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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은 날아오고 진실은 절뚝거리며 찾아온다 평범한 사람들이 거짓에 오염되는 방식

Jan 15, 2026 ·6분 ·jkyoon · 378

거짓은 날아오고 진실은 절뚝거리며 찾아온다
평범한 사람들이 거짓에 오염되는 방식
요즈음에는 가짜 뉴스에 대한 공방이 거세다. 아이러니는 가짜 뉴스를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분석해보면 이들이 가짜 뉴스의 생산자이고 소비자들이다. 가짜 뉴스의 생산자이고 소비자이다보니 가짜 뉴스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자기가 생산한 뉴스 이외의 가짜 뉴스에 대해 공포감을 느껴가며 산다. 이들이 그렇게 가짜 뉴스 척결을 위해 사생결단을 내리는 이유는 자신들이 만든 가짜 뉴스 이외에 어떤 가짜뉴스도 믿지 말라는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다. 우리 삶에서 이런 가짜뉴스의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사람들은 두 종류다. 하나는 거짓된 믿음을 퍼트리는 전광훈, 이만희, 문선명과 같은 예수 호소인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확증편향을 과학적 진실로 호도하는 사이비 과학자들이다.
우리가 보고 해석하는 세상은 왜 가짜뉴스라는 환각에 취약한 것일까?
진실을 탐구하는데는 관심이 없고 단지 세상을 믿는대로 보거나 본대로 믿는 현상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예수 호소인들은 믿는대로만 보는 쪽으로 경도된 사람들이고 사이비 과학자들은 본대로만 믿는 사람들이다. 사이비 과학자들은 자신이 본 것을 정당화 하기 위해 겨자씨만한 믿음을 끌어들여 과장한다. 역으로 전광훈 손현보 같은 예수 호수인들은 자신들의 허황된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이 편파적으로 본 것을 과도하게 일반화 시킨다.
세상을 제대로 보는 비전을 상실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가짜 뉴스는 본 것과 믿는 것 사이에 숨겨져 있는 진실을 찾는 노력을 포기했기 때문에 생긴다. 보는 것과 믿는 것 사이의 창조적 긴장관계를 잃어버렸을 때 필연적으로 가짜뉴스에 노출된다.
아일랜드의 풍자 작가이자 성직자인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1667~1745)는 이렇게 가짜뉴스에 먹잇감이 되는 것을 풍자해가며 거짓은 날아다니고, 진실은 그 뒤를 절뚝거리며 따라온다(“Falsehood flies, and truth comes limping after it.”)고 표현한다.
일단 우리는 세상을 자신의 본대로만 믿는다. 하지만 눈으로 본 것은 대상의 일부다. 예를 들어 상대를 눈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상대의 뒤통수를 보는 것도 아니고 상대의 내면에 들어가 보는 것도 아니다. 앞면만 보고 실체를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몇 번이고 확인해도 실체에 대한 정보는 완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이 본 것이 대상의 100분지 1에 미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보고 이해한 것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믿음을 부여한다.
또한 우리가 취합한 일차감각자료는 뇌에 의해서 가공되는 동안 대부분 편집되고 소실되기도 한다. 뇌의 원초지각에서 분류되는 동안 소실되고 연합영역으로 보내져 분류되고 분석되고 해석되는 동안 다시 유실된다. 분류된 연합지각 자료는 다시 연합지각영역에 모여서 분석되고 구성된다. 여기서 다시 자료가 유실된다. 우리가 아무리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았다고 주장해도 코끼리를 장님들이 만지고 코끼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군맹무상(群盲撫象)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코끼리 앞의 장님들처럼 보았다고 모두 진실을 본 것은 아님에도 모두 진실을 보았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은 장기기억 속에 모여서 세상을 보는 지도를 만든다. 정신모형이라고 불려지는 지도는 본 세상을 기반으로 만든 믿음의 요약판이다. 이 요약판이 바로 세상을 보는 지도인 정신모형의 지도다. 이 정신모형의 지도가 형성되면 아무리 새로운 사실이 들어와도 이 정신모형의 지도가 새로운 사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새로운 것으로 지각하지 못한다. 장기기억에 각인된 정신모형을 기반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면 처음 세상을 인식할 때처럼 본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대로 보는 세상이 시작된다.
이 정신모형은 오랫동안 보고 검증했던 세상에 대한 단단한 믿음의 세계여서 이 정신모형이 지각에 작동되기 시작하면 아무리 현재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도 이 정신모형에 의해서 디코딩된 믿음대로 보게 된다. 어른이 되어 세상을 보는 지도가 형성되면 세상을 그대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정신모형이 디코딩한 믿음의 지도에 잡히는 세상만 볼 뿐이다.
아이가 세상을 처음 보는 것은 보는대로 믿는 세상이고 어른의 정신모형으로 본 세상은 믿는대로 본 세상이다. 보이는대로 보는 세상도 상당히 왜곡된 세상인데 과거에 본 것을 토대로 만든 믿음으로 재구성해서 본 현재의 세상은 왜곡된 세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뇌의 작용을 이해하면 우리가 보고 구성한 세상은 대부분 환각에 근거한 가짜뉴스다.
가짜뉴스에 취약한 사람들은 어른과 아이를 사이를 날라 다니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본 것을 믿기 위해 이것을 정당화하는 믿음을 끌어들인다. 또한 믿는대로 보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만 취사선택해서 본다. 보는 것과 믿는 것이 가짜뉴스를 생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구조다. 이렇게 보는 것과 믿는 것이 협업하기 시작하면 스위프트가 예언한대로 진실이 날라다니는 가짜뉴스를 따라잡지 못한다.
진실이란 어떤 경계가 정해지고 정해진 경계에 믿음의 밀알이 종묘되고 종묘된 밀알이 결실을 낼 때 드러난다. 이렇게 태어난 진실도 경계 내의 진실이다. 또한 진실을 드러내는 일은 농부의 작업처럼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빨리 빨리를 외치는 대한민국은 진실이 숙성되어 열매 맺음을 기다리지 못한다. 대한민국이 가짜뉴스에 더 취약한 이유다.
뇌과학이 발전하기 전에도 이런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 바로 해석학(Hermeneutics)으로 세상을 접근한 사람들이다. 이들 해석학 기반 철학자들은 세상은 모두 각자의 뇌의 환각작용으로 구성해낸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그나마 객관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세상은 각자가 본 주관적 세상에 대한 공분모를 간주간성(Intersubjectivity)으로 찾아내 구성한 세상이라고 제안한다. 이들은 사회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실증주의적 객관성은 허구적이고 사회과학이 그나마 객관성을 주창하려면 간주간적으로 합의한 것이고 이 합의는 세상이 바꾸면 바뀐다는 견해다.
우리 눈으로 본 세상이 상대방이 구성한 세상과 다르기 때문에 상대방의 주장을 가짜뉴스라고 폄하하고 상대방도 내가 주장하는 세상을 가짜뉴스라고 폄하한다면 진실의 세상이 구성될 방법이 없다. 우리 모두가 장님이고 가짜뉴스의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각자가 본 세상에 대한 간주간성을 구성해낼 수 있을 때 우리가 상식적 현실이라고 믿는 진실이 발현되고 진실의 눈으로 볼 수 있을 때 세상은 제대로 보인다. 가짜뉴스가 무너트리는 세상은 바로 진실에 기반한 세상이다.
우리의 정신모형은 베이컨이 예측한 동굴, 시장, 극장, 종족의 우상에 오염되어 있다. 이런 오염사실을 인정하고 간주간성을 발휘해 이런 우상을 집단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집단환각을 극복할 수 있다. 간주간적으로 우상을 극복할 수 있을 때 진실은 부분적으로나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다른 사람들의 주장을 가짜뉴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일수록 가짜뉴스의 생산자이고 소비자여서 사람들이 어울려서 만들어낸 상식적으로 구성된 세상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본 세상은 구성적으로 각자의 뇌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모두가 가짜뉴스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이들 가짜뉴스의 가장 강력한 주범은 다른 사람들이 가짜뉴스를 만들고 있다고 희생양을 만들어 지목하는 사람들이다.
하버머스는 누군가의 권력에 따라 지나치게 좌지우지 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비슷한 권력의 사람들이 모여 간주간적으로 소통하고 간주간적으로 합의한 세상만이 가장 민주적이고 이상적 소통이 이뤄지는 시민사회라고 제안했다. 하버머스는 가짜뉴스가 소통되고 소비되지 않는 이상적 시민사회의 조건을 잘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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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