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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양산한 고아와 과부 타자에 대한 긍휼

Jul 4, 2026 ·4분 ·jkyoon · 1
시대가 양산한 고아와 과부
타자에 대한 긍휼
윤리(Ethics)과 도덕(Morality)를 많은 분들이 혼동해 쓰고 있지만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일단 윤리와 도덕은 세상의 질서를 구성하는 세가지 원리 중 가장 낮은 단계인 법의 울타리 상위에 위치한 기제다.
윤리는 법이 없어도 자신의 행동이나 태도가 남들에게 침해를 준다고 생각하면 상식적 수준에서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반면 도덕은 법을 어기지 않고, 윤리에 따라 상식적 수준에서 남에게 침해를 주지 않도록 규제하는 능력 플러스 윤리의 울타리 안에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의 울타리를 두를 때 시작된다. 이 가치 울타리 안에서 공공선을 위해 가치충격을 줄 수 있는 존재목적에 대한 약속을 정하고 이 약속을 실현해 미래 세대에게 남겨줄 수 있는 유산을 만들어내는 작업 공간이 도덕적 울타리의 공간이다. 법과 윤리가 질서를 통해 생존의 문제를 다룬다면 도덕은 생존을 넘어 사회의 번성을 만들어내는 더 심오한 원리다.
윤리는 자신을 넘어선 타자에 대한 각성에서 태어난다. 이런 점에서 혈연적 가족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원초적인 윤리 학교이다. 가정에서 마주하는 ‘아이’는 부모에게 단순한 피붙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철학적 지평에서 본다면, 아이는 부모의 유전적 복제물인 ‘동일자’로 태어나지만, 성장할수록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절대적 타자’로 이탈한다. 부모는 자신과 가장 닮았으면서도 결코 자신이 될 수 없는 이 낯선 존재를 마주하며 비로소 자기중심적 세계관을 파괴하고 타자를 향한 책임을 배운다.
윤리적 주체란 혈연적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의 절대적 타자를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타인에게 역지사지를 행하며 해를 끼치지 않는 지극히 상식적 수준의 인간을 의미한다. 도덕적 주체는 진정으로 혈연의 경계를 초월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혈연의 동질성을 넘어 자신의 가치관에 동조하는 이들 모두를 ‘범(汎) 가족’으로 수용한다. 자신의 안위가 위협받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공동의 유산을 위해 혈연의 울타리를 넘어 가치의 울타리를 지켜내는 행동이 도덕적 행동이다. 가족의 범주에 국한된 혈연적 타자성이 가치의 울타리를 두른 범 가족으로 확장될 때 ‘윤리적 주체’는 ‘도덕적 주체’로 격상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숭고한 도덕성을 보여주는 리더들의 가족사를 보면 장애가 있거나 아픈 자녀를 둔 부모인 이유가 많다. 그들은 매 순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그러나 무한한 책임을 요구하는 ‘아픈 손가락’을 절대적 타자로 삼아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고 윤리적 주체로의 훈련을 받는다. 이렇게 훈련된 이들이 우연한 기회에 사회적 역할을 부여 받으면 이들은 윤리적 주체에서 도덕적 주체로 거듭나는 길을 걷는다.
윤리적 주체로 성장하는 이들에게 떠오르는 절대적 타자는 고아와 과부다. 과거 성경 시대의 고아와 과부가 혈연적 보호망에서 탈락한 절대적 타자의 상징이었다면, 인공지능(AI)의 급격한 발달로 점철된 현대 초뷰카 사회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고아와 사회적 과부가 양산되고 있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첫째는 인공지능의 습격으로 인해 노동의 기회와 숙련의 과정을 박탈당한 ‘청년 고아’들이다. 이들은 기업과 사회라는 부모로부터 자립할 수 있는 근력 훈련의 기회를 잃어버린 채 광야에 내던져졌다. 둘째는 평생을 헌신했던 직장이라는 ‘남편’으로부터 정년퇴임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이별당한 ‘퇴직 과부’들이다. 이들에게 직장은 단순한 돈벌이 수단이 아닌 정체성의 근간이었다. 기술의 진보는 이들을 순식간에 사회적 유휴 인력으로 전락시켰다. 셋째는 초고령화 사회에서 혈연적 울타리와 공동체의 울타리가 무너져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은 고령화된 노인들이다. 이들은 혈연과 공동체로부터도 버림받은 고아이자 과부들이다. 이들에게 마지막 돌봄과 존엄한 죽음으로 삶을 제대로 마무리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우리 각자도 언젠가는 직면해야 할 시대적 과제다.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문제는 단순한 사회 복지 차원의 윤리적 문제를 넘어선다. 이들을 우리 공동체의 ‘절대적 타자’로 인식하고 환대하는 것은 우리가 도덕적 주체로서 미래 세대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줄 것인가를 결정하는 핵심적인 척도다. 윤리적 수준에서의 배려가 ‘불쌍한 이웃을 돕는 것’이라면, 도덕적 수준에서의 정책은 이들을 공동의 미래를 함께 일구어갈 ‘협업의 파트너’이자 ‘범 가족’의 구성원으로 예우하는 것이다.
정부와 사회는 이들을 단순한 수혜자로 취급하는 시혜적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청년들이 AI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인적 자본을 형성할 수 있도록 사회적 학습권을 보장하고, 퇴직자들이 보유한 숙련된 지혜가 사장되지 않고 공동체의 자산으로 선순환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죽음을 앞둔 노인들을 고려장이 아닌 마지막 ‘환대’의 장을 만들어 초대해야 한다.
6월 지방선거에 출마자들의 출마의 변을 들어보면 이들의 레이더에 이들 과부와 고아가 잡히지 않고 있다. 시대적 통찰력과 리더로서의 긍휼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 시대 가장 아픈 사람들이 누구인지가 보일텐데 이들의 눈에는 스스로 당선되는 비전말고는 시대적 아픔에 대한 감수성을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공약이 정말 미래를 위한 공약인지도 의심이 간다. 자신의 가족을 초월한 가장 아픈 사람들에 대한 배려를 찾아 볼 수 없는 이들에게 리더십을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족 안에서의 절대적 타자에 대한 환대를 넘어 사회의 절대적 타자를 환대하는 리더가 이끄는 사회만이 무너지지 않는 도덕적 울타리를 가질 수 있고 번성을 누릴 수 있고 결국은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 가족이라는 혈연의 벽을 넘어, 시대적 아픔을 극복해야 하는 이들을 미래의 동반자로 받아들이고 세울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리더십이 발휘되는 도덕적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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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