 앞선다
회사후소(繪事後素)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논어에 등장하는 사자성어를 직역하면 휜 바탕이 있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다시 의역을 하면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비로서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본질이 뿌리여어 본질이 충만해야 나무도 과일과 열매를 풍성하게 산출할 수 있는데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본질은 돌보지 않고 보이는 꾸밈만 치장하는 세태에 대한 풍자다. 본질이 성숙하지 못해 속은 텅비어 있는데 꾸밈만 화려하다면 아무리 화려해도 빈 깡통에 불과하다. 이미 뿌리가 썩어서 과일이 썩어가는데 이런 나무 줄기에 영양주사를 놓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우리가 태어나면서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부여받는 이름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존재의미가 없는 빈깡통일 뿐이다. 이 빈깡통에는 단지 부모의 열망이 담겨있을 뿐이다. 초기에 부모는 자신의 열망을 담아서 끊임없이 자식의 이름을 불러주지만 자식이 이 열망을 거부하거나 이 열망에 대한 성과가 미진할 때는 부모도 열망을 잊어 버린다.
빈깡통인 이름과는 달리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에 자신의 삶을 그려내는 운명적 과정을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 삶의 화가가 되어 삶의 희노애락과 삶의 애환을 얼굴이라는 캔버스에 그림으로 고스란히 그려낸다.
이 삶이 고스란히 표현된 얼굴이 어떤 특정한 흥미진진하고 아름다운 스토리로 단순화되면 사람들은 이 스토리를 기억하기 위해 빈깡통으로 존재하던 이름을 빌려쓴다. 빈깡통으로 존재하던 이름이 비로소 제 2의 탄생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이름이 비로서 본질을 획득한 순간이다.
이름이 본질을 획득하는 순간 이름은 휴먼 브랜드로 탈바꿈한다. 이름이 휴먼브랜드의 지위를 획득해도 얼굴을 선행해서 존재할 수는 없다. 휴먼브랜드의 진정한 가치를 판별해보기 위해서는 얼굴에 그려진 삶의 가치와 열망을 판독해보아야 한다. 심리 측정도구가 발달하기전에 이병철 회장이 관상쟁이를 면접관으로 고용한 이유가 바로 얼굴에 그려진 휴먼가치를 파악하기 위한것으로 파악된다.
미용성형하는 사람들은 회사후소 즉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의미가 있다는 철학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삶을 더 멋지게 표현하기 위해 자신이 삶이 고스란이 드러나는 얼굴을 화려하게 다시 포장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영위하는 주체적 삶으로는 자신이 열망하는 아름다움과 젊음의 수준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고 인위적 아름다움과 인위적 젊음을 돈으로 사기로 결정한다. 이들이 자신의 얼굴에 가면을 쓰는 이유는 아름다움과 젊음 때문이다. 아름다움과 젊음으로 멋지게 포장하는 것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몸 전체를 명품으로 치장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과 화장하지 않은 젊음은 40 불혹의 언덕을 지나 50이 지천명의 고개를 넘어서면 맨얼굴에 고스란이 자신을 드러낸다. 젊음이 꺽기고 화장이 먹히지 않는 나이가 되면 자신의 얼굴에 나타난 삶의 그림에 대해서는 자신이 고스란히 책임을 져야한다. 자신의 얼굴에 책임지는 삶을 위해서는 얼굴성형이 아니라 마음의 성형이 필요했다는 것을 깨달지만 이미 나이가 지천명을 지났다. 늦게나마 회사후소를 깨달지만 이미 마음을 성형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쳤다.
이름은 절대로 얼굴을 앞 설 수 없다. 얼굴은 세월을 따라 자신의 삶의 괘적을 표현한 그림이고 이 그림의 가치에 따라 포장으로서의 이름의 가치가 정해질 것이다. 얼굴은 본질이고 이름은 본질을 포장한 것이다. 본질이 의미가 있을 때 꾸밈도 의미가 있다. 회사후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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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꾸밈과 연기를 본 업으로 하는 배우가 자신의 진실된 얼굴로 인정받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보다 힘들다. 외모가 준수하고 아름답지만 텅빈 얼굴들이 넘치는 연예계에 자신 맨 얼굴의 진실한 아름다움을 증명한 배우들도 있다. 이들은 이름에 앞서 아름다운 얼굴이 먼저 기억나는 분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