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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장을 벗어나는 날개 근력과 어디로 향하는 지의 목적 서사 자유에 대한 소고

Jul 4, 2026 ·5분 ·jkyoon · 2
새장을 벗어나는 날개 근력과 어디로 향하는 지의 목적 서사
자유에 대한 소고
​인간은 끊임없이 자유를 갈구하지만, 정작 그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파편적인 이해에 머물러 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를 두 가지 층위로 구분했다. 하나는 외부의 억압과 강요로부터 벗어나는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세상과 능동적으로 연결되는 ‘~를 향한 자유(Freedom for)’이다.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자유는 대개 전자인 소극적 자유에 머물러있다. 규제로부터의 해방, 타인의 시선으로부터의 탈출, 경제적 결핍으로부터의 독립, 권력의 압제로부터 벗어남만을 자유의 전부라 믿는다.
소극적 자유를 규제하는 새 장의 문이 열렸다고 해서 새가 온전히 자유를 체험하는 것은 아니다. 제약으로부터 벗어남의 자유만을 탐닉하며 새장을 나선 새들은 머지않아 광활한 허공이 주는 고독과 불안을 마주한다. 스스로 날아갈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고, 무한이 전개되는 허공을 버텨낼 날개 힘이 떨어진 새들에게 열린 하늘은 축복이 아닌 공포다. 결국 이들은 스스로를 지탱할 능동적 자유를 찾지 못한 채, 익숙한 구속이 주는 안락함을 그리워하며 다시 새장으로 회귀하고 만다. 프롬이 경고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진정한 자유는 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자신의 존재라는 무게를 스스로 들어 올릴 수 있는 날개 ‘근력’을 전제로 한다. 자유는 단순히 벗어나는 상태가 아니라 존재의 힘이 내재적으로 단련되어 만든 근력을 의미한다. 임마누엘 칸트가 평생을 엄격한 규칙 속에서 살면서도 누구보다 깊은 자유를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은 역설적으로 그가 평생을 지켜온 ‘루틴’이라는 근력에 있었다. 자신을 규율하고 통제할 수 있는 내면을 규제하는 힘이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존재가 주는 중력을 이기고 비상을 시도할 수 있다. 자신의 몸과 정신을 지탱할 근력이 없는 자가 자유를 열망하는 것은, 날개도 없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추락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며,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는 중력 법칙일 뿐이다.
자신의 몸, 마음, 정신이 부과하는 존재 무게를 감당할 내면의 주체적 근력을 얻었다면 자유에서 요구되는 다음 단계는 ‘방향성’이다.
최근 우리 사회는 ‘회복탄력성’이라는 가치를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방향을 잃은 이에게 회복탄력성은 위험한 도구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운 좋게 고난을 극복하여 얻은 회복탄력성은 그저 길 잃은 상태를 연장할 뿐이다. 목적지 없이 헤매는 이에게 주어진 강인함은 축복이 아니라, 잘못된 길을 더 멀리 가게 해 영영 다시 돌아올 수 없게 만드는 재앙이다. 운좋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이렇게 얻은 근력 때문에 반드시 실패한다. 존재목적이 정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회복탄력성은 그자체로 저주다.
요즈음 학자들은 이처럼 방향성이 없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회복 능력인 회복탄력성과 대비시켜 근력이 점점 늘어나듯 회복력이 점점 더 커지는 상태를 안티프래질러티(Anti-fragility)이라고 부른다(예: Nassim Taleb).
안티프래질러티는 어려움에 처해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반드시 일어서야 하는 이유를 가지고 일어서는 행동을 통해 길러진다. 우리를 넘어트리는 힘은 다양하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넘어졌을 때 이유를 가지고 제대로 일어나게 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목적에 대한 믿음의 근력 때문이다. 역경 속에서도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이유를 품은 믿음의 근력을 단련할 때 우리는 회복탄력성이 아닌 안티프래질러티를 길러낸다. 우리는 수도 없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힘 때문에 넘어지지만 일어서야만 하는 일관된 이유는 우리가 정한 문제다. 일관된 이유로 근력이 조금씩 차이를 가지고 축적되는 상태가 안티프래질러티다.
인간이 최종적으로 갈망하는 자유는 경제적 자유나 사회적 기대를 충족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존재 목적에 대한 각성’을 통해 자신의 삶을 완성하고 삶의 마지막 순간에 목적에 대한 약속을 정산해 세상에 유산을 남기고 정산이 끝난 후 언제든 원하는 때에 언제든 세상을 훌훌 떠날 수 있는 자유다. 마지막 순간에 세상에 갚아야 할 빚이 있었음에 대해 깨달고 스스로 눈을 감지 못하고 남은 사람들에 의해 눈이 감겨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지로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자유다.
진성리더(Authentic Leader)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이런 자유를 열망하게 된 계기는 자신의 삶 자체가 세상에게 진 ‘빚’이었음에 대한 각성 때문이다. 부모, 형제, 친구, 이웃, 동료, 스승, 공동체, 자연에게 빚지고 살았음에 대한 각성에 도달한 이들은 지금까지 자신을 가두었던 낡은 새장이었던 정신모형의 감옥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다(소극적 자유). 그리고 자신에 대한 사랑을 복원하여 삶의 진정한 주인의 근력을 형성한다(주인 됨). 마지막으로 이들은 주임됨의 근력을 통해 자신이 받은 삶의 빚의 원금과 이자를 ‘유산(Legacy)’이라는 형태로 정산하고 세상을 떠난다(온전한 자유).
죽음의 순간에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며 십자가의 고통을 자유로 승화시켰던 예수의 모습은 세상에 진 빚을 모두 갚고 심지어 유산까지 남기고 떠나는 사람들만 외칠 수 있는 마지막 자유를 상징한다.
진정한 자유인이란 새장을 나가는 것에 만족하는 자가 아니다. 스스로를 주인으로 세우는 존재 근력을 내재적으로 기르고, 존재로서 약속한 목적지를 향해 날개를 저으며, 그 목적지에 도달해 자신이 머물렀던 자리를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만들고 하직할 줄 아는 자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도달해야 할 온전한 자유이다.
이런 자유에 대한 근력이 매일 매일 늘어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데모니아 행복(Eudemonia Happiness)이라고 정의하고 이런 조금씩 나아짐의 되어감을 수월성(Excellence)라고 규정했다. 이런 수월성으로 삶의 개입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인간으로서 온전한 자유 상태에 도달했음을 선언할 때 우리는 행복에서 비교 불가능한 상태인 블리스(Bliss)를 체험한다.
근력의 수월성과 극단적 행복을 체험하는 자유는 진성인과 진성리더로서 삶을 살기로 약속한 사람들이 삶을 정산해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완수해야 할 신성한 책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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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