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긍휼감의 비밀
나의 상사는 왜 나에게 긍휼감을 보여주지 못할까?
이타적 긍휼감의 비밀
긍휼감은 영어로 compassion이다. 고통 passion을 같이 com 느끼는 상태이다. 즉 긍휼감은 남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내재화해서 풀어나가려는 행동성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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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부모는 자신의 자식에게 생물학적 긍휼감을 보인다. 자신의 자식이 고통스러워하는데 그냥 남의 집 불구경하듯이 지켜보고만 있을 부모는 없다. 부모가 자식에게 보이는 생물학적 긍휼감은 자기 자손들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생물학적 정언명령이다. 이런 생물학적 명령만으로는 인류가 지금과 같은 거대한 역사를 만들지 못했다. 부모가 자식에게 보이는 긍휼감은 생물학적이고 이기적 속성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긍휼감을 느낄 수 있을까?
리더는 자신의 혈연이 아닌 사람들의 성장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내재화하여 풀어나가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긍휼감이 뛰어난 부모를 보고 리더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설사 장애아를 자녀로 두고 있어서 긍휼감이 몸에 밴 부모라하더라도 리더가 보여주는 궁휼감과는 거리가 있다.
리더는 어떻게 이런 이타적 긍휼감을 획득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 즉 사명에 대한 각성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사명은 혼자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사명을 향한 여정을 같이 할 중요한 동반자가 고통스러워하고 아파해서 동행의 길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절대절명의 순간을 깨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자신도 사명을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고통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타적 긍휼감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은 좋은 부모는 될 수 있어도 좋은 리더는 될 수 없다. 직장에서도 자신의 부하를 자신의 자식처럼 생각해가며 이들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는 상사는 많지 않다. 사명에 대한 각성이 없기 때문이다. 사명에 대한 흔들림과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긍휼감은 이기적 긍휼감의 수준을 벗어나 이타적 긍휼감으로 전환되지 못한다. 이타적 긍휼감이 없다면 사명을 위한 동행을 구하지 못한다. 동행을 구하지 못하면 세상을 이롭게하는 큰 변화의 기적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긍휼감은 사명에 연결될 때만 변화에 도달하게하는 체험을 가져오고 이 긍정적 체험을 통해 긍휼감을 확대 재생산 시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