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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허례의식에 빠진 사람들의 운명: 얼굴과 이름을 잃어 버린 치매환자

Jul 4, 2026 ·4분 ·jkyoon · 1
디지털 허례의식에 빠진 사람들의 운명:
얼굴과 이름을 잃어 버린 치매환자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사유를 대신해 주는 시대, 우리는 전례 없는 지적 풍요를 누리는 듯 착각에 빠진다. 겉보기에 완벽하고 유려한 문장들이 SNS를 가득 채우지만, 그 화려함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스스로가 자신의 얼굴을 지워버리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는 치매환자로 전락한 사람들의 고통이 사이렌의 경고음으로 울리고 있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조지타운 대학교 연구팀의 대입 에세이 37만 편에 대한 추적 조사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다. ChatGPT 출시 이후 제출된 수많은 에세이들은 과거보다 훨씬 매끄러운 문장 구조와 풍부한 어휘를 자랑했다. 그러나 겉포장을 한 꺼풀 벗겨내자 경악스러운 본질이 드러났다. 수십만 명의 학생들이 써낸 생각의 뼈대와 핵심 아이디어가 결국 몇 가지 표준화되고 동질화된 범주 안으로 획일화되어 수렴해 버린 것이다.
지원자가 직접 쓰고 고뇌한 글에 비해 AI의 보조를 받은 학생의 글은 자신의 고유성을 표현하는 능력이 8배나 떨어졌다. 지적으로 독립하여 사고할 수 있는 근력을 기르기도 전에 AI 기술에 의존한 수험생들은 알맹이가 텅 빈, 화려하지만 뻔한 디지털 복제품을 양산해 냈다. 단어를 고르고 아이디어를 짜내는 고통스러운 브레인스토밍 과정이야말로 사유의 본질임에도 편리함이라는 독약에 취해 시작부터 기술에 주도권을 내어준 대가는 생각보다 컷다. 이 기사는 AI가 그나마 있던 학생들이 독립적이고 비판적이고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고의 마지막 근력을 상실했음을 보고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에 의해 인간의 본질이 공동화되는 현상은 동양의 오랜 고전이 전하는 회사후소(繪事後素)의 보편적 경고였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마련한 뒤의 일”이라는 이 지혜는, 내면의 본질과 단단한 기본이 선행되지 않는 한 그 어떤 화려한 장식과 수사도 무의미함을 역설한다. 인간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실존적 고뇌와 고유한 경험이 하얀 도화지(素)라면, AI가 제공하는 매끄러운 문장력과 정형화된 논리는 오색의 물감과 화려한 도안(繪)이다. 지금의 대중은 자신만의 하얗고 순수한 바탕을 닦는 고통을 거부한 채, 남이 짜놓은 화려한 디지털 단청을 들이붓기에 바쁘다. 본질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화려한 수사는 자신의 본질에 대한 위선이자 기만이며, 결국 무너질 운명의 사상누각이다. 그리는 기술로 화려하게 치장한 그림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의 박제일 뿐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모든 창작의 과정에는 인간의 고유하고 본질적인 정신 가치가 개입되어야만 한다. 삶의 태도와 진정성에서 우러나오는 신뢰의 에토스(Ethos), 치열한 사유와 논리적 분석이 벼려낸 이성의 로고스(Logos), 그리고 실존적 고통과 뜨거운 열망이 요동치는 감성의 파토스(Pathos)가 삼위일체를 이루어 인간의 도화지를 채워야 한다. 그러나 AI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순동적 태도는 이 본질적 삼각대를 단숨에 무너뜨린다. 스스로 고뇌하여 에토스, 로고스, 파토스를 자아내지 못하는 인간은 사유의 루프(Loop)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인간이 질문을 던지고 AI가 답을 내는 형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AI가 제시한 평균적인 틀에 인간의 뇌가 무비판적으로 종속당하는 주객전도가 일어난다. 도구를 부린다고 믿었던 인간이 도구의 생각에 길들여져 정신적 노예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이 디지털 허례의식에 빠져 살 때 다가올 파국은 명확하다. 모든 글에 자신만의 영혼과 주체성이 사라지고, AI가 계산해 낸 가장 안전하고 말끔한 ‘평균적 답’의 늪에 함몰된다.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자신의 얼굴과 자신의 이름를 잃어버리는 치매환자가 경험하는 고통과 같은 형벌을 부과받는다.
치열하게 쓰고 그리는 과정에서만 발견될 수 있었던 나만의 고유한 목소리는 소거되고, 결국은 얼굴 없는 보통명사, 즉 아무런 개성도 깊이도 없는 ‘말끔한 평균인’으로 전락한다. AI의 노예가 되어 고유한 이름과 얼굴을 빼앗긴 채 평균의 감옥에 갇히는 것, 이것이 사유의 근력을 포기하고 디지털 허례에 영혼을 판 현대인들이 마주해야 할 서늘한 운명이다.
뉴욕타임즈 컬럼니스트인 로스맨의 “AI가 우리 삶의 대부분을 장악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르포 기사는 AI가 인간사고의 대부분을 대체할 때 인간 문명의 종말을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인지적 하역작업(Cognitive Offloading)으로 인간의 사고수준이 어린이의 수준으로 전락하여 인간으로써의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근력을 상실할 때 인간의 호모사피언스의 지위는 사라진다. 이 틈을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설계할 수 있는 소수의 사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들어와 디지털 현실을 조작하기 시작하면 인간 문명의 디스토피아가 시작된다.
본인은 오래전부터 학생들에게 독립적이고 비판적이고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사고근력에 대한 시험을 치르게 하고 이 시험에서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AI 사용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자신의 사고 결과물에 자신이 개입하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AI가 만든 화례한 쓰레기를 양산해 세상을 평균으로 고착시키는 AI 음모에 노예로 동원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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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 Jeongkoo Yoon
About the author

Jeongkoo Yoon · 윤정구

Professor of Management at Ewha Womans University's School of Business. Writing on natural learning, double-loop reflection, and the sociology of 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