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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뷰카 시대 깊이 뛰기와 멀리 뛰기가 만든 경계 원로 공학자들과의 리더십 간담회

Jul 4, 2026 ·6분 ·jkyoon · 1
초뷰카 시대 깊이 뛰기와 멀리 뛰기가 만든 경계
원로 공학자들과의 리더십 간담회
공학계의 원로학자들이 모인 간담회에 초대받아 인공지능 광풍이 불고 있는 요즈음 사회과학계의 리더십 연구자들은 이 문제의 본질을 어떻게 보는지 그리고 지금의 광풍을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태풍과 태풍의 눈에 관한 물리학의 원리를 리더십 원리로 이용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태풍의 외연을 보면 엄청난 속도의 회오리 바람이 불지만 태풍의 눈에는 상당한 크기의 고요한 공간이 존재한다. 지금처럼 인공지능이 태풍을 몰고 오고 있는 시점에 우리는 어떻게 태풍의 눈을 찾아 심리적 안정 공간을 만들 수 있는지를 역으로 질문을 드렸다. 리더의 역할이 바로 이 태풍 속에서 태풍의 눈이라는 고요한 심리적 안정공간을 만들어내는 일이라고 말씀드렸다.
인간의 역량과 존재 방식에 대한 심오한 통찰 중 하나는 외부로 확장하려는 힘과 내부로 침잠하려는 힘 사이의 창조적 긴장 관계를 이용하는 능력이다. 밖으로 멀리 뛰는 능력은 탐험, 차별화, 외부 세계와의 적극적인 교합을 상징하는 원심력(Centrifugal)을 의미하며, 안으로 깊이 뛰는 능력은 응집, 통합, 내부적 안정성을 지향하는 구심력(Centripetal)을 의미한다. 두 벡터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되는 ‘안정지대’는 자연계의 가장 강력한 폭풍인 태풍의 눈과 유사한 원리를 지닌다. 원심력과 구심력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에서 경계가 만들어지고 이 경계 안의 공간은 누구에게나 심리적 안정공간으로 작용한다. 이 공간은 태풍의 눈 주변부의 격렬한 회전과 에너지 방출 속에서도 역설적인 고요함을 유지하며 시스템 전체의 구조적 완결성을 담보한다.
인공지능이 몰아치는 초뷰카 세상은 외연을 밖으로 확장하는 원심력의 세계다. 이 원심력은 대부분 우리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힘으로 다가온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타고 원심력을 즐길 수도 있고 나이와 상관없이 배움의 의지만 있다면 원심력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문제는 원심력이 강해 튕겨나갈 때 이 원심력을 제어할 수 있는 구심력이 있는지다. 원심력에 대항하는 구심력을 확보할 수 없다면 태풍과 태풍의 눈 사이 경계를 만들지 못한다. 원심력에 대항하는 구심력을 통해 경계가 만들어졌을 때 그 안 생기는 공간이 심리적 안정공간이다.
인공지능 시대 대부분 사람들이 보이는 공통된 태도는 원심력에 경외감을 보이고 원심력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형태다. 이런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원심력의 힘에 경외감을 보이며 떠돌다가 결국은 원심력에 밀려 태풍 밖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이다. 원심력에 취한 사람들의 필연적 운명은 길 잃음과 탈로다. 이런 변화가 상수인 시대 운신할 수 있는 실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안으로 깊이 뛰기 할 수 있는 구심력의 근력이 필수적이다. 원심력은 리더가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리더는 원심력에 대항할 수 있는 구심력의 근력을 기르고 이 구심력 근력을 조정해가며 경계를 조금씩 확장한다.
변화가 상수를 넘어 태풍의 회오리 바람으로 다가오는 초뷰카 시대 리더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맡고 있는 조직의 경계의 조금씩 확장해 실험이 가능한 더 큰 안정 공간을 만들 수 있는지의 문제다. 리더는 원심력에 대항해 구심력을 작동시켜 둘이 균형되는 지점에 경계를 세운다. 경계를 세우고 이 울타리 안에서 심리적 안정을 누려가며 구성원들이 태풍이 쓸려가지 않도록 안으로 깊이 뛰기를 연습하게 만든다. 구성원들이 안으로 깊이 뛰기 할 충분한 근력을 확보하면 이 구심력을 조절해 밖으로 멀리 뛰기를 시도한다. 이런 방식으로 리더는 울타리를 확장해가는 사건의 주체다. 리더가 세우는 울타리는 일반적 회사의 담장이 아니라 가치의 울타리다.
리더로 성장한다는 것은 이런 경계 확장 사건을 경험한 횟수를 기록해 만들어낸 나이테의 숫자다. 나이테는 삶의 울림판이다. 많은 나이테로 큰 징을 가진 리더는 자신의 내러티브를 통해 큰 울림과 반향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리더에게 나이테가 없다는 것은 성장 경험이 없이 벼락 리더가 되었다는 뜻이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홀려 구심력을 상징하는 나이테가 없는 유사리더를 리더로 세우면 사회, 조직은 위태롭기 짝이 없는 운명에 처한다.
우리는 전문가 앞에서 학습이 덜 된 사람을 지칭할 때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고 있냐”고 반문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몰라도 학습의 본질은 주름이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학습이 깊이 있게 진행되면 몸, 마음, 정신에 주름이 생긴다. 안으로 깊이 뛰기 훈련은 주름을 만든다. 경계는 주름을 펴서 평평하게 만든 사건이다. 경계의 확장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흔적을 남긴다. 정해진 범주에서 깊이 뛰기와 멀리뛰기가 모두 가능해졌을 때 나무의 나이테가 새겨지는 것처럼 뇌의 시냅스에 나이테가 생긴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머리의 크기가 아니라 선천적으로 머리에 얼마나 많은 주름을 가지고 태어났는지의 문제다.
들뢰즈가 묘사하고 있듯이 성장이란 구심력과 원심력을 이용할 수 있는 주름 만들기와 주름펴기를 반복해 근력을 만드는 행동이다. 우리는 주름 만들기와 주름 펴기를 통해 우리 정신, 마음, 몸에 나이테라는 경계를 확장하는 역사를 쓴다. 마치 개구리도 멀리 뛰기라는 변화의 사건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대한 주름을 만들고 이 주름을 단시간에 펴야 하는 원리와 같다.
무경계의 철학자 캔 윌버도 성장에 관한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웰버도 “성장이란 기본적으로 자신의 경계의 지평을 확대하고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밖을 향한 조망과 안을 향한 깊이라는 양편 모두에 있어서 경계의 성장을 의미한다(켄 윌버, 무경계 p. 43)”
진성리더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뛰기 할 수 있는 구심력인 안주름을 통해 존재우위를 구축하고 외면의 환경에 적응해갈 수 있는 바깥주름을 펼쳐 원심력으로 경쟁우위를 만든 사람을 말한다. 진성리더란 안으로 깊이 뛰거나 밖으로 멀리 뛰거나 뛰기가 준비된 상태를 의미한다. 이들은 누구보다 바깥으로 멀리 뛰어야 하는 이유를 잘 설명(Explicate)하고 있고 안으로 깊이 뛰기하는 이유도 잘 이해하고(Implicate) 있다. 바깥주름이 펼쳐짐을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상을 만나는 것을 선험적(Transcendental)이라고 표현하고 안주름이 깊이 뛰기를 통해 만나는 내면을 초월적(Transcendent)라고 명명한다. 리더란 경험을 넘어서는 초월성을 기반으로 경험해보지 못한 선험적 세계을 탐구하는 사람이다.
진성리더란 바깥주름을 날줄로 안주름을 씨줄로 직조해 자신만의 고유성을 가진 문양과 나이테를 만든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밖으로 멀리 뛰기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면 안으로 멀리뛰기를 통해 길 잃은 지점을 찾아내 자신만의 씨줄과 날줄을 다시 직조해 언제든지 길을 잃었다고 생각되면 지도를 새롭게 그려내는 능력이 있다.
진성리더는 안으로 깊이 뛰기와 밖으로 멀리 뛰기를 통해 나이테를 완성하는 사건을 체험한다. 진성리더는 나이테가 완성되는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장하고 드러낸다. 진성리더가 평소 가지고 있던 안주름을 펼쳐서 만들어낸 사건을 각성사건이라고 칭하고 바깥주름을 펼쳐서 만들어낸 사건을 고난사건이라고 부른다. 진성리더는 각성사건과 고난사건을 교차해가며 사건을 일으키고 이 연속된 사건은 진성리더 주변의 근원적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유사리더는 밖으로 멀리 뛰기하는 바깥 주름에서는 뛰어난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지만 안으로 깊이 뛰기할 수 있는 안주름를 통한 존재우위의 근력을 획득하지 못한 리더들이다. 이런 디커플링 때문에 유사리더는 설사 한때 잘나가도 세상이 변화하면 반드시 길을 잃는다. 이들이 길을 잃은 이유는 부모로부터 공짜로 받은 유전자 복권(머리, 외모, 재능, 건강 등등)의 도움을 받아 온통 바깥주름을 기반으로 인생의 초반 경쟁에서 쉽게 이기며 살았던 삶 때문이다. 세상이 더 이상 자신들의 유전자 복권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 밖으로 달아나고 있어도 삶의 초반부터 안으로 깊이 뛰기하는 안주름 근력을 잊고 살았기 때문에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한다. 안주름이 있는 리더들만 설사 살다가 돌에 걸려 넘어져도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근력이 있다.
안으로 깊이 뛰기할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이 없어서 절름발이가 된 외발로 여기저기 피봇팅을 해보지만 결국 길을 찾지 못하고 탈로하는 삶으로 삶을 종결한다. 이들의 삶은 세상의 변화의 쓰나미가 몰고온 원심력에 의해서 삼켜져 버리는 삶으로 종결된다.
오랫동안 밖으로 멀리 뛰기에 열중하다 달라진 세상 문제를 주체적으로 구심력으로 해결하지 못해 스스로가 쓰려져 있으면서도 쓰러져 아파하는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안주름이 없는 리더들을 많이 목격한다.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문제를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하고 외재화 시켜가며 하루하루의 목숨을 연명해가는 일이다.
바깥주름에 의지해 한 때 승승장구하던 삶을 구가하던 유사리더는 결국 끓는 냄비 속 개구리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냄비가 뜨거워져서 냄비 밖으로 뛰쳐나가야 하지만 이미 몸이 마비되어 주름을 만들어 냄비 밖으로 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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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