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신의 간계
우리를 설국열차에 태우고 그 안에서도 달리게 했다.
신자유주의 신의 간계
김보선 시인이 얼마전 컬럼에서 취업준비생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고, 신입사원에서 중간 관리자까지는 <견디면 이긴다>를 읽고, 그 위의 팀장과 임원은 <피로 사회>를 읽고, CEO는 피터 드러커와 워런 버핏를 읽는다고 요즈음 세태에 대해서 풍자했다.
신자유주의는 나의 가족 배경,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것, 얼굴이 잘 생기지 못한 것, 보잘 것 없는 과거, 등등 모든 감옥으로부터 자유롭게 해방시켜주는 대신 자신의 꿈을 향해서 무한질주하라고 가르쳤다. 누구나 꿈을 가지고 달리면 다 얻을 수 있다고 교화시켰다. 달리다가 넘어지면 그건 달리는 선수가 자신을 관리를 못해서 생긴 개인적 문제이지 사회의 문제는 아니라고 가르친다. 분노하려면 자신에게 분노하라고 가르친다.
무한경주를 통해 성공을 걸머지는 꿈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붐을 일자 버킷리스트도 나오고 꿈과 재능과 끼를 강조하는 자기개발서가 범람했다. 긍정심리학이 붐을 이루고 어떤 프로그램은 간절히 상상만 하면 꿈은 다 이루어질 수 있다고 달콤한 말로 꼬시기도 한다. 달리다가 기력이 떨어지면 다시 새로운 자기개발서를 찾아서 읽고 다시 기력을 얻어서 또 달리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신자유주의 신이 인간 몰래 결승점을 치워 버렸다는 것을.
초보들은 절대로 깨달지 못하지만 충분히 달려 몇 차례 성공을 거둔 경험이 있는 베테랑들은 어느 순간 달리고 달려도 결승점이 없다는 것을 깨달고 기진맥진해진다. 다시 원래로 돌아가려니 더 막막해졌다.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늦게 깨달았지만 저 아래에서 꿈을 쫒아 달리는 후배들에게 감히 진실을 말해줄 수 없다. 결승점이 없어도 끝까지 달려야 한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고 다시 달리지만, 우울증에 빠지고 중독에 빠져가며 스스로가 달리는 것을 포기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감당이 안 되면 삶의 정점에서 자살을 한다.
신자유주의 신은 선두를 달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비밀을 알아차리고 황망해져서 쓰러져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버전을 내어 놓았다.
이 번에는 슬로우 달리기 버전이다.
천천히 달려도 충분히 꿈을 달성할 수 있다고 꼬인다. 슬로우 후드 슬로우 삶 등 슬로우 운동이 번지기 시작했다. 경기가 갑자기 100M 계주에서 경보로 바뀌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또 뒤늦게 깨달았다.
천천히 달리는거나 빨리 달리는 거나 결승점이 없는 것은 똑 같다는 것을. 천천히 달려도 달리는 것은 달리는 것이고 결국 결승점이 없어서 꿈을 쫒아서 죽을 때까지 달려야 한다는 사실을.
결국 신자유주의 신의 간계는 우리를 목적지가 없이 무한괘도를 달리는 설국열차에 태우고 설국열차 안에서 살기 위해서는 꿈을 쫒아 앞 칸으로 달려야 한다고 가르친 점이다. 신자유주의 신은 우리에게 목적지를 거세해버리고 꿈을 쫒아 앞만보고 달리는 것만을 강조했다. 우리가 피곤에 지쳐도 못벗어나는 이유다. 꿈이 우리를 오히려 피곤하게 하는 이유는 다 신자유주의 신의 간계이다.
진성리더십에서는 신자유주의와는 정 반대의 삶의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삶의 목적지인 사명이 복원될 경우에만 자신이 주인공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행복을 되찾을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쳐준다. 삶의 목적지를 복원하여 자신의 내면적 자아와 외면적 자아가 서로 화해의 손을 잡고 동행이 되어 이 목적지를 향해갈 때 진실된 행복도 복원된다는 것을 가르친다.
사명은 삶의 결승점이고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이다. 이 결승점에 도달하는 믿음만 있다면 걸어도 좋고 가끔가다 쉬어도 좋고 뛰고 싶으면 뛰어도 좋다.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만 있다면 궁극적으로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해도 좋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가는 길이므로 굳이 남들과 경쟁할 필요도 없다.
진성리더는 영혼의 종소리를 들려주는 목적이 있는 삶을 강조한다. 영혼의 종소리를 따라 목적지를 향해 신념을 가지고 뚜벅뚜벅 걷다보면 어느덧 꿈도 뒤쫒아 온다는 것을 알려준다. 꿈은 목적지를 향해서 걷다보니 나를 따라 온 결과이다. 꿈을 고기덩어리로 앞에 걸어 놓고 먹기 위해 무한히 달리는 신자유주의 경주와는 다른 경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