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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음이 실존이 된 기체 시대의 리더십: 진성리더라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Jul 4, 2026 ·7분 ·jkyoon · 1
길 잃음이 실존이 된 기체 시대의 리더십:
진성리더라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본인은 현재 2015년에 출간된 <진성리더십: 21세기 리더십의 새로운 표준>를 지금 시대적 맥락을 반영해가며 대대적으로 개정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개정판에서는 리더십이 다뤄야 할 상황적 맥락을 인공지능이 추동하는 디지털 혁명이 가져온 변화를 묘사하기 위해 초뷰카(Hyper VUCA) 시대로 잡았다. 초뷰카는 변동성·불확실성·복잡성·모호성이 증폭되는 속도가 인간의 관리 능력을 초과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VUCA의 시대에는 혼돈 뒤에 뉴노멀이 찾아왔지만, 초뷰카의 시대에서 뉴노멀은 신기루로 전락한다. 신기루 사막 속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길을 잃는다. 누구든 진실된 리더라면 이런 신기루 속에서도 오아시스를 구성해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야 한다. 진성리더라고 한다면 사회적 헌신을 동원해 오아시스에 사람을 모으고 인간이 발 딛고 설 수 있는 뉴노멀을 제시해 새로운 지속가능한 세상에 대한 구성주의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시대는 VUCA에서 초뷰카로 급속하게 전환되고 있다.
VUCA라는 개념은 냉전 종식의 산물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미·소 양극 체제가 지탱하던 국제질서는 순식간에 N개의 플레이어가 경쟁하는 다극 체제로 재편되었다. 이 혼돈의 시대를 설명하기 위해 미 육군대학(U.S. Army War College)이 처음 사용한 VUCA는 이후 비즈니스와 사회 변화를 읽는 보편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
VUCA를 구성하는 네 단어는 각각 다른 차원의 불안정성을 가리킨다. 변동성(Volatility)은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 일반인이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을, 불확실성(Uncertainty)은 과거의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을 의미한다. 복잡성(Complexity)은 하나의 결과에 수많은 원인이 얽혀 인과관계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를, 모호성(Ambiguity)은 현상의 의미가 불분명하여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판이하게 달라지는 상황을 뜻한다.
고체에서 액체로, 액체에서 기체로
초뷰카 신기루 세계를 이해하는 데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통찰이 요구된다. 바우만은 근대 초기를 고체 사회로 비유했다. 모든 것이 단단히 고정되어 변화가 드물고 예측 가능했던 세계다. 이후 포스트모더니즘과 디지털 혁명 사이의 시대는 액체 사회의 시대다. 고정된 형체가 녹아내려 변화 자체가 상수가 된 유동적 세계이며, 냉전 종식과 함께 도래한 VUCA 시대가 바로 이 액체 사회의 정점이었다.
지금은 초뷰카 시대는 뷰카 시대와는 상황이 질적으로 다르다. 디지털 혁명과 인공지능이 초래한 초뷰카 시대는 액체 사회가 아니라 기체 사회의 시대다. 흐름을 파악하면 유동성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던 액체는 이제 데이터라는 기체로 증발하고, 그 기체들은 클라우드에 집적되어 알고리즘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과 무관하게 데이터 알고리즘이 만들어내는 초현실이 현실이 된 세계다. 초뷰카 세상이란 신이 창조한 세상과 알고리즘이 신처럼 작용해 창조한 세상에 대한 이중몰입이 극단화 되어 그간 견고하게 진실로 받아들였던 믿음이 산산조각 난 세상이다.
기체 사회에서는 인간적 면모를 구성하던 모든 것이 형체 없이 데이터라는 이름으로 증발한다. 인간의 상호작용이 빚어내던 ‘뉴노멀’조차 정착하지 못하는, 극도의 혼돈이 일상이 된다. 데이터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초뷰카 시대를 사는 인간들은 모두 길 잃음이라는 실존적 위기에 봉착한다. 초뷰카 시대 길 잃음이라는 실존적 위기를 잘 묘사하는 말이 BANI다.
모든 삶의 실체가 데이터로 분절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기체 시대에, 길을 잃은 인간은 BANI를 숙명처럼 껴안고 살아간다. BANI는 미래학자 자메이스 카시오(Jamais Cascio)가 제안한 개념으로, 데이터로 만든 초현실적 시스템은 유리처럼 취약하고(Brittle), 그 안에서 사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늘 불안하며(Anxious), 근원 수준에서는 알고리즘도 파악하지 못하는 원인과 결과가 비선형적으로 뒤엉키고(Non-linear), 세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Incomprehensible) 블랙박스를 품고 있음을 묘사한다. 이 짙은 안개 속에서 능력과 전문성을 박탈당한 인간은 방향 감각을 잃은 채 실존적 길 잃음의 상황에 놓인다.
BANI의 시대를 사는 인간은 발 딛고 설 수 있는 규범이 사라졌을 때 생기는 극단적 아노미(Anomie)의 상태에 빠진다. 나를 증명하던 경력, 관계, 가치관은 알고리즘이라는 바람에 날리는 파편으로 흩어진다. 나를 지탱하던 규범과 가치가 데이터의 수증기로 증발할 때, 개인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진짜 나’로서 존재할 시간과 공간을 잃은 것, 그것이 초뷰카 시대 인간이 마주한 실존적 조건이다. 데이터 사막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인간들은 클라우드가 만들어내는 비로 만든 가짜 오아시스를 찾아 내지만 이 물을 마시는 순간 인간으로서의 갈증은 더욱 심해지고 클라우드를 지배하는 알고리즘 신에 대한 종속성은 더욱 강화된다. 이런 현실의 결론은 실존하는 인간의 종말이다.
클라우드 속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상황은 소수의 설계자, 권력자와 공모해 조지 오웰이 경고한 빅브라더 전체주의의 현실판을 재현하기도 한다. 초연결 분산 네트워크를 통해 가장 광범위하게 수집한 데이터를 민주화된 개인이 공유하는 범위를 넘어서 국가·기관·기업이 독점하게 된다. 이들은 개인들이 제공한 데이터를 무단으로 탈취해 개인의 벌거벗은 일상을 암암리에 감시한다. 이 감시가 지속될수록 인간은 가능한 모든 페르소나로 분절되어 총체적 인격체로서의 지위를 잃고, 온전한 개인들이 지탱하는 공동체를 붕괴시킨다. 인간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인간 사이의 모든 교류가 점점 줄어드는 수축사회가 된다.
초뷰카 시대의 진성리더십이란?
그렇다면 모든 것이 기체화되고 알고리즘이 지배해 인간으로 실존을 잃고 사는 극강의 아노미의 세계에서, 진성리더는 어떻게 인간다움을 회복할 수 있는가?
이 물음은 필자가 《진성리더십 Authentic Leadership》(2015, 라온북스) 개정 작업을 하며 가장 깊이 붙들고 있는 화두다. 진성리더는 절대적인 리더십 해답이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리더십은 특정 문제를 해결하여 약속한 변화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이며, 상황이 바뀌면 리더십의 정의 역시 시대에 맞게 새롭게 도출해야 한다. 진성리더십은 리더십의 구성주의다. 제대로 된 구성주의 리더가 되기 위해 상황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진성리더십의 출발점이다.
개정판에서 제기한 진성리더들의 핵심 과제는 사회적 헌신(Social Commitment)이다. 사회적 헌신이란, 인류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공공선을 향해 자신의 존재목적으로 가치 충격을 주고자 모인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새로운 질서 원칙이다. 존재목적에 헌신하는 이들이 모여 지속가능한 지구이라는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그 과정에서 제도를 재건하며, 성공 경험을 공유한 공동체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진성리더는 사회적 헌신을 쇄빙선으로 삼아 BANI로 묘사되는 길 잃음이라는 실존적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취약성(Brittle)에 대한 응답:
목적 스토리의 공유
시스템이 깨지기 쉬울수록 필요한 것은 더 강한 통제가 아니라, 리더와 구성원이 함께 나누는 ‘목적 스토리’다. 진성리더는 자신이 가진 텍스트(Text)를 구성원과 함께 맥락화(Context)하여, 구성원 스스로가 비전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도록 이끈다. 이를 통해 어떤 외부 충격에도 무너지지 않는 내적 탄력성이 구축된다.
불안(Anxious)에 대한 응답:
존재목적과 긍휼감
알고리즘으로 무장한 카리스마가 공포를 조장하는 대신, 진성리더는 존재목적과 긍휼감이라는 나침반으로 불안에 응답한다. “내가 다녀감으로써 사랑하는 이들이 더 행복해지는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는 확고한 사명은, 구성원에게 단순한 생존을 넘어선 정서적 안도와 존재의 의미를 부여한다.
비선형성(Non-linear)에 대한 응답:
근원적 자신감
비선형적 위기 앞에서 기술적 스킬보다 강한 것은 ‘품성’이다. 진성리더는 본질이 있은 후에 꾸밈이 의미를 갖는다는 회사후소(繪事後素)의 정신을 삶으로 구현한다. 자신의 내면 스토리와 일관된 삶을 사는 진실함이야말로, 예측 불가능한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근원적 자신감을 구성원에게 전파하는 유일한 매개다.
이해 불가능성(Incomprehensible)에 대한 응답:
목적의 선명성
데이터가 넘쳐나도 이유를 알 수 없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단 하나의 이유—바로 ‘왜(Why)’에 대한 질문과 응답이다. 진성리더는 세상을 모두 이해하려 들기보다, “누구의 아픔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가?”라는 본질적 물음에 집중한다. 시스템의 목적이 개인의 가치와 정렬될 때, 이해 불가능했던 혼돈은 비로소 ‘진북(True North)을 향한 여정’으로 전환된다.
비현실적 가상 세상에서 진짜 상호작용이 가능할까?
얼굴의 복원
기체화하는 데이터 파편들을 멈추고, 소통의 온기가 흐르는 ‘액체 상태’의 관계를 되찾아야 한다. 더 나아가, 흐르는 관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본질—’진실’이라는 단단한 고체적 핵심—을 다시 건져 올려야 한다.
이 어려운 역공정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은 바로 인간의 얼굴성이다. 바우만이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서 경고했듯, 시스템이 인간을 데이터와 숫자로 치환하는 순간 도덕적 책임은 증발한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Face-to-face Dialogue)를 시작하는 순간, 데이터의 안개는 힘을 잃는다.
얼굴은 어떤 데이터로도 완벽히 분절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신비이며, 대화는 기체처럼 흩어진 마음들을 다시 살아있는 의미로 응축시키는 행위다. 타자의 얼굴을 대면하고 그 존재에 응답하는 것—이것이 진성리더십이 추구하는 회복의 본질이다.
결국 기체 시대의 아노미를 돌파할 유일한 길은 기술의 고도화가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얼굴의 복원에 있다. 우리는 다시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대화를 시작함으로써, 증발해버린 인간성을 단단한 고체의 진실로 다시 빚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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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