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은 정말 님일까?
“님”은 정말 “님”일까?
뼈속까지 님
최근 많은 회사에서는 자유로운 소통을 장려하기 위해 계급장을 떼고 이야기하도록 하는 제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직위와 상관없이 다 “아무게 님”으로 부르라고 규정을 만들지만 그렇다고 자유로운 소통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화행위에 숨겨진 권력관계의 본질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상사는 회사의 이런 규정을 더 교묘하게 이용해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는 권력챙기기의 명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통의 목적은 새로운 정보가 자유롭게 유입되어 구성원 간 공유되고 이 공유된 정보를 기반으로 더 건설적이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런 순기능적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는 상사가 소통을 자신의 생각을 부하들에게 받아들이게 하는 권력관계를 공고히 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입되는 정보도 이 권력관계에 합치되는 과거의 정보만 유입된다. 투입되는 정보가 권력관계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니 이 정보를 가지고 아무리 좋은 머리를 굴려도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권력에 의해 왜곡된 소통과정을 지켜보면 소통의 참여자들은 더 이상 시간과 열정을 정보를 공유하고 문제를 더 생산적으로 해결하는데 쓰지 않는다. 소통을 통해 상사는 자신의 권력을 확인하고 도전하는 부하들을 단속하는데 쓴다. 상사가 자신의 권력서열을 공고히 하기 위한 목적이 주 목적이 된다. 부하들도 어느 순간 이런 상사의 권력행위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사람들로 전락한다.
소통은 어떻게 권력행위로 변질될까?
대화 중 상사가 논리가 떨어지면 은연 중 보이지 않는 힘으로 누른다. 상사는 자신의 서열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말하는 시간을 독점한다.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이 권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가 안 풀려 대화를 하자고 스스로 청해놓고 자신의 말만 쏟아낸다. 귀와 입은 동시에 열리지 않는다. 말하는데 시간을 쏟는다는 것은 전혀 듣지 않겠다는 의지적 표현이다. 상사가 말하는 논지가 그가 전제로 삼고 있는 가정과 어굿나도 이 가정에 대해서 의심을 제기하지 못하게 제압한다. 상사를 인격적으로 못 믿는 것이라는 등 가정에 대한 질문을 인간적인 신뢰의 문제로 귀인시킨다. 결국 문제가 안 풀려 상사가 먼저 대화 좀 하자고 해가면서 결국 따지고 보면 명령하고 허락하고 금지하고 약속을 강요하고 스스로 변명하는 기회로 사용해 자신의 입장을 변호해 상사에게만 도움이 되는 권력관계의 확인으로 끝난다.
하버마스는 대화에 권력관계가 반영되지 않는 담론을 이상적 열린 담론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위한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부하들도 언제나 이야기를 개시하고 진행시키고 마무리 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즉 이야기 좀 하자고 하는 담론의 기회나, 이야기를 중간에 끊거나 더 진행시키는 행동, 이야기를 마무리 하는 권한이 부하들에게도 분배되어야 한다.
둘째, 부하들도 상사의 주장, 권고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게나 정당성을 요구할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즉 상사가 하는 주장의 가정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물어보고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부하들에게도 똑 같이 허락해야 한다.
셋째, 소통은 더 나은 정보를 통해서 문제를 더 창의적으로 해결하려는 목적도 있지만 정보를 공유함을 통해 우리가 같은 식구라는 것을 표현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따라서 부하들도 행위자로서 그들의 태도, 소망, 감정 및 의향을 표현할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야기 중 부하들도 화가나면 화가 났다는 감정을 솔찍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정서의 허심탄회한 표현은 소통에서의 윤활류 역할을 한다.
넷째, 상사가 대화권력을 남용한다면 부하들도 명령하고, 반박하고, 허가하고, 금지하는 등의 언어행위를 적용할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대화의 권력을 부하들에게 이양하고 공유하는 이상적 담론 과정을 통해서 상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대화행위에서 권력을 포기하는 대신에 상사는 더 나은 정보교류와 더 나은 의사결정과 더 나은 문제 해결력을 통해 더 나은 조직 성과를 챙길 수 있다.
이런 모든 편익을 넘어서는 가장 큰 이득은 구성원의 주인의식이다. 권력관계를 제거함을 통해 구성원들도 대화의 Text를 쓰는데 같이 참여시켜 공동의 Context를 마련할 수 있다. 구성원들은 이렇게 마련한 공동의 context에 운명을 공유한 같은 식구라는 공동체 의식을 갖는다. 종업원들이 일에 주인의식이 못느끼는 것은 Text를 상사가 일방적으로 만들어서 주입했고 자신은 이 Text를 수행하는 도구나 노예로 고용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화행위의 권력관계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없는 “님”으로 부름운동은 열린소통을 교묘하게 숨기는 탈동조화 현상으로 흐를 수 있다. 님으로 불러주는 대신 자신의 권력관계를 더 세련되고 교묘하게 챙기면 이 상사는 이미 님으로 불러주었기 때문에 다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일까? 잘못된 소통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제도로 변질 되는 것이다. 우리 회사의 님은 무늬만 님이 아닌지 점검해보자.
