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Learning
디지털 시대 평판관리
유나이티드가 내 기타을 부쉈네요!
디지털 시대 평판관리
2008년, 무명 가수 데이브 캐롤이 공연을 위해 시카고 오헤이어 공항에서 네브라스카 오마하 공항으로 이동하던 중 자신의 테일러 기타가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부주의로 부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캐롤은 자신의 기타가 부숴진 것을 보고 항공사에 보상을 요구한다. 항공사는 규정을 핑계로 9개월 동안 보상을 거부했다. 대형 항공사와의 싸움에 지칠대로 지친 캐롤은 2009년 상황을 반전시키는 사건을 일으켰다. 당시 상황을 묘사하는 노래 한 곡을 작성해서 유튜브에 올렸다. 제목은 “United Breaks Guitars(유나이티드가 기타를 부수네요)”.
영상은 하루 이틀만에 수십만건의 뷰를 작성했고 시간이 지나자 수억 뷰를 기록했다. 동영상이 올려진 다음 날 항공사 주가는 실제 10% 넘게 폭락했다. 결국 회사가 무릎을 꿇고 보상정책까지 바꿨지만, 진짜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합의 후에도 이미 동영상은 수많은 시청자들의 사이트에 퍼 날라졌고 수많은 밈(Meme)으로 복제되어 2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서 인터넷 바다를 떠돌고 있었다. 디지털 기억의 시대, 한번 남겨진 디지털 흔적과 디지털로 기록된 사건은 절대 죽지 않는다. 설사 원본 영상이 지워져도 다른 사람들이 퍼간 동영상은 기억의 블록 체인으로 작동해서 퍼간 사람들의 디지털 공동 기억 속에 영구히 보관되다 사건이 생기면 사건의 주체를 평가하는 자료로 다시 소환된다. 디지털 기억의 치명성은 지울 수 없다는 점이다.
디지털 기억이 인간 기억을 대체하고 디지털 기억에 의해 평판이 평가되고 있음에도 우리는 아직도 명성을 관리하는데 인간의 기억이라는 구시대적 메커니즘에 의존한다. 아주 위험한 일이다.
인간의 뇌는 망각의 축복과 함께 기억의 편집이라는 편리한 도구를 선물 받았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의 기억은 비디오 카메라처럼 녹화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감정과 편향에 따라 끊임없이 편집된다. 과거의 큰 잘못도 시간이 흐르면 “그럴 수 있었지”라는 결론 중심으로 미화되어 편집되거나, 망각의 늪으로 사라지곤 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 기억 이전 시대에 살았던 카네기와 록펠러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이들이 마지막에 정산한 선한 삶을 중심으로 기억한다. 디지털로 데이터가 기록되지 않던 시대에 살았기 때문에 이들에 관한 전기를 자세히 읽지 않는 한 이들이 젊었을 때 얼마나 악독한 기업가였는지를 알 방법이 없다. 이들이 젊었을 때는 노조를 너무 악독하게 탄압해 회사에 폭동까지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개인 인간의 기억은 자기방어 기제가 작동하여 과거의 사건을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현재의 맥락에 맞게 편집한다. 어떤 인물이 과거에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더라도, 시간이 지나 그가 선행을 베풀거나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면 대중의 기억 속에서 과거의 원본 데이터는 희미해진다. 사람들도 과거의 기억은 대부분 잊혀졌기 때문에 논쟁의 여지가 있는 과거의 세부 맥락보다는 “지금은 좋은 사람이다”라는 현재의 결론에 맞춰 과거를 편집한다. 결국 과거에 어떤 행적을 보였던 사람들은 잊게 마련이고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잊을 때 즈음이면 다시 나와서 물의를 일으키는 행동을 반복했다. 인간 기억이 가진 망각 기능과 결론 중심으로 편집되는 기능을 역이용하여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나 정치꾼들도 잠잠해졌다가 슬그머니 다시 등장한다.
디지털 기억의 등장은 과거 인간의 망각과 편집에 의해서 평판이 조회되고 작성되던 평판시장의 메커니즘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디지털 기억은 감정 섞인 편집 없이 영구히 보존된다. 클라우드는 수십 년 전의 기사나 SNS 게시글을 훼손되지 않은 데이터로 저장한다. 특히 사고와 사건의 주체가 되고 이런 것이 반향을 일으켜 여러 사람들이 사건을 퍼 나른 경우 디지털 기억은 영구히 박제된다. 인공지능 분석 기능을 이용하면 이 모든 디지털 기억이 일시에 소환되고 부끄러운 과거조차 ‘검색’ 한 번에 현재로 다시 일시에 소환된다. 지금과 같은 디지털 기억 시대 평판을 결정하는 것은 대중의 일시적인 여론이나 미화된 자서전이 아니다. 유명인이 아니어서 유키피디아에 공개적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아니라도 SNS에 디지털 흔적을 남긴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손상되지 않은 사건에 대한 기억이 소환되고 분석된다. 실제 기업들은 인재 채용 시 SNS에 평판 조회를 실시한다.
디지털 기억 시대는 나의 모든 흔적이 디지털의 CCTV로 채증되고 채증된 결과는 클라우드에 데이터 집합으로 저장되고 분석된다. 여기에 인공지능까지 이용하면 클라우드에 저장된 우리의 과거 행적은 선형적으로 재연되어 나열된다. 이런 과거의 데이터가 현재의 말과 행동에 얼마나 일치하는지 ‘일관성 지수’도 쉽게 계산해낼 수 있다. 과거에는 큰 사건을 저질러도 ‘시간이 약’이었지만, 이제 디지털 기억은 시간이 약인 기대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만들었다.
과거를 잊어주던 인심 좋은 이웃은 사라졌다. 인간 뇌의 장점이자 약점인 ‘망각’과 ‘편집”이 작동하지 않는 디지털 기억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남긴 모든 디지털 흔적은 데이터가 되고, 그 데이터가 곧 나의 평판의 자료가 된다.
초연결 디지털 시대는 극단적 투명성에 기반한 평가가 가능해지는 시대다. 어두운 과거를 씻기 위해 착한 사람으로 코스프레 하는 사람들이 더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다. 한마디로 초연결 디지털 시대는 비밀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다. 디지털 시대 최고의 평판관리 전략은 연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과 화합하며 자신의 땀과 노고로 진실되게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