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종말?
머리는 컷는데 왜 몸이 자라지 않을까?
경제학의 종말?
요즈음에 가장 마음에 두고 있는 화두이다. 소인국에 거주하는 난장이들 이야기가 아니라 자라지 않는 총요소생산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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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슈밥의 이야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ICT와 제조업이 결합되어 혁신을 이끈다는 4차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실제로 우리 삶의 주변에서 심심지 않게 목격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과학과 기술의 혁신이 경제학의 혁신지표로 규정하는 총요소생산성에는 왜 반영되지 않는 것일까? 아직까지 글로벌에서 발표하는 총요소생산성 수치는 L자 경기를 벗어나고 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우리는 4차산업혁명이 정말 혁명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4차산업혁명은 신기루인 것일까?
요즈음 드는 생각은 우리가 신봉하고 있는 경제학이 근본적으로 잘못집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 쪽으로 흐르고 있다. 경제학이 전통적으로 예측하고 있는 경제장이라는 국면이 지금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어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 사실을 혹시 경제학자들만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마치 술꾼의 논리가 적용되는 국면이다.
술에 만취한 술꾼이 집 앞에서 열쇠를 잃어버렸다. 이 술꾼은 집 앞에서 열쇠를 분실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집 가로등 밑에서 열심히 열쇠를 찾고 있다. 지나가는 나그네가 술꾼을 발견하고 묻는다. 무엇을 잃어버렸나요? 열쇠를 잃어버렸습니다. 나그네도 같이 찾아본다. 열쇠가 나오지 않자 나그네가 다시 묻는다. 정말 여기서 잃어버린 것 맞나요? 술꾼이 답한다. 집 앞에서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찾고 있지요? 집 앞에는 깜깜하고 여기는 밝아서 여기서 찾고 있습니다. 술꾼의 논리에 함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그네는 집앞에서 열쇠를 찾아서 술꾼에게 건네준다. 경제학은 잘 모르지만 전통 경제학이 빠진 오류가 술꾼의 오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은 4차 산업혁명의 현장에서 열쇠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자신의 열쇠를 3차산업현장이나 생산소비함수가 제대로 작동되는 2차산업현장에서 찾고 있는지 모른다. 이유는 이곳에는 자신들이 밝혀놓은 가로등인 정교한 이론들이 있기 때문이다.
L자 경기를 벗어나기 위한 해법으로 논의되고 있는 케인즈와 슘페터도 이런 점에서는 술꾼의 논리라는 비난을 벗어나기 힘들다. 미국 경제학의 대부 케인즈는 경제학자로는 더 보수적이다. 경제시스템을 그냥 신처럼 신봉한다. 이 경제시스템이 가끔 붕괴해 소비가 위축될 수 있으나 이런 경우라도 정부의 재정지출을 단기적으로 늘려 시스템이 다시 돌아가게 만들면 경제는 다시 자족적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논리를 편다. 파괴적 혁신의 논리를 펴는 슘페터는 유럽경제학자 답게 보다 통찰력의 깊이가 있다. 경제시스템이 터전으로 깔고 있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라는 맥락이 배태된 상태에서 경제시스템을 예측하기 때문에 이 예측은 보다 현실적이다. 가끔 경제시스템은 불완전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이 불완전한 경제시스템을 진화시키기 위해서는 파괴적 혁신을 통해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고 이 파괴적 혁신이 성공한다면 경제는 보다 사회주의 형태에 근사한 형태로 진화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혹자는 슘페터가 예측하는 사회주의를 공산주의에서 예측하는 사회주의로 생각해서 논쟁을 벌이나 슘페터가 생각하는 사회주의는 혁신과 경제적 민주주의가 일상화된 1상태로 실현되는 사회민주주의 형태를 말한다.
아무튼 케인즈보다는 슘페터가 경제체계가 잘못된 조짐을 보이는 것은 혁신을 통해 진화를 촉진하는 시발점이고 이 경제체계는 자본주의에만 뿌리를 내릴 필요가 없다고 예측하는 점에서 보다 현실적이다. 결국 혁신이 생산성에 반영되는 정도를 예측하는 총요소생산성의 개념은 케인즈가 아니라 슘페터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결국 내가 제기하는 경제학에 대한 공격의 화살은 케인즈가 아니라 슘페터를 염두에 둔 것이다. 지금처럼 4차산업혁명으로 과학과 기술이 파괴적이고 혁신적으로 진보하는데 왜 이것이 총요소생산성을 이끌어내지 못하는가는 슘페터가 대답해야 할 문제이다. 조심스러운 예측은 심지어 슘페터도 4차산업의 혁신을 통해 ICT와 제조업의 결합을 통해 창출되는 새로운 경제공동체의 현실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이것을 사회민주주의라는 가로등 밑에서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세상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신세계로 진화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문제의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경제학은 사회과학의 제왕의 지위를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새롭게 등장하는 경제사회공동체의 장을 경제학자들만이 모여서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을까? 나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경제는 보이지 않는 사회라는 맥락을 배태하고 있어서 이 사회가 진화는 맥락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지표라는 것들이 모두 현실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경제학이 스스로의 학문적 지위를 내려놓고 다른 모든 학문과 협업할 수 있는 주체로 거듭나야할 것이다. 이 협업에 실패한다면 경제학은 학문으로서의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해야할 일은 경제학에 의존하기보다는 학문 간의 협업을 통해 이 새롭게 진화하는 신세계의 형태가 무엇인지를 공동으로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학의 현실은 아직도 학문적 기능주의나 순혈주의에 빠져서 이와 같은 협업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대학이 나서서 협업과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런 태도가 지속된다면 누군가는 결국 대학의 존재이유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것이고 결국 대학도 비자발적으로 지금의 지위를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과 같은 대학이라면 대학이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현 교육수장이 이런 진화하는 관점을 이해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교육에서의 근원적이고 파괴적 혁신의 물꼬가 마련되지 못하고 이념논쟁으로 교육의 장을 이끈다면 이런 기우는 현실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