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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나에게 친절하기

Jul 4, 2026 ·7분 ·jkyoon · 1
왜 우리는 아픈 나에게 친절하지 못할까?
자기긍휼의 근력이 소실되다.
‘내로남불’은 정치가들 사이에만 유행하는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삶의 정치학에도 발견되는 보편적 정치 행위다. 내노남불은 자신의 아픔을 직시하지 못한 사람이 선택한 방어기제다. 내노남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쉽게 빠지는 정치 행위다.
내노남불이라는 정치행위가 유행하는 원인을 최초로 해부하기 시작한 사람이 소크라테스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델포이 신전의 말을 인용해서 철학을 시작한 이유도 결국 내노남불이라는 보편적 정치행위가 자신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자신 때문에 생긴 문제라고 보았다. 자신과 세계의 사이의 분명한 경계를 인지하지 못한 사람이 정치적인 문제 뿐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와 갈등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자신과 세상의 경계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분명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와 아픔이 생기면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기 보다는 남에게 투사해서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 시도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의 경계)을 알라”라는 정언명령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해 철학의 주제로 삼은 사람이 푸코와 쇼펜하우어다.
푸코는 자신과 세상 사이의 경계를 설정하지 못해서 길을 잃고 헤매고 기진맥진해진 사람들이 치유받는 방법은 자신의 경계를 정확하게 설정하는 것에서 찾았다. 푸코는 자아의 경계를 설정해 확보된 안정된 경계 안에서 상처 받고 기진맥진한 “자신을 돌보라”는 자기돌봄을 통한 자기근력을 회복하는 것을 소크라테스 철학이 지향했던 방향이었음 밝혀 주체 철학을 정립했다. 푸코의 주체철학은 ‘자기 돌봄(Care of the self)’을 단순한 이기주의가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윤리적 토대로 보았다.
푸코가 소크라테스를 계승해 자기돌봄을 통한 내면의 근력에 대해 이야기 했던 반면 쇼펜하우어는 소크라테스와는 독립적으로 세상에 모든 갈등과 비극은 자아의 결핍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결핍을 자신의 밖으로 던지는 투사행위에서 발생한다고 전제했다. 내노남불이라는 투사행위가 생기는 것은 자신의 결핍을 남에게 투사해서 쉽게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쇼팬하우어는 내노남불을 일삼는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을 보지 못하고 같은 문제를 가진 남들에 대한 공격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지만 이런 시도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문제를 키운다는 점을 설명한다. 자신의 시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했던 시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에게 사랑 받는 며느리를 견디지 못한다.
푸코는 자신과 세상 사이의 건강한 경계를 설정하지 못한 사람들은 진정한 주인의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주체철학을 설정했고, 쇼펜하우어는 자신과 외면의 경계를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난투극과 비극에 더 주목한 철학을 펼쳤다. 이들의 공통점은 소크라테스의 정언명령 네 자신과 세상 사이의 경계를 설정하지 못해서 심지어 자기 아픔조차 어디서 생겼는지 모르는 것을 모르는 주체의 문제를 다룬다.
자신의 경계를 모르는 것의 문제는 심리학의 오래된 주제였다.
아들러(Adler)는 자신 내면의 경계와 외면의 경계가 오랫동안 혼돈을 일으킨 현상을 꼬임 혹은 컴플랙스(Complex)이라고 정의하고 ‘열등감’의 기원을 이 꼬임에서 찾는다. 컴플랙스는 내면의 에너지와 외면으로 뻗어 나가는 에너지가 꼬여버린 상태, 즉 자신의 아픔을 돌보지 못해 뒤엉킨 매듭이 되어버린 상태다. 이 매듭을 풀지 못한 사람은 결국 ‘내로남불’의 굴레에 갇혀 타인을 공격하며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려 애쓴다.
매슬로우(Maslow)는 인간의 욕구 5단계를 통해 결핍의 해결과 자아실현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매슬로우의 오류는 모든 것을 결핍된 자아의 문제를 자아의 입장에서 공격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으로 자아실현을 설정했다는 문제를 가진다. 진정한 완성은 나와 타인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나의 문제는 나의 결핍을 돌봄에 의해서 해결해야 하고 이런 나의 결핍을 해결했을 때 타인의 결핍의 문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관점을 놓친 심리학을 전개했다. 나의 결핍을 넘어 타아실현을 도와줄 수 있는 균형된 근력을 마련할 때 결국 우리는 온전하게 자아실현을 넘어 온전하게 자유로와 질 수 있음을 놓쳤다. 자아를 제대로 사랑하는 힘이 타인의 고통을 사랑하는 더 큰 힘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놓쳤다는 점에서 매슬로우는 반쪽짜리 주체론이다.
나치의 엄혹한 수용소 생활을 이겨내고 의미의 철학인 로고 테라피를 정립한 빅터 프랭클은 소크라테스가 언급한 자아와 세상의 경계의 부재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통찰력을 제시한 심리철학자다. 프랭클은 나치의 엄혹한 압제를 견디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앞으로 깊이 뛰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자아의 경계와 이를 위한 근력이 없는 사람들이었음을 밝혔다. 자아의 경계가 있는 사람들은 외재적 세상에서 나치가 공격해 들어와도 내면의 경계와 근력이 있는 사람들은 달리 반응했다는 것을 알았다. 설사 아무리 강한 공격이 와도 내면의 주인은 자신이고 자신을 쓰러트리는 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치의 탄압에도 살아 남은 사람들은 내면의 경계 안에서 자신의 근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살아 남은 사람들은 경계가 만든 내면의 공간과 이 공간에서 훈련한 내면의 근력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이런 내면의 버퍼 공간에서 안으로 깊이 뛰기 할 수 있는 근력이 있는 사람들은 똑 같은 압제에도 살아남았다.
가장 건강한 주체의 근력을 가진 사람들은 안으로 깊이 뛰기 할 수 있는 근력과 밖으로 멀리 뛰기 할 수 있는 근력을 가진 주체로서 자기근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 외부의 세상과 자신의 내부 세상 사이의 경계가 어디에서 설정되어 있는지를 이해하고 이 경계관리에 능수능란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경계를 설정하고 이 금에서 내면으로의 깊이 뛰기를 통해 밖으로도 멀리 뛰기 할 수 있는 근력을 훈련한 사람들이다.
철학이나 심리학에서 자신과 외부의 경계를 설정하고 안으로 깊이 뛰기 할 수 있는 근력은 자기긍휼(Self Compassion)이라고 부른다. 자기긍휼은 부족한 자신을 관대하게 보아주는 사치가 아니라, 고통받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용기입니다. 안으로 깊이 뛰기 할 수 있는 근력은 자신의 내면 깊숙한 상처와 결핍을 직면하고 보듬고 치유하고 자신을 내면의 온전한 주체로 세우는 능력이다. 자기긍휼이라는 내면의 근력을 가진 사람들만이 자신 경계 밖의 사람들에게 보이는 비슷한 고통을 찾아서 투사하기보다는 이들의 고통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여 이들과 동역자가 되어 고통을 해결하려는 길을 뚫는다. 이처럼 밖으로 멀리 뛰기 할 수 있는 긍휼(Compassion)의 근력은 안으로 깊이 뛰기 하고 아픈 자신을 돌보고 치유할 수 있는 자기긍휼(Self Compassion)에서 생긴다. 밖으로 멀리 뛰기할 수 있는 근력이란 내면의 안정을 바탕으로 타인과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뻗치는 능력이다.
안으로 깊이 뛰는 근력과 밖으로 멀리 뛸 수 있는 두 가지 근력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자기규율(Self-Discipline)이라는 근력이 형성해서 자기 삶의 온전한 주체가 된다. 자신의 내면의 아픔을 직접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동양에서는 오래 전부터 스스로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 세우고, 나아가 타인의 주체성 또한 존중할 수 있음을 설파해왔다.
자신의 유전자 복권으로 받은 외모, 재능, 머리 등등에 대한 사랑의 편애를 넘어서서 자신의 아픔조차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긍휼로 사랑하는 자기긍휼이 온전한 주체로의 근력이 만들어지는 원천이다. 자기긍휼을 통해 내면의 근력을 기른 사람은 윤리성이나 도덕을 넘어 이제 자신의 고통을 돌보던 따뜻한 시선을 타인에게로 돌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긍휼’의 전환이며, 자아실현을 넘어선 ‘타아(他我)실현’을 통해 자아실현을 가능하게 만드는 지점이다. 내가 아파봤기에 남의 아픔을 알고, 내가 나를 돌봤기에 남을 돌볼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내로남불’이 유행어가 된 이유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자신 내면의 결핍과 아픔을 숨기고 자신의 문제를 남에게 성공적으로 투사하는 것을 정치로 알고 살았다는 뜻이다.
이런 내노남불 늪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역설적이게도 아픈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고 따뜻해지는 것이다.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사람은 타인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
경계에 대한 이해가 인간으로서의 삶의 시작점이다. 경계가 필요 없는 신과 달리 인간은 오직 경계 안에서만 온전하게 주인으로 살 수 있다. 내면와 외면의 경계가 설정될 때 우리는 비로서 아픈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아픈 자신을 돌보는 자기긍휼의 행위를 시작해서 주체로 일어설 수 있는 근력을 만든다. 내면의 경계와 외면의 경계를 분별해 안으로 깊이 뛰기 할 수 있는 자기근력을 획득한 사람들만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칭송을 받는다.
경계에 대한 이해와 자기긍휼은 공공선과 민주시민이 되는 주체철학의 출발점이다. 모든 것은 내면과 외면을 제대로 분별하는 경계관리에서 시작한다. 경계를 분명히 아는 사람들만 내면으로도 깊이 뛰기 할 수 있는 출발점을 가진다. 내면으로 깊이 뛸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을 향해 멀리 뛸 수 있다.
나는 세상과 나와의 경계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내면에는 들려오는 고통의 소리와 외면의 고통의 소리를 분별할 수 있을까? 내면의 고통을 스스로를 보듬어줄 근력이 있을까? 내노남불하지 않고 내 문제를 내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근력이 있을까?
안으로 깊이 뛰기 하는 근력이 우리가 밖으로 멀리 뛰기 할 수 있는 근력의 원천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진정한 삶의 주인으로, 그리고 타인과 함께 걷는 성숙한 시민으로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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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