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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호기심과 즐거움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제도화 당해 죽어가는 삶
그 많던 호기심과 즐거움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제도화 당해 죽어가는 삶
다음은 가게 주인이 가게 앞에서 시끄럽게 노는 어린이들을 제도화시켜 가게 앞에서 쫓아 버리는 사례이다. 이 사례에서 아이들은 가게주인에 의해서 제도화 당했다. 성공적으로 제도화 당한 사람들은 어른이던 아이이던 호기심을 잃고 시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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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게 옆에서 아이들이 모여서 시끄럽게 놀고 있다. 주인은 시끄러운 아이들로 장사에 방해를 받자 묘안을 생각해낸다.
너희들이 내일도 여기 와서 즐겁게 놀면 너희들 모두에게 만원씩을 지급하마. 아이들은 이게 웬 횡재냐며 다음 날도 와서 신나게 떠들어가며 놀았다.
주인은 돌아가는 아이들을 다시 불려 내일도 다시 와서 즐겁게 놀면 5천원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만원은 아니지만 이게 왠 횡재냐며 다음 날도 아이들은 가게 앞에 와서 떠들썩하게 즐겁게 놀다갔다.
아이들이 떠나기 전에 내일 또 다시 오면 5천원을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다음 날도 역시나 아이들이 나타나서 신나게 놀았다.
그날 신나게 놀다가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가게 주인은 다음과 같은 황당한 선언을 한다. 내일부터는 너희들이 여기 와서 떠들고 놀아도 돈은 더 이상 못 준다.
실망한 아이들은 다음 날부터 가게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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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주인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물리친 비결은 금전적 보상이라는 강력한 간접동기를 이용해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제도화의 철장>에 가두어서 제압한 것이다. 제도화의 철장에 갇히는 순간 이들이 가지고 있던 놀이에 대한 직접동기였던 즐거움과 호기심은 제도 속에 갇혀서 거세 당한다.
우리가 제도라고 생각하면 정부 관공서건물이나, 대학건물들을 상상하지만 제도화의 핵심은 새로운 것이 탄생해도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주어지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다. 마음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어 더 이상 호기심이 발현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어떤 새 관행을 시작했는데 어느 누구도 이 새로운 관행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게 되면 사람들은 어느 순간 사람들은 이 관행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관행과 관련된 건물은 없지만 사람들 마음속으로 어떤 관행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이 관행은 건물만큼이나 단단한 현실로 제도화 된다. 실제로 이 관행을 고치려한다면 건물을 부수고 새로 세우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관점이 고정되고 호기심이 사라져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제도화 당하면 대상을 상식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처음에 가졌던 호기심이 사라진다. 제도화가 죽이는 것은 호기심이다. 제도의 감옥에 가두어 놓고 감옥이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세계라고 받아들에게 해서 호기심을 죽인다. 제도화 당하면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끼지만 호기심을 못느끼기 때문에 혁신이나 변화가 사라진다. 울만도 <청춘>이라는 시에서 시간의 반복되어 나이만 먹게 되면 정신이 제도화 당해서 결국 호기심을 잃게 되고 갑자기 늙은이가 되어 인생의 감옥에 갇혀 죽음만을 기다리게 된다고 경고한다.
요즈음 실리콘 벨리의 기업들이 직원들을 영입할 때 역량이 같다면 가장 우선시하는 인재는 제도화 당하지 않은 호기심이 가득한 현실주의자들이다. 즉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쉽게 제도화 당하는 사람들을 충원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아무리 뛰어났던 창업자도 제도화 당해 호기심을 잃으면 혁신을 놓치고 어느 순간 결국 사망선고를 당한다.
성과에 대해서 금전적 보상을 많이 해준 결과로 이 금전적 보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예전과 똑같은 금전적 보상은 직원들에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인센티브가 되지 못한다. 결국 똑 같은 일에 대해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을 해야되고 결국 제도화된 직원들의 혁신을 독려하기 위해 회사는 재무적으로 이를 충당할 여력이 안되어 문을 닫는다. 혁신의 본능을 잊어버렸다면 완벽하게 제도화 된 것이다.
집 앞 연못에 쉬기 위해 내린 야생오리에게 먹이를 주어서 뚱뚱하게 만들고 야생의 본능을 잃어버리고 집 앞의 연못에서 못 벗어나게 만들었다면 이 집오리로 변한 것이고 결국 제도화 당한 것이다. 제도화 당한 오리들은 뚱뚱해져서 날아가지 못한다. 한 번 제도화 당하면 이전의 혁신적 오리가 되지 못한다. 제도화 당해 몸도 뚱뚱해졌지만 겨울철마다 찾아 나서던 북쪽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은 것이다.
일전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SKY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자녀를 어떻게 제도화시켜 의대에 집어넣을 수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부모의 기획이나 재력에 의해 제도화 당해서 의대에 성공적으로 들어갔다 하더라도 호기심을 잃은 이들의 삶이 행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아무리 자신들끼리의 벽이 높은 의사의 세계라하더라도 호기심이 거세당한 암기왕이 의술에 소명을 가진 의사로 살아남을 방법은 없다.
우리나라도 2008년 신자유주의가 이끌던 호황이 버블로 사라지고 끝이 보이지 않는 L자 불황이 15년 간 지속되자 불황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제도화에 덫에 갇혀 매일 매일 조금씩 가난해지는 삶을 뉴노멀로 받아들이고 있다. 조금씩 형편이 나빠지는 것이 매해 반복되어 제도화되면 우리가 직면하는 터널의 종착역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죽음의 막장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매일 조금씩 나빠지는 끓는 냄비에 갇혔지만 제도화되어 적응했다고 믿는 삶아 죽을 운명의 개구리 신세다. 누군가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당장 나서 우상향 터널을 뚫지 못한다면 국가 전체가 사망선고를 받아놓고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조직과 사람들이 일상의 반복을 통해 제도화 당하기 시작하면 혁신과 호기심을 다 잃어버리고 뚱뚱한 집오리가 되어 비만을 견디지 못해 결국 점진적 죽음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제도화는 일상의 편안함을 가져다 주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를 제도적 감옥에 투옥시켜 정신을 물건으로 물상화시켜 거세한다. 제도화는 양날의 칼이다. 한 편으로 우리를 감옥에 가두어 보호와 안락함을 주지만 여기에 빠지게 만들어 정신을 화석화 시킨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제도화의 철장에 갇혀 살게 되면 변화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해 범하는 실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고치지 못해 결국 실수에 대한 부인이 우리를 죄인으로 만들게 되고 죄인의 상태가 다시 일상에서 제도화되어 결국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는 운명임을 경고했다. 우리가 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인지를 각성해 매일 죽고 매일 살아나는 삶을 통해 제도화의 철장에서 벗어날 것을 요청했다.
뛰어난 리더들도 젊었을 때는 극성이 분명한 나침반을 가지고 어느 순간 성공을 거두면 제도화의 철장에 갇혀 비운의 주인공이 된다. 이들은 성공의 일상 속에서 나침반을 제도화 시키는 우를 범한다. 당연하게 여겨 성공이 제도화 되면 나침반이 떨림을 멈추게 되어 정신을 장사 지내게 된다. 젊었을 때 그렇게 추앙 받던 리더가 만인의 지탄의 대상이 된다. 이미 나침반이 떨림을 멈춘 사람들을 과거의 화려한 성공만을 보고 리더로 세우면 조직과 사회와 국가의 불행이 시작된다.
우리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북극성은 고정되어 있어도 우리가 지구에 사는 이상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는 과정에서 지구의 북쪽인 자북과 진실을 담고 있는 북극성의 진짜 북극은 시간이 반복되는 사이에 서로 조금씩 어긋나게 된다. 그럼에도 한 때의 성공에 취해 진북과 자북을 조정하기 위해 떨리는 나침반을 무시하고 과거의 자북의 나침반에 의존해 살게 되면 어느 순간 나침반도 떨림의 기능을 멈추고 고장난 나침반으로 전락한다. 한 때 성공했었지만 철도에서 탈로한 리더로 전락한다.
우리가 운용하는 나침반이 아직도 떨림을 유지하고 있다면 우리의 정신은 아직도 제도화의 철장에 갇혀 죽은 상태는 아니다. 나침반이 떨림을 유지하고 있을 때만 우리 정신과 영혼은 살아 있음을 증거한다. 떨림을 감지하는 호기심은 정신과 영혼이 살아 있음을 알리는 안테나다. 호기심이 사라졌다는 것은 나침반에 달려 있는 안테나가 기능을 멈춘 것이다. 극성이 떨어진 나침반이 떨림을 멈추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사라지는 순간부터 급속하게 나이듬이 진행될 것이다. 나이듬은 정신과 영혼이 일상을 통해 제도화 당한 상태를 의미한다. 제도화된 나이듬의 종착역은 죽음이다. 나침반이 떨림을 멈췄다면 죽음만을 기다리며 죽을 때까지 식물인간으로서 연명하는 비운의 삶을 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등장하는 스마트한 주인이 아이들에게 제도화의 철장에 가두는 가스라이팅을 리더십이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회사에서 혹은 주변에서 이런 스마트한 사람들이 여러분을 대상으로 제도화라는 가스라이팅을 시도하면 우리는 여기에 갇히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