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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믿음을 죽은 믿음으로 고사 시키는 방법: 제도화의 철장

Jul 4, 2026 ·6분 ·jkyoon · 1
산 믿음을 죽은 믿음으로 고사 시키는 방법
제도화의 철장에 믿음을 가두라!
우리는 젊었을 때는 총기 가득하게 영감을 주던 분이 나이가 들수록 총기가 사라지고 어느 순간에는 일반 상식적 수준에서 사는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내뱉음을 통해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이런 사람은 젊었을 때 나름 큰 성공을 거두어 존경을 받던 인물들인 경우가 많다. 특히 목회자 분들 중에 많다. 청년 시절 개척 교회를 열었다가 부흥을 경험해 모두가 부러워하는 대형 교회의 설립자가 된 분들에게는 보편적 현상이다. 정상인의 눈 높이에서 이들은 달 그림자에 의지해 땅과 구별되지 않는 호수를 땅이라고 생각하고 달리다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어떻하다 땅과 호수를 구별하지 못하는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전락했을까?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런 현상을 막는 방법은 존재할까?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더 나은 세상으로 공진화하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가치인 믿음을 산 믿음으로 지속적으로 공진화 시켜 더 나은 상태를 만들어간다.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믿고 있는 기술은 믿음을 보이는 실상으로 만드는 과정에 작동하는 알고리즘이거나 촉매제 일 뿐이지 세상 공진화의 원인은 아니다. 세상을 공진화 시키는 원천은 믿음이다.
믿음이란 엄청난 가치를 내재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의 실상이다. 세상의 가치가 창출되는 방식은 누구가 이 보이지 않는 믿음의 실상을 밀알로 가져와 당연한 것을 상식으로 삼고 사는 사람들 마음을 규합해 여기에 밀알을 심고 이 밀알이 뿌리를 내리도록 가꾸어 과일나무를 만들고 과일나무의 열매를 취하는 방식이다. 과일은 보이지 않던 믿음의 실상이 보이는 가치의 실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이 과일을 눈으로 확인하고 이 과일이 믿음의 밀알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설명을 듣기 전에는 믿음의 존재에 대해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믿음의 밀알 -> 공유된 마음의 밭 -> 과일나무 혹은 과수원의 생성되는 기본 구조가 세상의 변화하는 구조에 울림을 창출할 수 있게 끊임없이 반복되어 더 나은 과일을 생산하는 차이를 만들어갈 때 믿음은 살아서 공진화된다. 무슨 이유이든 이 믿음이 오랫동안 공진화를 멈춘 상태가 지속되면 믿음은 화석화(Reification)되어 죽어버린다. 믿음이 살아 있다는 것은 믿음이 공진화의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세상이 공진화 하는 것은 미래의 가치를 담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실상인 믿음을 드라이버로 앞에 세워 이끌게 하고 이것을 밀알 삼아 보이지 않는 실상을 실현시키는 사명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이 프로젝트가 성공해서 결과를 산출하는 방식이다. 믿음이 앞에서 끌어주는 끌개이자 드라이버로 작동하고 산출된 성공적 결과가 뒤에서 밀어주는 밀개인 강화제로 작동해 드라이버와 강화제 사이에 창조적 긴장이 유지될 때 믿음도 공진화한다.
우리는 어느 순간 눈에 보이는 결과를 더 많이 더 빨리 만들기 위한 욕심에 취해 앞에서 끌어주는 믿음을 폐기 처분하고 여기에 더 많고 더 큰 결과를 드라이버이자 목표로 삼는 오류를 범한다. 결과를 드라이버로 삼고 다시 결과를 창출하는 순환론 구조가 쇠퇴하고 망하는 모든 실상의 원리다. 순환론의 함정에 빠지면 이런 루틴을 강화하기 위해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상태 위헤 이런 순환론을 실현시키는 많은 세련된 제도를 만든다. 이런 제도가 많아질수록 드라이버로 앞에서 이끌어주던 믿음이 이런 제도의 철장에 갇혀 빠져 나오지 못하고 고사 당하는 불운에 처한다. 처음 결과를 드라이브로 삼고 산출된 결과를 강화제로 삼았을 때 그나마 작동되는 것처럼 보이던 결과도 점점 미미해진다. 여기에 경기가 안 좋아지거나 세상이 변화해서 가동되던 제도에 불확실성이 이입되기 시작하면 제도를 더 강화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믿음이 완전히 제도의 철장에 갇혀서 장사 지내는 상황이 도래한다. 산 믿음이 죽은 믿음으로 전락한 것이다.
제도화의 철장에 대해 처음 사회과학적 이론을 제시한 학자는 사회과학의 아버지 막스 베버(Max Weber)다. 베버는 자본주의와 개신교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때 믿음의 산실 개신교를 드라이버로 보이는 부의 실상인 자본주의를 믿음이 실현되어 결과로 주어지는 강화제로 생각했다. 둘 사이의 창조적 긴장을 유지할 수 있을 때에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한 자본주의가 된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보이는 부에 도취된 사람들이 드라이버 자리에 더 많은 부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제도와 비즈니스 모델을 정교화 하기 시작했다. 제도화된 자본주의의 몸뚱아리가 커질대로 커지고 존재했던 창조적 긴장이 작동하지 않을 때 자본주의는 제도의 철장에 개신교가 제공하던 믿음을 가주어 고사시키고 쇠퇴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본주의의 파트너였던 교회도 같은 운명이다. 믿음을 드라이버로 걸어서 교회가 커지면 커진 교회를 더 키우기 위해 전도라는 명목으로 재정 걱정이 없는 더 큰 교회를 드라이버로 삼고 신도수를 늘리기 위해 혈안이 되고 더 많은 제도를 만들어 결국 믿음을 제도화의 철장에 가두어 장사지낸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형교회와 나머지 교회가 초양극화 되는 현상은 대형교회가 운영하는 제도화 철장의 덫에 결려 작은 교회에서 신도들이 수평 이동하는 현상이다. 결국 제도화의 철장을 극복하지 못하면 순차적으로 대형교회도 망하고 소형교회는 더 빨리 사라진다. 믿음을 살려내야 하는 책무를 가진 교회가 제도화의 철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스스로 앞장서서 믿음을 장사 지내고 있는 형국이다.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한 믿음과 이를 통해 산출한 결과 사이의 선후가 바뀌고 창조적 긴장도 사라진 자리에 각종 제도와 현란한 기술이 등장하고 믿음이 이 제도와 기술에 갇히는 순간 믿음은 생명을 잃고 말라 비틀어지다 결국 고사된다.
사람들의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제도나 비즈니스 모형은 믿음과 결과를 이어주는 알고리즘이지 그 자체가 진리(답)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성공적인 제도가 만들어지면 이 만들어진 제도 때문에 세상이 바뀌고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환경 변화와 합세해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던 제도에 불확실성이 다시 가미된다. 제도가 답이라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이 제도에 제도를 더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지만 결국 믿음은 시시포스가 굴리는 돌로 전락해 믿음이 생명의 씨앗이 아니라 부가된 고통이 된다.
사무엘 울만이 쓴 청춘이라는 시에서 청춘은 살아서 공진화하는 믿음을 상징한다. 공진화하는 믿음은 우리에게는 삶의 나침반이다. 살아 있는 나침반은 믿음을 드라이버로 얻어진 결과를 강화제로 삼는 창조적 긴장관계를 유지해가며 세상과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 호기심으로 떨린다. 호기심이 사라졌다는 것은 믿음이 제도의 철장에 갇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믿음을 장사지내는 장본인으로 전락했음에 대한 경고다.
우리가 어른(Elder)이라고 부르는 분들은 나이가 들어도 믿음을 드라이버로 삼아서 가치를 보이는 것의 실상으로 만들기 위해 호기심으로 떨 수 있는 믿음의 근력을 가지신 분들이다.
청춘 (Youth)
– 사무엘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기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그것은 장미빛 뺨,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한 정신이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누구나 늙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세월은 피부에 주름을 남기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근심, 두려움, 자신감의 상실은 우리들을 대지 위에 굴복시키고 먼지로 돌아가게 한다.
예순이든 열여섯이든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에 대한 동경,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기쁨이 있다. 그대와 나의 가슴 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영감의 메시지를 받는 한 당신은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다.
안테나가 내려지고, 당신의 정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며 비탄의 얼음 속에 갇힐 때, 당신은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된다. 그러나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희망의 물결을 잡는 한, 당신은 여든 살이어도 죽기에 아까운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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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