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세 가지 수준
배움의 세가지 수준
우리가 배운다고 하면 그냥 학교에서 인지적으로 배우는 것을 배운다고 생각할 것이다. 책을 가지고 텍스트를 익히는 것을 배움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학교에서 인지적으로 배우는 공부는 가장 낮은 수준의 학습을 구성한다. 학교를 졸업했다고 배움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은 인지적인 초보적인 공부가 다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지적으로 마무리한 공부를 공부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고 공부에서 오래 전에 손을 놓았다면 이 사람은 지금 아마도 사회생활해가며 엄청 고생하고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 받은 졸업장은 졸업장이 지정하는 분야에서 더 높은 차원의 학습을 할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졸업장은 새학습의 시작을 알릴 뿐이다.
졸업 후 사회를 텍스트 북으로 삼아서 배우는 공부는 또 다른 차원의 공부이다. 사회라는 텍스트 북에는 우리가 인지적으로 배우것과는 다른 구조의 배움이 있다. 사회라는 것은 한 사람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사람들의 그물망에 의해서 구성되는 것이므로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텍스트가 모여진 context 즉 맥락를 배우는 것이다. 또한 상대의 Text를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내 Text와 상대의 Text를 모아서 의미 있는 Context를 구성할수 있어야 사회적 차원의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가 좋다하는 것은 Text를 잘 읽을 수 있다는 것이지 Context 즉 맥락을 잘 읽고 더 좋은 맥락을 구성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맥락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사회생활을 통해서 학습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포인트는 맥락은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 없이 살아 진화하고 변화한다는 점이다. 정지되어 있는 상태의 맥락이 아니라 서서히 움직이는 맥락을 찾아서 이것을 연결한 패턴들을 포착해내서 그 패턴 속에 자신의 삶을 끼워넣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높은 수준의 학습을 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이처럼 패턴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지혜로운 사람이라던지,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던지, 현자라던지와 같은 일반사람들에게는 붙여주지 않는 이름을 불러줄 것이다. 이 맥락의 흐름 속에 담겨 있는 패턴을 사람들은 다양하게 이름을 붙여서 통찰이라고 하기도 하고 지혜라고 하기도 하고 현명함이라고도 한다.
디지털 시대가 심화되어 복잡성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특이점이라고 생각하는 시점을 지나면 아마도 세상은 맥락을 읽거나 패턴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의 공부가 필수적일 것이다. 초보적인 수준의 인지적 공부는 지금 당연히 계산을 할 때 계산기를 써서 계산을 하듯 우리의 머리가 아니라 계산기처럼 만들어진 인공지능을 써서 해결할 것이다. 이 수준을 넘어서 맥락을 통해서 학습하거나 패턴을 찾아서 자신의 삶에 울림을 창출하는 학습이 이뤄나지 않는다면 아마도 학습지진아로 매도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