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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형 리더가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향형과 외향형의 리더십 동학
내향형 리더가 조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향형과 외향형의 리더십 동학
리더십 세미나를 진행하다 보면 자신은 남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려운 극강의 내향형인데 그럼에도 리더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나의 대답은 그렇다 이다. 하지만 한 가지 반드시 충족해야 할 조건이 있다. 조건은 목적함수의 여부에 달려 있다. 리더로서의 목적함수가 분명하고 자신의 목적함수에 대한 믿음이 서 있다면 오히려 외향형 리더보다 내향형이 더 훌륭한 리더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 내가 내리는 결론이다.
리더십의 목적함수가 어떻게 모두가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내향인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는 것일까? 그 숨겨진 비밀은 무엇인가?
리더십의 존재이유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리더가 조직에 임재해 있었기 때문에 구성원이 체험하게 된 변화다. 리더십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자체로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리더십을 변화의 수단으로 보기보다는 목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리더십을 우상화시키고 부하의 성과도 갈취해가며 자신을 우상화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수단의 본질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수단이 목적을 제치고 자신을 드러내는 순간 못대신 손을 찍는 망치처럼 망치라는 수단은 폭력이 된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리더십을 리더가 약속한 변화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리더십을 자신이 앞장서서 자신을 드러내놓고 이끄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드러내놓고 앞장서서 이끄는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외향형 리더에게 몇번 당하면 를 내향형 리더는 리더가 되는 일을 포기한다.
리더가 목적으로 삼는 리더가 달성해야 변화는 무엇인가?
가장 초보적 변화는 성과다. 리더는 조직을 위해 최소한의 성과를 내야 조직을 생존하게 만들기 때문에 최소한의 성과도 내지 못한다면 리더십은 순화론적 말장난이다. 하지만 성과를 리더십의 최종 목적함수로는 삼아 자신을 드러내고 여기에 고착시키는 리더는 초보적 리더다. 이들 성과 만능주위자보다 고차원의 변화에 대한 목적함수는 성과를 내는 둥시에 자신급의 리더를 키워내서 조직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오는 리더다. 성과를 통해 부하를 리더로 길러내는 리더보다 더 고차원의 변화에 대한 목적함수를 실현하는 리더는 성과를 내고 성과를 내는 일을 통해 부하를 자신급의 리더로 많이 육성하는 동시에 이들을 리더로 길러낼 때 조직의 존재목적과 가치에 근거해 일할 수 있도록 조직의 정신모형을 공유해 조직의 문화까지 변화시키는 리더다. 조직의 구조나 제도는 모두 문화가 현실로 반영되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은 조직이 일하는 시스템을 바꾼 변화의 챔피언이 된다.
조직의 문화를 바꾼 사람이라는 목적함수를 가진 사람은 성과, 리더육성, 문화설계를 세 가지 독립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 일상해서 해야하는 남들과 똑같은 일을 통해 달성하는 일이다. 단지 같은 일을 할 때 조직의 무너진 성전을 복원하는 석공의 마음으로 일한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약속한 마지막 변화가 완성될 때까지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자신과 같이 일했던 구서원들이 이 리더의 존재를 드러내준다. 후배들은 이런 변화의 목적함수를 실현하고 조직 생활을 마무리한 리더가 조직을 떠난 후에도 일부러 찾아가 우리 회사는 선배님이 있었기 때문이 지금처럼 일하기 좋은 회사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희도 신나게 일할 수 있었읍니다, 고맙습니다 라며 러더의 존재를 드러네준다.
모든 조건이 같다면 이런 리더의 목적함수를 실현할 개연성이 높은 주인공은 자신을 드러내기를 즐기는 외향형 리더보다는 내향형 리더다. 이들은 문화를 통해 조직의 구성원들을 모두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리더로 세운 사람이어서 리더십의 민주화를 달성한 최고의 리더다. 아이러니 하게도 조직이 리더를 기억하는 순서도 같다. 조직에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주었다고 개인적으로 주장해도 이런 리더는 조직을 떠나면 순식간에 잊혀진다. 리더를 길러낸 리더는 이들이 조직에 남아 있는 때가지 잊혀지지 않는다. 문화를 바꾼 리더는 조직이 사라지기 전까지 조직에 신화가 된다.
모든 리더십 교과서에는 요순시대(堯舜時代) 임금님이 행사했던 리더십의 민주화를 리더십의 마지막 상태로 간주한다. 동양 철학에서 이상적인 정치가 실현된 성군들의 시대를 임금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백성이 평안한 상태’로 규정한다. 흔히 무위이치(無爲而治)와 격양가(擊壤歌)의 일화로 리더십의 민주화를 설명한다.
무위이치(無爲而治)란 “힘을 억지로 쓰지 않아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다스려진다”는 뜻으로 요임금과 순임금의 리더십은 인위적인 강제나 화려한 통치 기술을 부리지 않는다. 리더가 일일이 간섭하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본분을 다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문화 시스템을 구현하고 백성들을 모두 시스템 위에 리더로 세워 뛰놀게 했다. 이런 리더십이 민주화된 상태를 놓고 노자(老子)는 가장 훌륭한 리더는 백성들이 그가 있다는 것만 아는 리더(太上下知有之)라고 설명한다. 요순시대의 정치는 백성이 리더의 공을 찬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이렇게 즐겁다”라고 믿게 만드는 리더십을 보여준다. 백성이 부르는 격양가는 최고의 리더십에 대한 찬미다. 격앙가는 요임금이 민정을 살피러 나갔을 때, 한 노인이 땅을 치며(격양)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는 유명한 일화다.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쉬고, 우물 파서 마시고 밭 갈아 먹으니, 임금의 힘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랴!”
조직에 대한 영향력이 발휘될 수 없는 상태인 조직을 나온 후에도 후배들이 찾아와 식사를 대접해가며 격양가를 들을 수 있는 리더가 변화의 마지막 단계인 리더십의 민주화를 구현한 최고의 리더다.
모든 조건이 같다면 후배들로부터 이런 격양가를 들을 수 있는 리더는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외향형 리더보다는 내향형 리더일 개연성이 크다. 물론 이 내향형 리더가 변화에 대한 제대로 된 목적 함수를 가지고 실현했을 경우에 가능한 이야기다. 변화에 대한 목적함수가 없을 때는 외향형 리더가 더 승승장구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외향형 리더가 리더십의 목적함수로 무장하지 않았다면 외향형 리더의 성공도 성공처럼 보이는 단기적인 신기루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