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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트로이 목마가 아님을 어떻게 증명할까? AI 거버넌스 논의 지금 시작하자!

Jul 4, 2026 ·6분 ·jkyoon · 1
인공지능은 트로이 목마가 아님을 어떻게 증명할까?
AI 거버넌스 논의 지금 시작하자!
1950년대 미국, 사회학자 조지 호만스(George Homans)는 호손 공장 실험을 통해 현대 경영학의 고전적 가설 하나를 정립했다. 회사의 지침에 맞춰 집단 내에서 월등한 생산성을 기록한 노동자, 이른바 레이트 버스터(Rate Buster)들이 동료들의 암묵적 압박과 소외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산성을 낮춘다는 사실이다. 당시 노동자들은 경영진의 착취에 맞서 ‘생산성 하향 평준화’라는 비공식적 규범으로 연대했다. 이 당시는 인간의 사회적 결속이 효율성의 논리를 이기던 시대였다.
2026년 AI가 생산성을 증폭시키는 지금의 기업현장은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호만스의 가설은 이제 재현을 넘어 비극적으로 파기될 개연성이 높다. AI라는 초강력 엔진이 장착된 이 시대에, 근로자들이 연대할 조건 자체가 소멸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 앞에서 명분을 잃고 무장해제 되는 공포가 화이트 컬러 직종에서도 고스란히 재현될 개연성이 높다.
트로이 목마로 전락하는 인공지능
인공지능이 생산성으로 포장한 선물처럼 보이지만 그 선물 포장지를 뜯어내면 정작 근로자의 해고를 촉진할 트로이 목마 속에 숨겨진 적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불안의 진원지다. AI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만이 종업원들의 불안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킬 수 있다.
문제의 출발점은 인공지능이나 로봇 기술이 아니다. AI 자체가 노동자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AI 도입을 둘러싼 사회적 계약의 공백이 불안과 위협을 만들어낸다. 오늘날 대부분의 조직에서 AI는 효율의 도구로 도입되지만, 그 효율이 누구의 것인지, 증가한 생산성이 어디로 귀속되는지, 그리고 AI가 가능케 한 과잉 노동이 어디까지 정당한지에 대한 어떤 합의도 선행되지 않는다.
기업의 구성원들은 본능적으로 이 거버넌스 부재가 가져오는 공백을 감지한다. AI가 도입될수록, 자신이 수행해온 업무의 ‘대체가능성’이 가시화된다. 어제까지 고유한 역량이라 여겼던 일들이 오늘은 AI의 프롬프트 몇 줄로 처리된다. 이 경험은 단순한 기술적 충격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묻는 실존적 물음이다. AI 사용이 뉴노멀이 되어도 나는 이 조직에 필요한 존재인가?
인공지능 거버넌스 물음에 조직이 선제적으로 답하지 않는 한, 조직의 구성원은 인공지능은 자신을 해고할 트로이 목마라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이에 대항 하는 각자의 전략을 모색한다.
미국: 자발적 ‘일 폭탄’과 인볼루션의 비극
해고가 자유로운 환경에서 노동자들은 ‘대체 불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미국의 레이트 버스터들은 동료의 눈치를 보는 대신 AI를 활용해 홀로 10명분의 업무를 처리하며 스스로 자발적 일 폭탄을적껴안는다. 호만스 시대의 연대 규범은 사라졌다. 지금은 동료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속도를 설정하고, 관리자가 아니라 대시보드가 생산성을 판정한다.
이 구조의 잔혹함은 결말이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데 있다. 살아남은 소수의 레이트 버스터들은 번아웃의 임계점까지 효율성을 높이다가, 최적화의 정점에서 더 이상의 진보 없이 서로를 갉아먹는 인볼루션(Involution, 내권화) 현상에 빠진다. 극단적으로 쥐어짜진 효율의 끝에서, 그들은 결국 더 저렴하고 고도화된 AI 시스템에 의해 대체되거나 용도 폐기되어 퇴출당한다. 누가 마지막에 문을 닫고 나가는지의 시차만 있을 뿐, 일반 구성원이 직면하는 결말은 ‘소모 후 폐기’라는 동일한 종착역이다.
거버넌스가 부재한 상황에서 AI 도입은 역설적으로 구성원을 더 빠르게 소진시키는 가속 장치가 된다. 기술이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인간을 더 효율적으로 착취하는 매개가 된다. 이것이 인공지능을 효율성 증진을 넘어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거버넌스 없는 AI 도입이 낳는 불안의 구조다.
한국: ‘그림자 AI’의 일시적 방어
한국은 고용 유연성이 낮아 미국과는 다른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견된다. 조직의 젊은 구성원은 회사가 제공한 AI를 사용하고 지신이 개인적으로도 사용하지만 여기서 얻은 활용은 굳이 내놓지는 않는 그림자 AI(Shadow AI) 전략을 사용할 것이다. 회사는 사용한 토큰 수를 KPI로 방어에 나서겠지만 이것도 회사가 공인한 인공지능에만 적용가능하다. 또한 회사의 업무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엉뚱한 일을 시켜 토큰을 양산할 수도 있다. 또한 구성원은 할 수만 있다면 동료들과 암묵적 연합을 맺어 가능한 생산성 향상을 은닉하고, 일 폭탄을 집단적으로 방어하려 할 수도 있다. 호만스 시대의 하향 평준화 연대가 디지털 시대에 잠시 소환된 형국이다.
AI를 활용하고 있음을 숨기는 행위는 조직을 향한 방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동료를 향한 정보 비대칭의 원천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숨기고 누군가는 노출되는 순간, 무임 승차자가 생기고 결국 그림자 연합은 균열한다. 그리고 그 균열의 틈새로 트로이 목마의 유령이 다시 침투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시장 압력이다. 경쟁사가 AI를 적극 도입해 압도적인 이윤을 창출한 사례가 알려지면 그림자 AI 방어선은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AI 도입을 제촉할 것이고, 종업원들은 선택지 없이 초생산성 경쟁으로 내몰린다. 그림자 연합의 시간은 잠시 빌려온 것에 불과해진다
이 과정에서 조직 구성원이 경험하는 것은 두 겹의 불안이다. 하나는 언제 AI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라는 대체가능성의 불안이고, 다른 하나는 AI를 쓰는 동료가 더 많은 성과를 내어 자신이 상대적으로 뒤처질 것이라는 내부 경쟁의 불안이다. 이 두 불안은 서로를 증폭시킨다.
필자가 『진성리더십』과 『급진거북이』에서 거듭 논증했듯이, 인간은 일의 효율이 아니라 일의 의미로 지탱된다. 업무의 목적이 분명하고, 그 목적이 자신의 존재와 연결될 때, 인간은 도구적 효율을 초월하는 존재우위(Existential Advantage)를 발휘한다. 효율이 극단적으로 최적화 되는 지점에서 마치 모래 탑에 한 줌의 모래가 더해져 모래탑 전체를 무너트리는 것처럼 최적화의 탑은 무너진다. 조직의 목적과 연동되지 않은 모든 최적화는 부분최적화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최적화와 필연적으로 충돌해 무너진다. 거버넌스의 중재 없는 AI 최적화는 사막의 신기루일 뿐이다.
AI가 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노동자는 묻기 시작한다. 이 일의 목적이 무엇인가.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물음에 조직이 침묵하고 AI 도입을 비용 절감이라는 자본의 논리에 따를 때 종업원은 일에 열의를 보일 이유를 잃는다. 역설적으로 열의를 잃은 종업원은 해고 당하지 않기 위해 의미 없이 많은 업무량으로 자신을 소진시킬 것이다. 인공지능이 초래할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가 부재한 공백을 타고 들어온 일 폭탄은 겉으로 보기에는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으로 귀속된다.
Weber가 ‘탈주술화(Entzauberung)’라 불렀던 것이 바로 이 국면에서 재현된다. 합리화의 극단에서 모든 의미가 박탈되고, 토큰 수로 측정되는 효율이라는 수단이 목적을 대체한다. 그 끝에서 노동자는 기계의 부품이 아니라, 기계를 모방하는 인간으로 스스로를 재편하다 결국의 회사의 생존과 이윤극대화 논리에 밀려 조용히 사라진다
인공지능 거버넌스 논의의 시급성
인공지능이 일의 표준으로 장착되기 지금 시대에는 1950년대 호만스가 목격했던 노동자의 연대라는 낭만은 이미 사라졌다. 그것을 가능케 했던 공동체적 유대 또한 초분절 수축사회(hyper-fragmented contracting society)의 심화 속에서 해체되고 있다. 지금 남은 것은 각자도생의 경쟁 논리와, 그 논리를 가속시키는 AI의 조합이다.
AI를 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가져온 생산성 이득이 노동자의 삶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거버넌스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근로 시간은 줄어들 것인가, 늘어날 것인가. 대체된 역할 대신 어떤 새로운 의미 있는 역할이 부여될 수 있는가. 이 거버넌스 물음들에 답이 선행되지 않는 한, AI 도입은 기술 혁신이 아니라 불안 증폭 장치가 될 것이다.
진성리더의 변화전략인 급진거북이는 근거 있는 목적과 점진적 실행 사이의 긴장 속에서 앞으로 나아간다. AI 시대의 일 역시 마찬가지다. 변화의 속도는 멈출 수 없지만, 그 변화가 인간의 존엄을 기술 위에 놓는지는 선택의 문제다. 그 선택이 지금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일 폭탄의 시대는 단순한 예언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 될 것이다. 기업과 종업원과 사회가 서로의 꼬리를 먹어가며 생존을 유지하다 결국 모두가 공멸하는 우로봊로스의 비극을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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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