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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력으로 싸우면 반드시 패배한다. 사명과 정렬된 루틴을 만들어라

Jul 4, 2026 ·6분 ·jkyoon · 2
의지력으로 싸우면 반드시 패배한다.
사명과 정렬된 루틴을 만들어라
매년 1월이 되면 전국의 헬스장은 인파로 가득 찬다. 금연 패치를 붙이고, 다이어리를 새로 사고, 새벽 기상 알람을 설정한다. 결심의 밀도는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2월이 되면 헬스장은 다시 한산해지고, 금연 패치는 서랍 안으로 사라지고, 알람은 꺼진 채 하루가 시작된다. 의지가 부족했던 것인가? 아니다. 의지는 처음부터 충분했다. 패착은 의지를 앞세워 싸워서는 안 될 상대와 싸웠다는 사실이다.
Charles Duhigg는 『습관의 힘(The Power of Habit)』에서 의지와 싸울 때 왜 인간은 패배하는 지를 해부해내고 대신 루틴으로 승리하는 법을 제시한다.
NFL 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를 맡은 코치 Tony Dungy는 선수들에게 복잡한 전술을 가르치는 대신 단순한 루틴을 반복시켰다. 상대의 움직임을 보는 순간 즉각 몸이 반응하도록, 생각이 끼어들 틈 없이 행동이 앞서도록 만들었다. 경기의 결정적 순간에 의지로 버티는 선수는 무너지지만, 루틴이 몸에 배인 선수는 흔들리지 않는다. 의지는 고갈되는 자원이고, 루틴은 고갈되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 치료 연구에서 Duhigg가 주목한 사례들도 동일한 구조를 드러낸다. 치료에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의 차이는 금주에 대한 의지의 강도가 아니었다. 결정적 차이는 하나였다. 술을 향한 갈망이 촉발되는 순간 즉 그 신호(cue)가 잡히는 순간 어떻게 행동 했는지가 다른 결과를 낳았다. 의지만으로 버틴 사람은 결국 무너졌고, 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대안적 루틴을 만든 사람은 살아남았다.
뇌신경과학의 용어로 설명하면 의지는 전전두엽이 장악한 대상회의 문제이고 루틴은 기저핵의 문제다. 의지력은 뇌의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 지휘하고 대상회(cyngulate gyrus)가 집행한다. 전전두엽은 계획하고, 판단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집행 기능의 중추다. 그러나 전전두엽이 대상회를 통해 관장하는 의지력에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 의지를 사용할수록 점점 소진된다는 점이다. 자아 고갈(ego depletion)에 관한 연구들이 증명하는 것처럼, 의지력은 외부에서 주입되는 에너지와 유사하다. 쓰면 쓸수록 에너지는 고갈된다. 아침의 의지는 탱기충전하지만 저녁의 의지는 고갈된다. 새해 아침의 의지는 충전된 것처럼 보이지만 몇 일이 지나면 의지가 고갈된 것을 경험한다. 의지력과 결심의 에너지는 몇 일을 버티지 못한다. 전전두엽이 의식적 의지력으로 돌려놓은 스위치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우리가 흔히 근력이라고 말하는 루틴은 기저핵(basal ganglia)이 담당하고 이 기저핵이 작동하는 원리는 의지력을 장악한 전전두엽 및 대상회와 다른 원리로 작동한다. 기저핵은 반복된 행동 패턴을 자동화하여 저장한다. 선조체(striatum)에 루틴이 새겨지면, 뇌는 그 행동을 수행할 때 더 이상 전전두엽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는다. 신호가 들어오는 순간 기저핵 회로가 자동으로 루틴을 실행한다. 습관이라는 근력의 신경생물학적 실체다. 루틴은 의식의 부하 무의식 속에서 소리 없이 작동하기 때문에 소진되지 않는다.
전전두엽에 의존해 소진되는 의지력과 기저핵에 포팅(porting)되어 자동으로 작동하는 루틴 사이의 경쟁은 처음부터 공정하지 않다. 의지가 루틴을 이기지 못하는 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열세인 자원으로 구조적으로 우세한 상대와 싸우기 때문이다.
진성리더들의 근원적 변화전략을 제시한 #급진거북이(#잉걸북스 2024)는 전전두엽과 지저핵을 연결시키는 차이와 반복을 통해 변화의 근력을 쌓아가는 것을 두 가지 방식을 제안한다.
급진거북이 변화 전략의 첫째 핵심은 변화를 통해 만들어지는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이가 만들어지기 직전 루틴이 완성되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26Kg의 아령을 들기 위해서는 25Kg의 아령을 드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로 루틴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힘들이지 않고 25Kg를 들 수 있어야 26Kg의 차이를 만드는 일에 도전할 수 있다. 20Kg 들던 사람이 욕심 부려가며 26Kg에 도전할 수는 없다. 이처럼 조그만 차이를 더해서 차이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루틴을 위한 근력을 키운다.
급진거북이 전략의 두 번째 핵심은 좋은 루틴의 큐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위해 전전두엽을 활용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만들어낸 루틴의 설계에는 함정이 있다. Duhigg가 밝힌 습관 루프의 구조는 신호(cue) → 루틴(routine) → 보상(reward)이다. 루틴이 발화되려면 반드시 신호가 먼저 와야 한다.
문제는 이 신호를 대부분의 경우 환경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카페에 들어서면 커피를 주문하고, 퇴근길 편의점 앞을 지나면 맥주를 집어 들고, 스마트폰 알림이 울리면 반사적으로 화면을 열어본다. 신호는 바깥에서 오고, 그 신호가 루틴을 발화시키며, 루틴이 보상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 사이클을 주체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환경이 설계했고, 우리는 그것에 반응하는 과정에서 루틴이 생겼을 뿐이다. 외적 신호가 지배하는 삶에서 루틴은 환경의 산물이 되고, 인간은 자신의 신경망 안에서 환경이 만든 회로를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된다.
의지력으로 이 회로를 끊으려 하면 어떻게 되는가? 전전두엽은 즉각 소진되고, 기저핵은 아무 신호가 없으면 다시 익숙한 루틴으로 돌아간다. 외적 신호에 지배되는 루틴을 의지로 이기려는 시도는 매번 같은 결말을 맞는다.
여기서 주체적으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급진거북이의 전략의 정수가 시작된다. 급진거북이는 루틴 자체를 바꾸려는 싸움에서 한 발 물러선다. 대신 더 근본적인 지점을 공략한다. 신호(cue)의 원천을 바꾸는 것이다. 환경이 던지는 외적 신호가 루틴을 발화시키도록 두는 대신, 사명(mission)에서 발원한 내적 신호가 루틴을 작동시키도록 회로를 재설계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 뇌는 상상적 체험과 실제 체험을 구별하지 못한다. 전전두엽을 이용해 실제로 사명과 연관된 신호 자체를 상상해가며 신호를 발화 시킬 수 있고 이렇게 발화된 신호도 환경에서 주어지는 신호와 똑 같은 효력을 가진다. 뇌는 상상적 신호든 실제 신호든 어떤 신호가 만들어지면 어떤 루틴을 촉발해야 하는지를 집행할 뿐이다. 존재목적이나 사명, 가치와 연관된 신호를 채우고 설계함을 통해 새로운 루틴의 연결을 촉진하고 반복함으로써 기저핵 회로의 루틴을 사명 지향적 루틴으로 재편할 수 있다.
급진거북이가 매일 아침 사명을 마주하는 의례를 갖는 것, 구체적 행동 전 특정한 자기 물음을 던지는 것,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특정 루틴의 신호로 설정하는 것 등등 이 모든 실천은 사명지향적 신호를 만드는 작업이다. 신호가 바뀌면 루틴이 바뀌고, 루틴이 바뀌면 보상의 종류가 바뀐다. 급진거북이는 의지력을 동원해 기존 루틴과 싸우지 않는다. 대신 전전두엽의 상상적 체험을 통해 사명을 신호로 전환함으로써 기저핵 자체를 자기편으로 만든다.
새로운 신호와 새로운 루틴의 연결이 기저핵에 안착하려면 반복이 필요하다. 급진거북이는 단순한 복제적 반복이 아니라, 매번 미세한 차이를 품은 반복을 반복한다. 들뢰즈(Gilles Deleuze)가 『차이와 반복』에서 논증한 것처럼, 의미 있는 변화는 동일한 것의 재현이 아니라 차이의 반복을 통해 이루어진다.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되, 어제보다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정확하게, 조금 더 사명에 가깝게. 이 반복이 쌓일 때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에 미엘린(myelin)이 형성되고, 신호 전달 속도가 빨라지고, 루틴은 점점 적은 의식적 에너지로 실행된다. 기저핵에 사명이 포팅되는 순간이다.
급진거북이는 자기통제의 패러다임을 환경에서 내부로 전환된다. 자신이 주체적으로 통제하는 사명지향적 신호의 설계를 통해 적절한 루틴을 발화시키고, 그 루틴이 보상을 만들어내는 회로를 기저핵 안에 구축하는 데서 온다. 차이와 반복을 통해 신경망이 사명을 학습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의지력에 기대지 않고 사명 속에서 움직이는 존재가 된다.
급진거북이가 지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의지로 버티는 자가 아니다. 사명을 신호로, 루틴을 습관으로, 기저핵을 동맹으로 삼아 자신을 움직이는 자다. 의지는 소진되지만 루틴은 소진되지 않으며, 그 루틴을 사명 위에 세울 때 인간은 비로소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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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