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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온전한 독립국가인가? 3.1절에 물어야 할 질문들
대한민국은 온전한 독립국가인가?
3.1절에 물어야 할 질문들
매년 돌아오는 3.1절은 대한민국의 독립을 기념하는 날이다. 하지만 삼일절에 우리가 정작 잊고 있던 핵심 질문이 “대한민국은 정말 온전한 독립국가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힘 있는 나라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뉴라이트가 여전히 준동하고, 정치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성조기 부대가 거리를 장악하는 2026년 3월 1일의 대한민국은 정말 온전한 독립국가인가 하는 질문이다. 가슴 아픈 질문이지만 대한민국을 물려받을 후세를 위해서는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다.
완전한 독립에 대한 물음은 대한민국의 문지기를 자처했던 김구 선생이 이미 《나의 소원》에서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완전한 독립을 이렇게 정의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준다.
인류의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다하기에 넉넉하고, 국토의 위치와 기타의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1차·2차 세계대전을 치른 인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의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구성원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가족을, 이웃을,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 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다. 힘드는 일은 내가 앞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네가 좋아하던 인후지덕이란 것이다.
이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산에는 삼림이 무성하고 들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며, 촌락과 도시는 깨끗하고 풍성하고 화평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동포, 즉 대한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는 항상 화기가 있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를 발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불행하려 하여도 불행할 수 없고, 망하려 하여도 망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자손을 이러한 나라에 남기고 가면 얼마나 만족하겠는가. 옛날 한타의 기자가 우리나라를 사모하여 왔고, 공자께서도 우리 민족이 사는 데 오고 싶다 하셨으며, 우리 민족을 인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였으니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는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나도 일찍이 황해도에서 교육에 종사하였거니와 내가 교육에서 바라던 것이 이것이었다. 내 나이 이제 70이 넘었으니 직접 국민교육에 종사할 시일이 넉넉지 못하거니와, 나는 천하의 교육자와 남녀 학도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 먹기를 바라지 아니할 수 없다.”
한류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을 인용하며 대한민국이 이미 백범 선생이 꿈꾼 문화적 독립국가로 나아가고 있다고 흥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류의 선주주자 하이브와 BTS를 만든 방시혁이 보여준 신자유주의 탐욕은 대한민국의 한류가 얼마나 철학이 없는 한류인지를 증거한다. BTS 팬들은 방시혁이 이끄는 K Pop에서 K를 떼라고 항의한다.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한류 바람을 탄 것은 철학이 아니라 기적적 압축성장을 달성한 국가라는 사실을 토대로 디지털 미디어가 만든 후광효과일 뿐이다. 방시혁의 스토리가 만방에 알려지고 후광의 거품도 꺼지는 순간 한류도 운명을 달리할 것이다. 백범 선생은 이런 문화적 신기루와 철학에 뿌리를 둔 진정한 문화국가를 날카롭게 구별한다.
“무릇 한 나라가 서서 한 민족이 국민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기초가 되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국민의 사상이 통일되지 못하여 더러는 이 나라의 철학에 쏠리고 더러는 저 나라의 철학에 끌리어, 사상의 독립·정신의 독립을 유지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하며 저희끼리는 추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현상으로 보면 더러는 로크의 철학을 믿으니 이들은 워싱턴을 서울로 옮기자는 자들이요, 또 더러는 마르크스·레닌·스탈린의 철학을 믿으니 이들은 모스크바를 우리의 서울로 삼자는 사람들이다.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우리의 서울은 될 수 없는 것이요, 또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니, 만일 그렇게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예전에 도쿄를 우리 서울로 하자던 자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하여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 김구, 《백범일지》
겉으로 보기에는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성조기와 일장기를 들고 나서는 태극기 부대를 예견하고 경고하는 말로 들리지만, 더 깊은 의미는 모든 힘 있고 유행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권위주의에 물든 우리의 허위의식을 꾸짖는 말이다.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 세울 힘도 없는데 힘 있는 것을 맹목적으로 추종한다면 우리도 뉴라이트의 추종자들이고 유사 태극기부대원이다.
김구 선생과 같은 문제의식은 신채호 선생의 글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利害)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主義)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 신채호, 「낭객의 신년만필」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은 이 나라를 플랫폼 삼아 모든 사람이 홍익인간을 실천하는 공동의 주인으로 나서서 함께 생생지락(生生之樂)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는 각자도생을 외치며 남을 해치고 이간질해 이득을 취하는 진화론적 인간도 아니고, 힘 있는 것을 모두 진리로 믿고 추종하는 뉴라이트도 아니다. 우리는 경쟁에 이긴 사람들만 진리를 증명한 사람으로 치켜세우는 신자유주의적 인간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공공의 존재목적은 홍익인간이다. 이 정신이 고조선을 일으켜 세웠고, 한글을 창제하게 했으며, 동학 농민을 봉기하게 했고, 이순신을 통해 임진왜란의 왜구를 물리쳤으며, 3.1운동과 상하이 임시정부를 탄생시켰고, 새마을운동으로 전 국민이 미래를 위해 땀 흘리게 했으며, 금 모으기로 IMF를 극복하며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온몸으로 각성시켰다.
홍익인간과 함께 대한민국 저력의 또 다른 한 축은 한(恨)이다. 한은 아픔을 숨기거나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면하여, 함께 아파함으로써 그 아픔을 집단적으로 풀어내고 집단적 신바람을 일으키는 원동력이다. 한은 대한민국을 어느 나라보다 역동적인 나라로 만들어 온 에너지다. 대한(大韓) + 민국(民國)이라는 국호에도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을 씨줄로, 같은 민족으로서 함께 아파하는 한을 날줄로 삼아, 대한민국만의 고유한 태피스트리를 짜나가는 주체가 바로 온전한 독립국가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 태피스트리를 미래의 지평으로 삼아 모든 국민이 공동의 주인이 되어 존재 이유가 분명한 위대한 선진 시민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선언이다.
우리가 한눈을 파는 사이, 이 자랑스러운 태피스트리 곳곳에 힘을 추종하는 뉴라이트가 뚫어 놓은 카르텔 토굴이 생겨났고, 나라 전체가 그 토굴에 빠져 비틀거렸다. 오랫동안 홍익인간이라는 북극성을 잃고 방심하며 살다가, 철학이 아니라 강자의 논리를 진리로 따르는 뉴라이트를 등에 업은 윤석열 세력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탈로하는 삶을 살았다.
문화적 정체성이 있다는 것은, 어제 몸과 마음과 정신의 주체로 살았던 내가 오늘도 같은 나이고 내일도 같은 나라는 동일성의 증거다. 정체성은 분절된 몸·마음·정신을 하나로 정렬시켜 내가 온전한 주체임을 증거한다. 로크의 자유를 외치다가, 사회주의가 풍미하면 마르크스 철학자가 되고, 일제가 강성하자 친일파가 되었다가, 미국이 힘을 쓰면 친미주의자가 되는 것은 철학의 부재가 빚어낸 비극이다. 비극의 끝은 정체성 상실이다. 정체성 상실은 약한 치매 환자처럼 가끔 자신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맨탈붕괴를 일상으로 경험하는 고통을 가져다준다.
20026년 3월 1일에는 AI 광풍에 휩싸여 모두가 AI주의자로 변모한 것도 철학의 부재가 가져온 비극이다. AI 주권국이 된다는 것은 AI에 올라탈 수 있는 고유 철학을 가진 기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대한민국 누구도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은 AI 때문에 다시 길을 잃은 AI 노예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
온전한 정체성이 있다면, 상황에 의해 비록 몸이 제압되어도 마음이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다. 설사 마음까지 쓰러지면 정신이 일어서 마음과 몸을 함께 일으켜 세운다. 온전한 자신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자신이 정복 불가능한 주체적 존재(Invincible Being)임을 증거한다.
오늘은 온전한 독립을 염원하는 온 국민의 3.1절이지만 나의 온전한 주체로서의 독립을 물어야 할 날이기도 하다.
오늘만이라도 정체성이 있는 온전한 자신이 되어보자.
오늘은 내 정체성이 열망하는 대로, 나답게 살아보자.
온전한 주체의 부활을 경험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