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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이 반드시 붕괴되는 이유 부분 최적화의 역설
공화국이 반드시 붕괴되는 이유
부분 최적화의 역설
본인은 캠브리지 대학에서 출판한 <On the Edge of Chaos>에서 30여년 같이 연구를 진행한 연구 동료들과 사회, 공동체, 조직의 질서가 붕괴되고 다시 질서가 수립되는 다양한 과정을 연구해왔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어떤 특정한 주체가 중심이 되어 부분 최적화를 극대화 시키면 이 체제가 임의로 만든 세상 밖으로 엔트로피가 극대화 되고 엔트로피가 경계를 넘어 주변을 오염시키기 시작하면 경계가 파괴되고 경계의 주변에 있는 주체가 다시 중심으로 들어서서 자기조직적 질서를 조직해가는 과정을 반복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세상이 진화하는 원리는 같다. 주변에서 출현한 다윗이 중앙의 골리앗을 무너트리고 다시 질서를 만들고 이들이 다시 골리앗으로 변화하면 경계의 가장 자리에 있던 주체가 다시 다윗으로 등장하는 구조를 반복한다.
한 사회에서도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특정한 주체가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최적화 시키는 부분 최적화 전략을 사용하면 어느 시점에서 사람들은 이 주체를 공화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공화국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부분 최적화가 극단에 이르면 사회 전체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앤트로피가 급증하고 붕괴가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이런 부분 최적화의 극대화로 사회 전체가 희생되는 모습을 의미하는 공화국 이름이 붙은 정치체제는 유신독제이라는 부분최적화로 세워진 박정희가 이끌던 3 공화국, 하나회라는 군부내 전두환 파벌이 세운 5 공화국이다. 이들 공화국 앞에는 지금도 전체 최적화를 의미하는 민주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이외에도 삼성공화국과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검찰공화국에도 공화국이란 이름이 붙었다. 아마도 사람들 마음 속으로 임위로 부르고 있는 또 하나의 공화국은 김앤장 공화국일 것이다. 공화국 이름이 붙었다는 것은 부분 최적화가 극에 도달해 붕괴가 임박했다는 뜻이다.
부분 최적화가 사회를 붕괴시키는 원천이 되는 원리는 마치 모래성을 쌓는 원리와 비슷하다. 모래알을 부어 모래 산을 만들 때 어느 시점에서 더 가해진 한 줌 모래 때문에 모래 산 전체가 붕괴되는 것을 목격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국제 질서의 측면에서 트럼프 정권의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 한다는 부분 최적화의 명목으로 세계 질서를 희생하는 주범으로 등장했다. 한 마디로 미공화국이다. 결국 이런 상태로 간다면 미공화국은 부분 최적화의 끝에서 조만간 무너지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권력이 이런 최적화의 무기로 사용된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정치를 제대로 하는 정치가는 변방에서의 움직임을 통해 엔트로피의 조짐을 미리 파악하고 자기 확증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질서인 안트로피를 구축할 수 있는 정치가이다. 이들은 권력이 집중되며 생기는 부분 최적화가 가져오는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여 모래 산이 무너지지 않도록 전체의 경계도 확장해가며 모래 산 밑을 더 넓게 만들어 토대를 굳히고 이를 넘어 모래 산 정상에 구성원이 주인이 되어 뛰어 놀 수 있는 운동장을 쌓을 것이다. 또한 이런 운동이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공동의 목적을 설정하여 산과 운동장을 철학적으로 관리할 것이다.
우리 자신도 마찬가지다. 수없이 많은 자기 개발서에 현혹되어 우리를 몸, 마음, 정신으로 분절시켜 각자를 최적화 하는 방향으로 삶을 관리하다보면 어느 시점에서 우리 삶이 통째로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다. 아무리 최적화의 첨단 기법을 동원한다 해도 부분최적화가 목적함수라면 삶은 필연적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 개인의 삶은 존재목적이라는 함수를 최적화 하는 방식으로 영위될 때 부분 최적화의 문제를 극복한다.
분절된 삶이 붕괴되는 수순은 정신, 마음, 몸 순이다. 삶이 부분 최적화로 극단화 되면 우리의 지속가능한 행복을 이끄는 웰니스의 토대는 무너진다. 우리를 과도하게 몸 공화국, 마음 공화국, 정신 공화국으로 분절 시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우리 전체가 무너질 때까지 부분 최적화의 모래 성을 쌓는다. 부분 최적화를 극단화 시키는 노력은 중간에 심장 마비 등의 경고를 보내지만 심장 마비로 죽을 고비를 넘긴 후에도 부분 최적화를 통해 삶의 효율성을 극대화 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못하면 결국은 죽음을 피할 방법이 없다.
우리에게 가장 취약한 부문은 정신, 마음, 몸 순이다. 부분 최적화에 노출되면 먼저 정신의 황폐를 불러오고 정신이 황폐해지면 다시 마음의 황폐를 경험한다. 마음의 황폐는 몸에 암으로 발현된다. 암은 극단적 부분 최적화된 삶의 마지막 종착역이다. 전체 최적화를 위한 개입은 삶의 태도를 결정하는 정신에서 시작해 마음으로 근력을 확보하고 몸을 보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정신이 취약한 상태에서 부분 최적화를 위해 마음 몸을 달리게 되면 결국 마음도 무너지고 마음이 무너지면 암의 씨앗이 몸에 발아 되어 결국 암으로 쓰러지는 수순을 경험한다.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주는 위험도 지금까지 존재했던 어떤 자기개발서가 넘볼 수 없는 최고로 강력한 평균을 절대값으로 정한 부분 최적화를 제시한다는 데 있다. 자신을 넘어 이웃과 친구와 공동체와 지구의 전체 최적화를 위해 경계를 확장하는데 것과 상관없이 인공지능의 평균을 상한선으로 고정시킨 효율성을 의해 극단적으로 사용한다면 어느 순간 모두가 모래가 쌓은 산을 넘어 신기루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 속을 헤매다 삶의 종말을 고하는 상황에 도달할 것이다.
전체 속에 한 부분으로 경계를 만들어 살고 있다는 관점을 놓치면 모든 효율성 노력이 비극으로 치닫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