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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 없는 광기와 실행 없는 독백 바이든 vs 트럼프
성찰 없는 광기와 실행 없는 독백
바이든 vs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와 조 바이든은 두 극단적 리더십이 한 국가를 얼마나 극단적 무질서로 몰아넣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리더십은 존재론적 사명을 인식론적 성찰을 통해 검증하고, 이를 실천론적으로 구현해내는 통합의 과정이다. 트럼프와 바이든의 리더십은 성찰이 거세된 ‘눈먼 실행’과 실행이 실종된 ‘공허한 독백’을 상징한다.
트럼프는 전형적인 ‘실행의 화신’처럼 보인다. 트럼프는 복잡한 다자간 합의나 보편적 가치에 대한 인식론적 고민을 생략한다. 대신 ‘일대일 협상’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실무적인 도구를 선택한다. 관세 정책과 외교 전략은 각 상대를 압박해 자신에게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는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에 도달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내쉬 균형이란 상대의 전략이 정해진 상태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의미한다. 트럼프는 상대국을 위협해 단기적인 양보를 받아냄으로써 “미국이 이겼다”는 착각을 심어준다. 하지만 이는 단기적 관점에 방점을 둔 게임이론의 치명적인 함정이다. 각자가 자기 이익만을 위해 도달한 내쉬 균형은 장기적 반복게임에서 전체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파레토 최적(Pareto Optimal)과는 거리가 멀다.
세계 경제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무시한 채 미국의 단기적 승리에만 집착하는 트럼프 리더십은 결국 국제 공동체의 상호 신뢰라는 인프라를 파괴한다. 성찰 없는 실행이 반복될수록 미국은 세계와 합치되지 못하고 고립되며,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의 도덕적·경제적 몰락을 가져오는 ‘눈먼 광기’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트럼프와 대조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은 인식론적 성찰의 과잉이 가져온 행동의 마비를 보여준다. 민주주의, 연대, 가치 중심의 외교를 강조하며 끊임없이 ‘우리가 가야 할 올바른 길’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바이든의 목소리는 종종 현장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공허한 독백’의 상징이었다. 리더십은 성찰을 통해 얻은 진리를 실천으로 증명해낼 때 비로소 완성된다. 바이든의 리더십은 복잡한 절차와 신중함 속에 갇혀, 위기의 순간에 필요한 ‘급진적 변화’의 동력을 상실하곤 한다. 실행력이 담보되지 않은 도덕적 선언은 대중에게 무력감만을 안겨줄 뿐이다.
이런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사실 대한민국의 두 전대통령 중 윤석열은 트럼프의 판박이였고 문재인은 바이든의 냄새를 짖게 풍겼다. 미국보다 한국이 먼저 극단적 리더십이 가져온 비생산성을 먼저 경험한 나라다.
본인은 진성리더의 ‘급진거북이’ 전략을 과잉성찰과 과잉행동으로 대변되는 두 리더십의 결함을 치유할 대안으로 제시한다. 진성리더십은 리더십의 존재론적 본질을 공공선에 어떤 가치충격을 실현할 것인지에 대한 약속인 존재목적에서 찾는다. 리더가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는 방식은 약속한 변화를 급진거북이 전략으로 실현해냄을 통해서다.
리더는 비전에 대한 믿음에서는 강력한 목적의식으로 무장한 단단한 뿌리(Radical)를 구축한 모습을 보이고 이 목적에 대한 약속을 실천하는 전략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당장 할 수 있는 것, 가진 것만 가지고 시작할 수 있는 울타리를 만들어내 이 울타리 안에서 거북이처럼 사부작 사부작 실천한다. 급진적 거북이는 이념에 대한 십자군 전쟁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울타리 안에 자신이 약속한 존재목적의 밀알을 심고 뿌리를 내리게 하고 과일나무로 가꾸어 열매를 만들어내 열매를 통해 승부수를 던진다. 열매를 지렛대로 삼아 울타리를 확장해가며 변화를 확장시켜 마침내 더 높고 더 평평한 곳에 큰 과수원을 만들어낸다.
진성리더들에게 최고의 적은 둘 중 하나를 최적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리더는 내쉬 균형의 단기적 승리에 취해 파레토 최적이라는 공동체의 번영을 포기해서도 안 되며, 고상한 담론에 취해 변화를 뒤로 미뤄서도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자신의 존재 이유(존재론)를 명확히 하고, 이를 끊임없이 검증(인식론)하며, 한 걸음씩 세상을 바꾸는(실천론) 진성리더다. 성찰과 실행이 만나는 그 지점에만 조직과 국가의 지속 가능한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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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미국에 있는 동료들에게 미국의 상황에 대해 문의하면 가장 큰 변수는 빅테크 기업들이 한결같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 가장 큰 변수라고 지적한다. 인공지능 혁명을 앞세운 피터 틸, 엔론 머스크 같은 사람들이 주창하는 논리는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적 보수논리다. 하지만 이들 CEO에게 이론적 기반을 제시했던 사람들은 진보에 더 가깝고 이들은 효율성보다는 효과성을 더 강조한다. 일반대중의 입장에서는 지금 당장의 이득을 보여주는 효율성이 더 매력적이다. 인공지능이 표준으로 뿌리 내리는 상황에서 진보보다는 보수가 더 유리한 입장이다. 이들을 등에 업은 트럼프의 정치적 ADHD(주의력 결핍 행동주의) 방식이 영향력이 있게 보일 수 밖에 없다. 11월에 중간선거가 트럼프식의 자국 중심적 행동주의가 막을 내리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