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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도 돌봄과 CPR이 필요해! 한방병원 프로젝트

Jul 4, 2026 ·7분 ·jkyoon · 1
우리 마음도 돌봄과 CPR이 필요해!
한방병원 프로젝트
다양한 보고를 종합하면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경계성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특히 많다. 심지어 건강보험 공단이 낸 자료를 보면 대기업 직장인의 60-70%가 경계성 정신질환를 앓고 있다는 추계도 있다. 통계에 잡힌 숫자가 이 정도면 대한민국은 사실 모두가 정신적으로 아픈 상태다. 이들 직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분들이 집안의 아이에게는 아빠이자, 엄마이고, 삼촌이자, 고모이고, 이모고, 형이고 누나다. 아픔에 대한 건강한 방어기제가 형성되지 못한 아이들은 너무 쉽게 아픔의 투사에 노출된다. 아픔에 감염된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다시 친구들에게 서로 투사하고 선생님께 투사한다. 이런 투사의 메카니즘을 통해 우리 모두는 관계를 통해 아픔에 전염된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면 투사를 통해 아픔의 바이러스를 옮기는 숙주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비극적인 지표를 수년째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자살의 양상을 깊이 들여다보면, 개인이 삶의 의미와 사회적 규범을 상실했을 때 발생하는 ‘아노미적 자살’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병원에 입원해야 할 정신 질환까지는 아니어도 정신이 아픈 상태가 방치되었을 때 예견되는 것이 아노미 자살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통계 상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자살 공화국이었다.
급격한 사회 변동 속에서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토대가 무너질 때, 인간은 극심한 혼란에 빠지며 삶의 방향타를 잃어버린다. 특히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러한 자살의 징조가 겉으로 드러나는 격렬한 고통보다는, 감정이 메말라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정서적 불능’의 상태로 먼저 나타난다. 감정이 말라 죽어버린 상태는 삶의 의지를 지탱할 최소한의 연결 고리마저 끊어진 마음에 대한 사망 선고다. 스스로가 마음에 사망 선고를 내리는 순간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죽을 때까지 이런 혼란 속에서 고통스럽게 사느니 스스로 먼저 목숨을 끊는다. 삶의 의미를 잃고 세상을 먼저 하직하는 행위가 아노미 자살이다.
자신의 내면의 정서지능의 잔고를 점검하는 마음챙김은 이런 점에서 심폐소생술이나 마찬가지다.
정서지능은 단순히 타인과 잘 지내는 기술이 아니라, 내면의 정서를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의 정서와 고통을 타인에게 투사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통제하는 고도의 마음의 근력이다.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억압하기만 하면, 그 에너지는 왜곡되어 타인과의 경계를 침범하거나 자신과 남들의 관계의 다리를 파괴하는 폭탄인 투사로 흐르게 된다. 정서지능의 근력을 가진 사람들은 부정적 정서를 통제하지 못하고 투사하거나 결국은 있던 긍정적 정서를 고갈시키는 방향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정서지능의 근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몸의 경계에 있는 자신의 정서와 타인의 몸에 있는 타인의 정서를 구별하고 이들의 차이를 엮어 에너지와 관계를 만든다.
마음챙김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내재적 에너지인 정서잔고를 관리하는 심리적 토대다. 마음챙김은 자신이 겪는 고통을 과장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게 함으로써, 부정적 감정과 나 사이에 건강한 거리를 만들어준다. 이 거리는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 감정에 이름 붙이고 ‘관찰’할 수 있게 하며, 심지어 부정적 정서를 통해서도 갈등이 아닌 관계의 풍요로움으로 전환하는 기반을 만든다.
마음챙김을 통한 부정적 정서의 자기 수용은 정서지능의 핵심인 ‘자기 조절’과 ‘공감’을 만들어내 정서 잔고를 채운다. 자신의 아픔 조차 보편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타인의 정서적 고통에도 진심으로 응답할 수 있는 여유를 얻는다. 마음챙김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안녕을 넘어, 고립된 개인이 공동체와 다시 연결되는 통로를 만든다. 긍정적 감정이 점점 메말라 죽어갈 때 파생되는 아노미 자살의 위기 속에서 마음챙김을 통해 정서지능과 정서잔고를 회복하는 것은, 단절된 심장과 몸을 다시 연결하고 나아가 타인과 건강한 경계를 유지하며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내면에 흐르는 정서적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따뜻한 자각으로 껴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살아야 할 이유와 의미를 내면에서부터 다시 세울 수 있다.
얼마 전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온다>라는 드라마를 보고 우리나라에 <한방 병원>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드라마는 정신과 간호사가 환자들이 던지는 아픔에 대한 투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스스로도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이야기다. 돌봄을 제공해야 할 사람이 돌봄의 제공과 돌봄을 받는 이율배반적 행위를 해야 하는 아픔을 그린 드라마다. 이런 사례는 우리 사회 모든 곳에 편재해 있다. 아픈 사람의 투사를 만나는 장소는 병원, 사회복지, 목회자, 코칭계, 상담 현장, 사회적 돌봄 현장, 가정 등등 모든 곳에 숨어 있다. 제대로 돌봐지지 못한 환자는 기아급수적으로 늘어가고 있고 이들을 돌보는 역할을 맡은 사람들도 투사에 대한 방어와 오염으로 결국 환자가 되어간다. 정신과에 입원할 정도면 오랫동안 삶 속에서 관리되지 못한 아픔이 이미 뇌에 흔적을 남긴 상태이다. 본인이 주창하는 한방병원 프로젝트는 이런 단계에 이르기 전에 마음, 몸, 정신이 총체적으로 관리되고 징조가 보이면 개입하는 웰니스(Wellness) 관리 시스템이다.
결국 마음챙김과 정서지능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 기술을 넘어, 서서히 죽어가는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다시 살려내는 가장 절실한 정서적 심폐소생술(CPR)이다. 아노미의 파도에 휩쓸려 감정이 마비된 채 가라앉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고 수용하는 따뜻한 손길이다.
마음챙김이 정서를 느끼지 못하고 멈춰버린 내면의 심장에 다시금 ‘현존’이라는 박동을 불어넣는 작업이라면, 정서지능은 그 박동이 타인에게 투사나 공격이 아닌 ‘공감과 연결’이라는 건강한 혈류로 흐르게 하는 통로를 만들어 사회적 지지를 통해 공동체의 정서잔고를 축적하도록 돕는다.
살다 보면 아픔에 내던져 지는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픔이 보편적인 문제임에도 자신이 느끼는 고통에만 침참해 아픔을 자신에게 특수한 문제로 해석하는 경향이 부정적 정서 전염의 시작이다. 아픔을 시간과 공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가 경험하는 보편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전환이 심폐소생술의 시작이다. 하지만 아픔에 흔들리고 넘어졌을 때 포기하지 않고 우리 몸, 정신,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우리의 책무다. 스스로의 아픔을 남에게 투사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이 관리 가능한 아픔을 지렛대로 삼아 타인과 자신의 아픔에 정서적 경계를 세우고 아픔에 대한 차이를 관계로 승화시킬 때, 비로소 공동체의 죽어가는 마음들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할 것이다.
내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정서적 심폐소생술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절망의 시대에 우리가 서로의 생존을 책임지며 삶의 의미를 복원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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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마음을 살리는 정서적 심폐소생술(CPR) 3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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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Check & Calm):
자신의 상태를 판단 없이 확인하고 이름 붙이기
지금 내 몸의 감각이나 마음의 날씨가 어떤지 잠시 멈춰 바라본다. “기쁘다, 슬프다” 같은 거창한 단어가 아니어도 좋다. “가슴이 답답하다”, “아무 느낌이 없다”는 자각 자체가 심폐소생술의 첫 압박이다. 자신의 아픔을 인지하고 이 아픔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아픔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첫 시작이다.
시인 김춘수도 꽃에 이름을 붙여주기 전 그 꽃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보통명사의 꽃이라고 설명한다. 시인이 꽃에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꽃은 시인의 꽃이 된다. 아픔도 마찬가지다. 이름이 붙여진 아픔만 존재로 드러나고 존재로 드러난 아픔만이 극복해 에너지로 쓸 수 있는 아픔이 된다. 운명적으로 아픔을 전환해 긍정적 에너지를 얻어야 하는 인간은 아픔이 없다면 에너지를 얻을 방법이 없다. 융은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용도 나의 용으로 길들일 수 있다고 제안한다. 이름 붙여져 존재로 관리되지 않은 모든 객체는 내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뒷다리를 움켜쥐는 물귀신일 뿐이다.
P (Perspective & Presence):
아픔이 누구나가 경험하는 보편적 문제임을 인식하기
이 고통이 나만의 결함이 아님을 상기한다. “금수저로 태어난 사람들도 아픔이 있다.” “이들도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나처럼 똑같이 느낄 수 있다.” “죽은 사람만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 “아픔에 흔들리고 쓰러지는 행위는 내가 지금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비난을 멈추고, 정서적 에너지가 다시 흐르게 하는 나만의 산소를 찾아보자.”
​R (Relate & Respond):
투사를 멈추고 건강하게 반응하기
내 안의 부정적 감정을 타인에게 퍼붓거나(투사) 무조건 참는 대신, 상대와 나 사이의 정서적 경계를 인식한다. 나의 아픔을 솔직하게 나누되 타인의 겪은 아픔이 내가 겪은 아픔과 다름을 인정하고 연결하는 정서 소통은, 끊어졌던 공동체와의 연결을 다시 살아나게 만든다. 공동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아픔의 뿌리가 리좀 뿌리로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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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