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믿음 산 믿음 자유
죽은 믿음, 산 믿음, 믿음으로 부터의 자유:
믿음은 마음의 근육이다. 마음의 근육이 없다면 다리의 근육이 없는 어린아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목적으로 정한 높은 산을 오를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없다. 다리의 근육이 어떤 행동이던 실제로 마음먹은 행동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마음의 근육은 마음먹은 것을 방해하는 세력이 나타나도 버틸 수 있는 의지력의 원천이다.
사람들이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믿음은 삼 단계로 구성된다.
가장 초보적 믿음은 경험에 의해서 생긴 믿음이다. 어떤 특정한 경험의 결과가 좋게 나올 때 좋은 결과를 초래한 방법이나 지식 등이 믿음으로 발전한다. 이렇게 해서 생긴 믿음은 세상이 바뀜에 따라서 작동하지 않게되고 작동을 안 할수록 자신은 더욱 이 믿음에 매달리게 되고 믿음에 매달릴수록 이 믿음은 자신을 가두는 감옥으로 변화한다. 이런 믿음은 과거의 성공경험에서 생기는 것이어서 믿음자체가 과거지향적이다. 성공한 사람들이 이 믿음에 갇히면 반드시 실패한다.
둘째의 믿음은 미래에 대한 생각을 근육으로 단련시킨 믿음이다. 미래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만들고 뇌가 현실적 경험과 상상적 경험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서 상상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과정을 통해서 검증하고 근육으로 단련시킨 믿음이다. 상상임신의 경우처럼 실제로 체험하지 않아도 미래에 무엇인가가 일어나도록 간절하게 바라면 반대로 몸의 변화가 일어난다. 다 뇌가 현실과 상상적 체험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에서 파생한 뇌의 작용이다. 과거의 믿음은 아날로그적 믿음이라면 미래의 믿음은 상상을 통해서 일어나는디지털적 믿음이다.
둘째 믿음의 희생자들은 믿음의 직업을 가진 종교인들이다. 이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자신의 사이비 믿음으로 신도들을 가두는 또 다른 감옥을 만들었을 경우이다.
과거에 엄청난 성공을 하지 못했거나 미래에 대한 믿음이 강한 성직자들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도 과거의 믿음에 의존해서 사는 비율이 높다. 생생하게 경험한 것과 상상적으로 경험한 것이 경합할 경우 사람들은 생생하게 경험한 것의 가치를 더 높게 쳐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설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과거의 믿음과 미래의 믿음 사이에 줄을 만들어 놓고 제법 균형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한 때는 과거의 피리소리에 끌려 과거 쪽으로 가다가도 미래의 나팔소리를 듣고 다시 방향을 돌려 미래로 향하는 행진을 지속한다.
삶을 산다는 것은 이 과거의 믿음이던 미래의 믿음이던 한 번 만든 믿음을 제대로 생장시키는 과정이다. 이 믿음을 생장시키기 위해서는 이 믿음에 근거한 스토리가 파생되어 나오고 이 스토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때 생기는 공감의 정도가 이 믿음을 생장시키는 거름이 된다. 스토리에 공감이 없으면 믿음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받을수없고 믿음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믿음은 자연히 도태된다. 과거의 믿음이던 미래의 믿음이던 이 믿음의 스토리가 사람들에게 울림을 창출하지 못한다면 이미 죽은 믿음이고 이 믿음은 편견으로 전락한다.
믿음을 기반으로 세워진 스토리는 세상에 대한 안테나이다. 이 안테나가 떨림을 유지한다는 것은 세상과 소통이 이뤄나고 있다는 것이고 이 믿음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믿음의 마지막 단계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던 믿음이 떨림을 멈추었을 때 자신은 다시 이 본질의 감옥을 떠나 세상의 망망대해에 벌거벗은 몸으로 뛰어들 수 있는 자신감에 대한 믿음이다. 자신이 믿었던 본질의 감옥에서 벗어나 다시 세상의 험난한 망망대해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믿음으로부터의 자유가 가장 마지막 단계를 구성한다.
세상의 변화를 만든 사람들은 적어도 첫째와 둘째 단계를 넘어서 마지막 단계까지 경험한 사람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