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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지속가능할까?

Jul 4, 2026 ·9분 ·jkyoon · 1
질문을 잃어버린 대한민국
지속가능할까?
대한민국 강의실과 회의실의 공통점은 침묵이다. 아마도 대부분 대학에서 교수가 “질문 있습니까?”라고 물을 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정적뿐이다. 회의실 상황은 더 암울하다.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 “질문이 있나요?” 라고 묻는 것은 질문하지 말고 빨리 회의를 끝나게 도와 달라는 암묵적 메시지다.
한국인이 질문을 주저하는 표면적 이유는 질문을 자신이 제시한 답에 대해 의구심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인격과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 때문이다. 질문을 상대의 인격을 공격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문제지만 한층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핵심은 더 깊은 곳에 있다. 한국인들은 정답은 오직 하나 뿐이라는 생각과 이 하나 뿐인 정답을 찾아내고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을 익히는 것을 제대로 된 공부로 믿는 잘못된 생각이 사태의 발단이다.
한국인에게 공부란 ‘이미 존재하는 답을 암기하고 복기하는 행위’에 국한되어 있다. 답이 없는 상황에서 답을 만들어가는 더 높은 차원의 공부는 자신과는 무관한 타고난 창의적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공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한국이 지금까지 이런 공부를 통해 얻은 두 가지 성공 체험 때문이다.
하나는 국가 전체와 관련된 문제다. 후발주자로 압축성장을 달성한 성공체험이 공부를 실수를 반복해가며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시행착오 과정을 거쳐 만든 남들의 답을 베껴서 실행하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을 굳혔다. 실제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답을 빌려와 답으로 암기해 초단기적 압축성장을 달성했다. 후발주자로서 선진국이 만든 답으로 국가적 성공 신화를 만들었다면 개인들도 답 있는 공부를 통한 계층상승이라는 성공체험을 경험했다. 중산층에 진입하기 위한 계단인 전문가가 육성되는 고등교육 방식도 오직 답이 하나 있는 것만을 정답으로 기억하고 이 정답을 찾아내는 공부에 대한 사회적 신화를 만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중산층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답 있는 공부를 평가하는 일련의 초중고 시험과 수능 시험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 또한 그냥 중산층이 아니라 중산층의 특수 상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전문가 자격증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 ‘공부 잘한다는 것은 법, 의학, 회계 등 방대한 전문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필요할 때 꺼내 높은 점수에 도달하는 능력을 보여야 한다. 한국에서 전문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정답을 최고로 잘 알고 있는 최고의 모범생 집단이다.
이들 특수 모범생들이 특정학교 특정학과 출신으로 모여 지금도 30년 전에 본 수능에서 몇 개 틀렸다는 것을 가지고 자신들 사이에 서열을 논한다는 곳이 대한민국의 법조계다. 이들이 모여 검찰 공화국도 만들고 달 그림자에 취해 호수를 땅으로 알고 그 위를 달리는 무사가 되어 내란도 일으키고 시대적 맥락과는 동떨어진 비현실적 판결도 일삼고 있다. 법조계 엘리트 판사들이 수구세력의 대명사로 거론되는 이유도 이들이 공부와 정답에 대한 잘못된 신념 때문이다. 이들은 예전 공부로는 공부 좀 한 부류인지 모르지만 지금 돌아가는 세상에 대한 공부는 어린이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지금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줘도 되는지는 어린이에게 총을 줘도 되는지의 문제와 비슷한 이슈가 되었다.
이들이 답 있는 공부를 통해 계층의 꼭데기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려운 전문적 지식을 외울 수 있는 사람에게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허락하는 지식정보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시절 운을 타고난 이들은 지식정보 시대의 특성을 잘 활용해 ‘미래는 변하지 않을 것’이며, ‘내가 배운 답이 영원히 정답으로 유통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인공지능을 통해 필요한 지식을 누구나가 쉽게 찾아서 소비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의 민주화 시대다. 실제 지금도 우리가 애써 외운 정답의 ‘유통기한’은 유례 없이 짧아지고 있다. 지금은 민주화된 지식과 정보를 통해 혁신과 변화가 상수로 전환된 된 초뷰카(Hyper Vuca) 시대이다. 설상가상으로 추론형 인공지능(AI)이 에이전트 인공 지능으로 전환되고 있는 지금은 답을 암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공부의 존재 이유가 사라졌다. 인공지능이 추동하는 초뷰카시대는 손안의 휴대폰이 전문가보다 더 정확한 답을 내놓는 시대이다. 답을 복기해 정답을 찾아내는 능력은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라 부채로 전환되고 있다.
답이 존재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무료로 제공하고 답이 없어서 모두가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답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미래의 계층구조를 급속하게 재편하고 있다. 또한 변화한 상황에 맞춰 새로운 답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질문도 수준이 있다. 가장 높은 수준의 질문은 Why에 기반한 질문이다. 그 다음 수준의 질문은 How에 관한 질문이고, 가장 낮은 수준의 질문은 What에 관한 질문이다.
Why (왜?): “무엇 때문에 기존의 답이 맞지 않는가?” 원인을 파악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질문이다.
How (어떻게?): “찾아낸 원인을 바탕으로 어떻게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인가?” 방법론적 모색이다.
What (무엇을?):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답의 실체는 무엇인가?” 결과에 대한 정의다.
여태까지 질문에 대해 훈련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인공지능에게 질문하는 것은 또 다시 답을 가르쳐 달라는 What에 대한 질문이다. 왜 질문하는 지에 대한 맥락을 모르는 인공지능은 이 What에 대해 그냥 평균적 답을 가르쳐준다. What에서 시작하는 질문은 사고력을 잡아먹는 인지적 하역(Cognitive Offloading)을 심화시킨다. 인지적 하역이 많아질수록 인간이 독자적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은 사라지고 대신 인공지능에 대한 의존성은 심화된다. What을 통해 제공 받는 답도 제대로 된 답이 아니다. 지금 평균을 벗어나서 요구되는 상황 때문에 답을 가르쳐 달라고 주문했는데 다시 틀린 답을 맞는 답처럼 포장해서 전달해준다. 이런 수준의 답을 답으로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헛똑똑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제대로 된 질문은 What이 아니라 Why에서 시작된다. 왜 내가 아는 모델이나 답이 답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인지를 묻는 Why에 대한 질문을 하다보면 문제되는 상황 자체가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각성한다. Why에 대한 질문은 달라진 상황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정의로 이끈다. 문제를 보는 가정이 달라지면 이 가정 속에서 지금 문제를 일으킨 제대로 된 원인이 무엇인 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Why에 대한 질문으로 문제가 되는 원인을 찾았을 때 원인에 개입해서 바람직한 답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How에 대한 질문이 담당한다. How에 대한 질문은 문제 상황에 대해 정의가 제대로 되어 있을 경우에만 유효하다. 상황정의가 안된 사람들은 집앞에서 열쇠를 잃어버리고 집 옆이 가로등 밑에서 열쇠를 찾는다. 이유는 가로등 밑에 밝다는 이유 때문이다.
How는 모델을 구성하는 복잡한 연쇄적 인과고리를 통과해 최적화된 답안을 찾아낸다. 에이전트 인공지능이 무서운 점은 이 How 질문에 특화된 전문적 인공지능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목표만 설정해주면 최적화된 How의 질문을 스스로 조직해가며 최적화된 답을 찾아낸다. 인공지능을 말에 비유해볼 때 인공지능이라는 말에 올라탈 수 있는 전문가란 인공지능이 How를 통해 찾아낸 알고리즘을 복기해낼 수준에 있기도 하고 이것의 효과성을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맥락지식이 있다는 것은 이런 How 질문의 수준에 도달한 것을 의미한다.
문제에 대한 정확한 상황정의인 Why에서 시작해 How의 질문을 통해 최적화된 알고리즘을 찾아낸다면 What은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What에 대한 질문은 지금 상황에 가장 맞게 새롭게 구성된 답(What)을 의미한다. 인공지능에 대한 총체적 맥락지능을 가진 사람들은 이렇게 답이 구성되었어도 이게 정말 맞는 답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Why, How, What이 정렬되었는지를 질문하는 몇 차례의 순환루프 과정을 반복하는 Prototyping이라는 추론과정을 통해 후 답을 구성한다.
Why-> How -> What -> Why로 이어지는 프로토타이핑을 반복하는 이유는 이 새로운 답이 지금 우리가 답을 찾지 못해 겪는 고통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해줄 수 있는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하기 위함이다. 새로운 답을 찾는 모든 과정은 고통을 제대로 인식하고 직시할 수 있는 용기의 문제다. 자신이 나서서 이 고통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이유가 기업이나 개인들의 존재목적이다. 이 존재목적은 상황에 바뀌면 항상 Why라는 질문을 던져 자신의 가지고 있는 가정에 대한 믿음의 유효성을 검증한다.
인공지능이 표준화된 시대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것은 이렇게 구성된 답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인적 자원과 재무 자원을 모의기 위해 이런 자원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게 앞으로의 답이 될 것임을 사명과 비전으로 설득해 필요한 이들을 모으고 이들과의 협업으로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답을 실제 답으로 만드는 사람들이다.
유대인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지만 이들에게 배울 점은 한번 만들어진 답이 오랫동안 바뀌지 않아도 되는 구석기 시대에도 지금 답이 만들어지면 그 답을 기반으로 새로운 답을 구성해내기 위한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의 경전인 탈무드는 지금의 알려진 답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제대로 질문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다. 이들은 성경 창세기에서만 60차례 이상의 질문을 던진다. 창세기는 누가 조상이라는 답을 일방적으로 알려주려고 조악하게 써진 탄생설화와는 차원이 다르다. 유대인은 변화가 상수가 아닌 시대에도 지금의 답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의 답을 질문을 던졌다. 유대인들이 경험한 디아스포라도 질문을 통해 새로운 답을 구성하는 훈련에 도움을 주었다. 이주를 해서 새로운 상황에 도달하면 자신이 가진 답이 답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지고 상황에 맞게 답을 다시 구성해 진화시키는 능력을 훈련했다. 이런 질문에 대한 혹독한 훈련이 노벨상 수상자들 사이에 유대인 마피아가 만들어진 이유다.
진성리더십(Authentic leadership)은 변화를 전제로한 리더십 모형이다. 진성리더들에게는 특정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 만든 답을 영구한 답이라고 생각해 특정 리더십 스타일에 고착되는 것을 넘어서는 훈련을 요구한다. 답이란 상황이 바뀌었을 때 자신들이 가진 존재목적이라는 밀알을 상황에 맞게 종묘해 내는 훈련에서 시작한다. 자신이 상황에 맞는 존재목적이라는 씨앗을 종묘할 수 있는지가 진성리더의 충분조건이라면 이 씨앗을 상황에 맞춰 뿌리를 내리게 해 적절한 스타일을 정하는 것이 진성리더십의 필요조건이다. 진성리더는 항상 자신의 씨앗이 시대라는 토양에 맞는지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진성리더는 맞으면 왜 맞는지 틀리면 왜 틀리는지에 Why에 대한 질문의 끊을 놓치 않는 리더들이다.
지금 시대에는 정답을 맞히는 기계가 아닌, 세상의 변화에 호기심을 갖고 왜?’라고 물을 줄 아는 진성리더(Authentic Leader)들이 요구된다. 에이전트 인공지능이 How에 대한 질문에 특화되어 있다면 인간이 스스로 답을 구성해낼 수 있는 힘은 오직 Why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통해서만 길러지기 때문이다. 지금 답이 왜 맞고 왜 틀리는지 Why에 대한 질문이 없으면 배움도 없고, 배움이 없으면 변화하는 세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Why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못해 비현실적으로 극우화된 판사들을 반면교사로 삼아 누구나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자신이 가진 답에 대해 Why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Why에 대한 질문이 잘못되면 How에 대한 질문도 잘못된 질문이고 여기서 얻어진 답안도 비현실적 답안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진성리더들이 사회 각각에 세워질 때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후세에게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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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