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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Purpose)과 목표(Goal) 혼동과 전치의 비극
목적(Purpose)과 목표(Goal)
혼동과 전치의 비극
한국의 경영학과 학생들은 입학하면서 부터 MBO(Management by Objective), KPI(Key Performance Index), OKR(Objective Key Result)라는 미국식 목표 중심 관리에 익숙해 있어서 있어서 목적보다는 목표의 개념에 더 익숙하다. 모든 것을 촘촘하게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최대한 단기적 목표로 분절시켜 관리하는 방식에 익숙하다. 동양식 사고의 반영이지만 중국 학생들은 모든 것을 목적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 중국학생들은 상황을 표현할 때 목적을 중심어로 사용하고 목표는 목적을 설명하기 위한 곁다리 말로 쓰는 경향이 크다. 정확하게는 둘 사이를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다는 투이다. 중국 학생은 목표라는 말을 사용해도 의미는 목적이다. 따라서 중국 학생은 상황과 뉴앙스에 따라 그때마다 임의로 사용하는 경향이 크다. 그럼에도 아무 맥락 없이 이 둘을 구별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설명하면 충격이 크다.
이런 큰 혼동이 있다는 것을 안 후부터는 수업 첫날에 목표와 목적의 차이부터 설명하고 시작한다. 근본적으로 두 말이 차이가 있음을 설명하기 의해 일상은 구체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으로 채워진다고 설명한다. 오늘 달성한 목표가 내일 설정한 과제에 초기값으로 반영되고 내일 달성한 목표는 다시 정산되어 모래 달성할 목표의 초기값으로 반영되는 방식의 목표의 체인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삶은 하나 하나의 목표도 중요하지만 <목표의 체인>이 누적되어 만든 <시스템>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목표의 시스템은 모두 삶의 개입이 끝나는 지점에 설정되는 마지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설정된다는 점까지 설명하고 학생들에게 자신 삶의 개입이 끝나는 순간에 설정할 마지막 목표(End Goal)가 무엇인지를 물어본다. 학생들의 답변을 다 들어보고 더 이상 목표를 설정할 수 없는 삶의 개입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에 설정한 목표를 목적이라고 부른다고 차이를 설명한다.
문제는 이 마지막 목표가 그 전에 구축해 놓은 달성한 목표의 시스템이라는 맥락과 무관하게 설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목적 이전에 달성한 목표 시스템의 마지막 화룡정점이라는 점도 설명한다. 사람들이 목적을 방향성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마지막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지금까지 달성해온 목표들의 방향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이 삶의 방향성을 갑자기 바꾸면 죽을 때가 된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유도 설명한다. 목표의 방향성은 죽음과 교환하기 전에 임의로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삶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목적과 조율하는 것의 중요성도 설명한다. 결국 서로 모여서 서로가 공감이 가는 목적에 대해서 협상을 할 때 도달하는 목적의 공분모는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에게도 도움이 되어 이들에게도 아무 무리 없이 상수로 채용될 수 있는지다. 즉, 목적이 실현되었다해도 실현된 목적이 세대를 초월해 존재할 수 있는지의 지속가능성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목적의 조건을 충족한다고 설명한다. 지속가능해야 목적을 추구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궁극적 목적으로 인정될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이들의 협업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강조한다.
목적은 미래를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방향성이기 때문에 목적을 잃는 경우 살면서 길을 벗어나거나 길을 잃는 사건에 관여될 수도 있음을 설명한다. 사람들이 목적을 신경쓰지 않는 이유는 먼 미래의 일이고 멀리 보이거나 희미하게 추상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라는 점도 설명한다. 멀리 보이거나 추상적으로 보인다고 해서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삶의 번성을 누리는 사람은 추상적으로 희미하게 멀리 보이는 미래에 먼저 가서 목적을 밀알로 가져와서 현재 하고 있는 일을 토양으로 삼아서 목적이 실현되는 과수와 과수원을 만드는 작업을 지금 시작한 사람들이라는 설명도 덧붙인다.
목적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목표를 달성하면 목적이 드러날 것이라는 맹목적 낙관에 사로잡혀 초치기로 서로 연관도 없는 더 큰 목표를 욕심 부려가며 달성하다가 대부분 길을 잃은다. 목적의 보복이다. 사이비 교주들은 추종자들에게 목적이 아닌 것을 목적인 것처럼 가스라이팅 시켜 본인이 원하는 숨겨진 목적인 금전, 명예, 권력를 얻는다. 사이비 종교란 목적과 목표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폰지 사기행각이다.
성경에도 예수께서 목적과 목표를 제대로 분별하며 사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대목이 나오는데 바로 요한복음 15장 4절 말씀이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모든 사람 마음에 심어서 거해야 할 밀알은 목적의 밀알이다. 이 밀알이 존재할 때 포도나무의 본체가 생겨나고 이 본체를 기반으로 줄기가 생기고 줄기가 생겨야 꽃이 피고 꽃이 피어야 포도라는 결실을 얻는다. 사람들이 결실에만 관심이 있지만 줄기가 돌봐지고, 묘목이 돌봐지고, 가장 좋은 밀알이 심어지는 총체적 시스템이 없다면 좋은 포도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우리 마음 속에 심을 수 있는 가장 든실한 밀알은 내일의 결실을 위해 급하게 심은 쭉정이 씨앗이 아니라 삶의 개입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목적의 결실을 현재로 가져온 밀알이라는 설명이고 이 목적의 밀알이 결실을 맺기까지는 농부의 마음으로 일련의 목표 시스템의 알고리즘을 효율적으로 작동 시켜야 함을 설명한다.
삶을 처음 목적의 밀알을 발견해서 자신의 마음의 밭에 심은 과거, 여기서 자라난 포도나무를 가꾸고 있는 오늘, 삶이 다해서 마지막 결실을 거둘 미래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농부의 경영은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연결된 끊이라는 점을 잊지 않고 이 끈이 끊어지지 않게 관리하는 Connecting dots이 본질이다.
삶의 지혜로운 노하우를 알고 있다는 것은 성공과 번성이 씨앗(Why)->알고리즘(How)->결실(What)의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지혜롭다는 것은 아무리 급해도 우물에서 숭늉 찾기 식으로 열매 -> 가지 -> 밀알이라는 역방향의 시도가 무모하다는 것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씨앗, 알고리즘, 결실이 모두 목적을 중심으로 정렬되어 경우를 자신만의 고유한 Way가 있다고 칭송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초심이라는 것은 나에게도 목표 너머에 목적이라는 밀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삶의 밭에 처음 밀알을 식재한 날에 대한 기억이다. 초심을 잃었다는 것은 이 과거의 날과 오늘 사이에 끈이 끊어졌다는 의미다. 초심을 회복한다는 말은 나에게 올 마지막 미래, 과거, 현재의 끈을 다시 연결하는 작업을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초심은 목적이 보낸 자명종 소리이자 Calling이다.
초심을 회복해 목표의 수면제에 취해 잠든 영혼을 깨어서 다시 목적에서 약속한 결실을 위해 급진거북이가 되어 일상의 프로젝트를 뚜벅뚜벅 사부작사부작 해나가는 것이 사명이다. 무슨 일을 하던 목적의 밀알인 과거와 목적의 결실인 미래가 현재를 통해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사명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은 일상이라도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어 있는 현재를 체험한다면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들은 목표를 분절적이고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삶이 시스포스의 돌굴리기로 쇠진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목표는 독립된 섬처럼 보이지만 그런 목표는 신기루일 뿐이다. 보이지 않을 뿐이지 모든 목표는 전에 달성한 목표와 미래에 달성해야 할 목표라는 <시스템>의 일각일 뿐이다. 독립적으로 떠 있는 목표에 눈이 어두워 목표가 거대한 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을 놓치면 열심히 살아도 더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된다.
<목표의 시스템>을 이해한 사람들만 마지막에 제대로 정산해야 할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실제로 마지막 목표로 약속한 것을 정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약속을 지킨 신뢰로운 사람이다. 회사에서는 더 큰 목표가 있음을 이해시키기 위해 KPI가 아닌 OKR을 설정했지만 목표 너머에 빙산의 밑동처럼 보이지 않는 목적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시키지는 못했다. 목적을 이해하지 못한 회사에서 아무리 OKR 할아버지를 해봐도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